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13. 19:25ㆍ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질문자 : 삼매(samadhi)란 무엇인가요?
마하리지 :충만(充滿)되는 상태인데,무언가 가지고 싶은 대상을 있을 때에 그것을 얻게되면 누구나 만족할 것이오. 그대가 무엇인가 이익을 얻고 싶은데, 그것을 얻게 된다면 만족하지 않소.
질문자 : 삼매는 진아를 이해하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하리지 : 삼매 속에서는 그 충만된 상태가 있는데, 그것이 진아상태인 것이오. 그대에게 그 몸이 없으면 완전한 만족감이 있소.
질문자 : 삼매의 만족이 완전한 만족상태인가요?
마하리지 :그것은 음식기운으로 된 일종의 대상적 만족상태요. 음식기운의 성질인 그 지각성(나)이 만족속으로 가라앉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소.
모든 도인들은 그대 자신의 진아를 숭배하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오. 그들은 라마나 끄리슈나 같은 신을 숭배하는데, 그러나 처음에는 그런 신들을 숭배하다가 그런 과정에서 (내면에서) 그들에게 진아의 싹이 터올라오는 것이오 . 도인들의 가르침을 열심히 집중해서 오랫동안 듣다보면, 그 사람은 자기 (내면의) 진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내 그것에 마음의 주의를 줄 것이오. 그러고 나면 외부적인 대상에는 관심을 덜 가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점차로 그는 참나를 얻게 되는 것이오. 여러분들이 어떤 기회에 인연에 따라서 만나는 각자(覺者), 스승 혹은 도인에게 최대한 도움을 받아서, 그대자신이 "나는 무엇인가?를 깨쳐야 되고, 그리고 그 참나 안에 머물러서 안정되어야 하는 것이오.
우리는 이제까지 무지 때문에 모든 것을 마음에만 의존해 왔소. 마음이 우리의 스승이었고, 마음이 우리를 지시하고 이끌어 왔소.이제 마음이 내가 아니고 나와는 따로 떨어진 별개라는 것을 이해했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몸-마음과 별개로 뚝 떨어지게 되는 것이오. 그러므로 설사 내일 이 몸이 죽는다 해도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질문자 : 스승의 가르침을 들을 때 우리의 마음자세는 어떻게 취해야 합니까?
마하리지 : 스승의 모든 것을 조건없이 받아들이고, 스승을 사랑하고, 겸손해 하며, 스승에게 완전히 순복하는 것이오.
질문자 : 스승과는 얼마나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하나요?
마하리지 : 자기자신과 함께 있어야 하오.자신이 바로 그대의 스승이오.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은 생생하게 살있는 믿음이어야만 하오. 많은 생각들은 오고 갈 수 있겠지만, 그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오. '내가 있음' 안에 안정되게 머물러 있어야 하오. 그렇게 하는 것이 (현상으로 드러난)스승과 하나가 되는 것이오.
참스승은 이 스승인 "내가 있음"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자요. 우리가 절대자 안에 안정되게 머물러 있을 때에 그것이 바로 참스승인 것이오. 처음에는 참스승인 어떤 사람이 필요한데, 진리를 열심히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런 참스승이 저절로 (자기 앞에)나타나게 되어있소.
나의 본래적 상태에서는 나에게 아무 형상도 아무 생각도 없었소. 나는 '내가 있다'는 것을 몰랐는데, 홀연히 내가 어떤 형상과 '내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상태가 나타났소. 이것이 어떻게 나타난것이오?
이런 것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설명해 주는 사람을 참스승이라고 하오.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대담록-
[閑 談]
위 본문의 맨 윗문장에서, 질문자가 '삼매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마하리지가 '만족한 상태'라고 대답을 하셨는데, 제가 보기에 이 부분의 문장은 영어로 기록한 사람이 영어 표현이 좀 적절하게 표현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영어 표현에는 '만족하는 것'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제가 "충만된 상태"라고 임의로 번역을 바꾸어 놓았는데, 마하리지가 말씀하시는 원뜻은 아마도 '나'가 '대상'과 하나가 되어 '나와 대상이 완전히 일체가 된 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완전히 만족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마하리지가 실지로 말씀하신 내용은 '주체와 대상이 하나가 되어, 전부 주체도 대상도 사라진 충만된 상태"를 "완전히 만족한 상태"로 묘사한 것 같습니다.
