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11. 10:25ㆍ성인들 가르침/불교 교리 일반
범부는 알아차리지 못해서 과거에 머물러 후회를 하고 미래의 걱정으로 날을 지새웁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대상을 알아차려서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압니다.
수행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직 현재에 머물기 때문에 후회가 지혜로, 걱정이 희망으로 바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없이 살다가 죽는 것 보다 보람된 일을 하고 죽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좋은지 알고 마는 것은 단지 생각에 그치는 것입니다. 알아서 실천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욕심을 부리기보다 관용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화를 내는 것보다 자애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어리석지 않고 지혜를 가지고 사는 길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죽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만약 죽음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면, 현재에도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야 하고, 미래에도 괴로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른 삶을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수행이란 어렵고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 길 외에 더 잘사는 방법이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없다면 수행을 계속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길은 선택이 아니고 인간으로 태어난 유일한 의무입니다. 어떤 사람도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또한 미래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오직 현재에 있는 대상을 알아차릴 때만이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알아차림을 사띠(sati)라고 말합니다. 알아차림을 크게 두 가지 뜻으로 나누어서 말하는데, 하나는 기억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알아차림, 주시, 의식, 한문으로는 념(念)이라고도 합니다. 어째거나 사티라고 하는 알아차림의 뜻은 첫째는 기억이고, 둘째는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억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 알아차리고 있는 것을 기억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알아차림이 첫째 기억이라는 의미가 주는 뜻은 매우 심오합니다.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에 항상 알아차리는 것을 기억하라는 그런 뜻의 기억을 말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기억의 기본 바탕 위에서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여기서 말하는 기억은 과거를 회상하는 기억을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과거의 기억을 전부 배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전하는 기억으로 모든 것을 수용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의식 상태에서 깨어서 대상을 알아차리는 그런 기억을 말합니다. 이때 막연히 아는 것이 아니고, 지금 현재의 모든 조건을 분명히 식별할 수 있는 상태로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억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알아차리는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기억은 알아차림을 지속시키는 영속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념처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는 깨달음의 요소인 알아차림을 할 때 나에게 내적으로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는 나에게 내적으로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알아차림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성취되면 그것을 올바로 알아차린다. "
알아차림의 의미는 위빠사나 수행의 전 과정을 거쳐서 가징 강조되는 말이며, 위빠사나 수행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말입니다. 이러한 알아차림이란 말은 위빠사나 수행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에서 제일 처음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또 알아차림은 팔정도에서 정념이라고 하는 바른 알아차림에도 적용됩니다. 팔정도에서는 정견과 더불어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 바른 알아차림입니다.
또 알아차림은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을 말하는 오근에서도 나타닙니다. 오력, 오근이라고 말하는 것은 믿음, 노력, 알아차림, 집중, 지혜를 말할 때 오근의 하나로 여기에도 알아차림이 포함됩니다.
여기서 알아차림은 알아차림과 집중과 노력의 균형을 이루는 데 매우 중요한 역활을 합니다.
믿음, 노력, 알아차림, 집중, 지혜 다섯 가지 요소 중에서 어느 것도 다 지나치면 문제가 잇지만, 오직 알아차림 하나만은 많을 수록 좋습니다. 균형이 깨지면 수행을 하기가 어려운데, 이 알아차림 하나가 오근의 균형을 잡아 줍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합니다. ( - - ->다음회에 계속)
-묘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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