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23. 10:11ㆍ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마하리지 : 육체 안의 신(神) 원리는 (언젠가) 몸을 벗어 버릴 것이야. 자네가 살아 있는 동안 그 원리를 알아야지. 그 원리를 알고 그것과 하나가 되라구. 육체란 영원히 자네와 함께 할 수가 없어.
의식은 절대 자각의 반영이긴 하지만, 육체가 있는 동안만 머물 뿐임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어야 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전부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 의식은 언젠가는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되는 거야.
우리가 먹는 음식은 24시간 안에 똥으로 변하지만, 우리 안의 그 (존재) 원리가 몸뚱이처럼 폐기처분되겠나?
자네는 이곳에 온 목적에 대해 진정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자네가 그 육체인가? 자네가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하는거야. 스스로 탐구해서 알아내야 해. 아주 진지하게 자기를 탐구해야지. 그럴 수있을 때에야 여기와서 내 이야기를 들어야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있는거야. 바로 지금 여기서 자네가 몸을 가지고 있을 때, 자네가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하는 거야.
깨달음법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 자네가 지금 깨달음법이라고 실행하고 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자네는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고 나서 그것을 똥과 오줌으로 배출하고 있는데. 똑같이 자네는 그 몸을 (똥을 버리 듯) 그 몸을 버려야 해. 또 음식은 그것을 먹을 때는 맛있지만 나중에는 악취가 나고 똥이 된다는 것을 상기해야 돼.
저 내면에 거주하는 영(靈), 이 육체 안에 거주하는 저 신적인 내재성, 그것에 대하여 부단히 탐구를 해야 돼. 그 내거하는 영(靈)이 신적이기 때문에 몸에 어떤 의미가 부여될 수가 있는거야. 만약 내거하는 영(靈,의식)이 몸을 떠나면 몸은 똥과 같이 쓰레기가 되는 거야.
자네는 결국은 그 하찮은 폐기물이 되고 말 그 육체를 돌보느라고 왜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자네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무슨 우정같은 것을 누리든 간에, 그것은 서로 마음들끼리 어울리는 동안에만 지속되는 것이야. 서로 의사가 맞지 않으면 금방 심기가 불편해 지고 결국은 우정을 저버리기도 하지. 생명기운이 몸을 떠나고 나면 몸은 폐기처분되고 만다는 것을 항상 거억하고 있으라구. 언제까지 그 몸뚱이에게 비위를 맞춰주려고 하나?
질문자 : 포기란 무엇인가요?
마하리지 : 포기란 자네에게 무엇이 쓸모없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버리는 것이야.
자네는 '내가 있음'이 무엇인지, "내가 있음"존재성보다 먼저인 저 (근본)원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어. 그것이 자네의 진아야. 그것은 몸이 아냐. 내가 자네에게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자네가 여기에 온 가장 중요한 목표이야.
무슬림 진인인 띠꾸 바바의 한 제자가 있었는데, 우리 담뱃가계로 매일 나를 찾아 오곤 했지. 하루는 그가 세상에는 많은 불행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어. 내가 그에게 말했지. " 그대가 태어난 원인을 탐구해 보십시오. 그 원인으로 세상의 모든 근심과 불행에 대한 약으로 처방하십시오. 그런 다음 그 이름으로 헌가를 만들어 보십시오." 그는 내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지. 몸의 창조주에게 불행의 해독제가 무엇인지 질문해 보라구. 의사와 정신과 의사들이 많지만 그들이 어떻게 할 수가 있나? 그런 환자를 그들이 어떻게 치료할까? 창조주에게 직접 물어 보아야되는데, 자네는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바로 실행에 옯길 수가 있겠나?
질문자 :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하리지 : 노력하면 그것을 활용할 수 있겠는가?