또 맨 마지막 부분의 마하리지 대답부분에서, 마하리지의 말씀을 다시 간추려 보면, 마하리지가 말씀하시는 '스승'은 자기자신, 즉 개아의 '나'가 아니라, 우주적 나인 '내가 있다'존재의식상태를 말합니다. 즉 이원화 현상세계에서는 자기자신인 "내가 있다"가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하리지는 이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 즉 현상세계의 주시자인 "내가 있다"존재의식을 스승으로 굳게 믿고서 그 "내가 있음"에 안주하라는 것입니다.
보통 이원화 마음상태의 수행중간 단계에서는 이 "내가 있다"존재의식상태는 "나는 누구인가?" 또는 "이뭐꼬"의 오직 모르는 깊은 의단상태의 단계와 비슷합니다. 간화선의 "의단"상태가 바로 마하리지의 "내가 있음"존재의식상태에 대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말하자면 이원적인 현상계쪽에서 보자면 전혀 알수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바짝 깨어있어 모든 것을 주시하는 자 입장에서, 전체가 되어 안정되게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또는 절벽 위에서 한발을 아래로 내리고 있는 상태랄까? 이원적 현상계와 절대바탕의 중간 틈새에 끼어있는 연결부에 해당하는 상태입니다. 마하리지는 그 상태가 바로 현상계의 스승과 일체가 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주적)존재의식과 하나가 된 상태입니다. 그 상태에 안정되게 머물러서 가만히 유지하고 있으면 참스승(절대진아)이 홀연히 눈앞에서 나타나 인도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깨달은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서적의 가르침의 한 구절일 수도 있고, 아니면 숫닭 우는 소리일 수도 있고, 연못 속에 비친 달이나 자기 얼굴그림자일 수도 있겠죠. 절대진아가 이렇게 어떤 존재나 현상으로 화현해서 그 "내가 있다"의 상태에 있는 구도자를 절대바탕(진아)으로 이끌어서 인도해 준다는 것입니다.
맨 마지막 마하리지의 대답 구절의 마지막 세번째 줄인,
"나의 본래적 상태에서는 나에게 아무 형상도 아무 생각도 없었소. 나는 '내가 있다'는 것을 몰랐는데, 홀연히 내가 어떤 형상과 '내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상태가 나타났소. 이것이 어떻게 나타난것이오? "
이 구절은 마치 사람이 꿈도 없는 깊은 잠에 빠졌다가, 갑자기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서 내가 있음을 알아채는 순간과 비슷합니다. 꿈도 없는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는 나자신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나에게 어떤 모양도 생각도 없었죠. 그러다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서 "내가 있다"는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이 깊은 잠으로부터 갑자기 깨어나는 순간을 회상하면서, 그 깊은 잠의 상태와 깨어있음의 둘의 공통바탕에 있는 그 배경의 투명한 무(無)를 나와 동일시하는 사색을 한번 해 보면 이해할 것입니다. 분명히 깊은 잠 속에서도 깨어있는 내가 있었기 때문에 잠에서 갑자기 깨어나는 상태를 동시에 분명히 알아차린 것입니다. 그 모양없는 투명하고 항상 깨어있는 나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깊은 잠 속에서도 분명히 깨어 있었습니다. 깊은 잠 속에서도 깨어있는 것이 없었다면 어떻게 순간적인 깨어남을 알아차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원래 나는 잠과 깨어있음의 배경에 항상 공통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없고 투명한 나(앎)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점을 깊히 탐구해 보고 완전히 믿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원적인 현상, 개념적으로 상상해 보는 것이고, 실지로는 "나는 누구인가?" 또는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자기 내면(참나,참스승)을 향해서 깊히 참구해서 스스로 찾아 보아야지, 실질적이고 옳바른 실증을 체험적으로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가 있겠지요 !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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