2018. 1. 11. 10:27ㆍ성인들 가르침/불교 교리 일반
불교를 한마디로 무엇이냐고 했을 때, 위빠사나 수행자라고 한다면 아마 알아차림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불교를 한마디로 요약할 때 자비라고 말했다면 그 수행자는 사마타 선정수행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자는 알아차림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수행자가 아닌 다른 경우에도 다르게 말할 수 있겠지만, 수행자에게 있어서 알아차림이란 이토록 절대 절명의 것입니다. 이것은 저희 스승들이나 경전에서 한결같이 주장하는 내용들입니다.
부처님께서 수행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경전이 바로 <사띠빠타나 수따>입니다. 그 뜻은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경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가장 중요히 여기시는 것이 알아차림입니다.
수행 중에 스승이 말하는 모든 면담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거의 알아차림이란 한마디로 귀결됩니다. 어떤 질문을 해도 어떤 인터뷰를 해도 스승들은 알아차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항상 같은 말인데도 알아차리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와 듣지 않았을 때가 또 다릅니다. 왜냐하면 알아차림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것이라서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알아차리는 새로운 습관을 길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세월 동안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감각적 욕망과 게으름, 혼침,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무지와 갈애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무지와 갈애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알아차리는 그 순간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새로운 습관을 우리는 길들이는 것입니다.
다른 수행에서는 오직 집중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지만 위빠사나 수행은 오직 알아차림을 통해서 모든 대상을 맞이 합니다.
알아차림은 오온 중에서 마음의 작용인 행온에 속합니다. 그래서 그것 자체가 선한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알아차리는 것 자체가 계율을 지키는 것이며, 고요한 마음의 집중에 이르게 하고, 그래서 지혜가 나도록 합니다.
알아차리는 동안에는 탐진치라는 번뇌가 붙지 않기 때문에 그 순간에 온전하게 계율을 지키는 셈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리는 수행자들은 특별히 계율을 지키려는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알아차림을 통해서 바른 견해를 갖고, 독선에 빠지지 않고, 모든 위험과 사고를 예방합니다.
이것은 알아차림이 갖는 특성의 하나로,계율의 측면과 사고의 측면에서 모든 위험을 막아서 보호해 주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육문의 문지기가 되어 도적을 막아줍니다. 알아차림이 없으면 도둑이 들어와 주인행세를 합니다. 알아차림은 모든 것을 수용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무엇이나 받아들입니다. 알아차림이 있는 상태에서는 못 받아들일 것이 없습니다. 적어도 알아차림을 하는 순간에는 사물의 성품을 꿰뚫어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알아차림에는 다툼과 불복이 없습니다. 알아차림에서는 탐진치가 없으며, 알아차릴 때만이 관용, 자애, 지혜가 생깁니다.
아는 마음과 모르는 마음이 있는데, 아는 마음은 선업이고 알아차림이며, 모르는 마음은 악업이고 알아차림이 없는 마음입니다. 아는 마음은 알아차리는 마음이라서 깨어서 알지만, 모르는 마음은 무지의 마음이므로 혼돈 상태에 있습니다. 알아차림은 대상을 이성적으로 투명하게 보게 하며, 객관적으로 알게 해서 항상 모든 것에 대해서 공평무사합니다.
이러한 알아차림은 언제나 현재에 머물게 합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현재에 머무는 것은 행복의 제일조건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 있을 때는 번뇌가 없고 행복이 있습니다. 알아차림은 비현실적인 꿈으로부터 언제나 현실로 돌아오게 하여 항상 건강하고 밝고 온전한 정신을 갖게 합니다.
마치 수레바퀴가 굴러 갈 때 땅이 닿는 점은 언제나 하나이듯이 알아차려야 할 대상은 언제나 현재입니다. 현재만큼 가장 실질적이고 진실한 대상은 없습니다. 인생이나 세월은 어디까지나 현재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현재는 과거에 의해서 생긴 결과이며, 현재는 미래를 만드는 원인입니다. 이것이 모두 알아차림으로 이루어지는 것들입니다.
수행은 원대한 목표가 있으되 바라는 것이 없어야 하는데, 실제 수행에서 목표가 장애가 됩니다.
그래서 이상은 있으되 바라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아라한이 되기 위해서는 바라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냥 바보처럼 알아차릴 대상이 있어서 알아차릴 뿐이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병이 났을 때도 병을 나으려고 알아차려서는 안 됩니다. 병을 나으려고 알아차릴 것이 아니라, 병이 났을 때 일어나는 온갖 현상을 그냥 알아차려야 합니다. 물론 병이 나면 병원이 가야 합니다. 알아차림은 몸의 병을 나으려는 이런 물질적 현상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병을 통해서 몸과 마음의 실체를 알아차릴 수 있는 기회를 삼는 것입니다.
-묘원 스님(사단법인 상좌불교 한국 명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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