질문자 : 마하리지의 은총이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마하리지 : 은총이라는 것이 어디 따로 있는 것인가? 그것은 자네와 함께 있어. 자네가 그것이야. 이 몸의 창조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탐구해 보게나. 무엇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그 원인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는 사람 몸뚱이라고 하는 수억 수천만의 조각상(彫刻像)들이 있는데, 제각기 서로 다른 얼굴들을 하고 있어. 이제 자네는 몸이라고 하는 이 모습을 만든 자가 누구인가를 알아내야 해.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그 조각가는 누구인가? 그가 그 몸안에 있어, 아니면 없어?
-마하리지 대담록-
[한담(閑談)]
마하리지는 윗글에서 "육체가 나다"라는 관념을 빨리 버리라고 독촉하고 있습니다.
"내가 육체다"라는 관념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나는 무한한 의식이다"라는 관념에 한 발을 들여 놓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는 모양도 없고 무한한 의식이다"라는 관념도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윗글에서 육체 속에 깃들어서 육체를 움직이게 하고 쓸모있게 보이게 하는 것은 내재하고 있는 영(靈)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의식자체를 말합니다. 이 의식을 다른 말로 "내가 있음" 앎, 또는 존재의식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육체에 내재하는 영(靈)인 존재의식을 있게 하고, 주시하는 것이 바로 절대바탕의 진아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말로 절대상태 (파라브라만)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억지로 노력하는 수행을 통해서 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아는 것이 육체가 아니라, 근본 원리인 절대 진아의 작용인 것입니다. 눈을 통해서 보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실은 눈은 스스로 보는 작용을 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을 작용하게끔하는 것은 진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보는 것을 알고, 듣는 것을 알고, 맛보는 것을 알고, 깨어있는 것을 알고, 잠자는 것을 알고, 살아있다는 것을 아는 이 모든 인식작용을 하게 하는 근본 원리는 절대 진아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가 육체 동일시하고 있을 때는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모든 작용이 몸뚱이가 하는 것으로 착각 있지만, 자기가 육체라는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서, 자기가 모양없는 전체의식이라는 의식과의 동일시가 되면, 삼라만상 일체가 의식의 파동작용으로 만들어진 허망한 그림자라는 의식 작용 임을 이해하게 되고, 더욱 깊히 들어가면 결국 의식과의 동일시 관념조차 벗어나서 자기가 근본 원리인 절대 진아라는 확신이 오는데, 이때에 비로소 바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모든 인식작용이 육체의 작용이 아니라, 절대 진아에서 나오는 의식 작용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아는 자는 진아이고, 의식의 파동작용으로 육체 인식기관을 통해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도자의 관점이 어떤 수준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동일시 이해가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육체 동일시 관념으로 벗어나려면 그동안 덮혀있는 습업(習業)을 벗겨내는 수행이라는 것을 해야 되겠지요. 그러나 수행자체도 이러한 정확한 이해를 가지고 시작하지 않으면 절대 깨달음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이해하고 그 이해한 것을 실천에 옯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실예를 들면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이 태어나기 이전에 자신의 근본존재는 어떻했는가?'하는 화두같은 것에 대해 탐구하는 것입니다. '몸이 없을 때는 나는 무엇인가?'라는 내면의 탐구도 동일한 것입니다. 보통 "이 뭐꼬?"라는 화두를 드는 사람이 많은데, 무조건 남들이 "이뭐꼬?"화두를 든다고 남 흉내만 낼 것이 아니라, 정확한 견해(正見)을 가지고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육체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감각생기작용(세상)도 아닌데, 그러면 나는 누구(무엇)인가?' 이렇게 확실한 전제조건을 이해하고 나서 '이뭣고?'화두를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도 그 움직임이 알려지는 것이고, 육체도 모양이 있고 작용이 다 알려지는 것이며, 생기작용도 알려져서 세상이 나타나는데, 이렇게 알려지는 것은 이원적 대상화된 것이므로 '나가 아닌 것'입니다. '나'라는 보는 자(주체)는 보여지거나 알려지는 대상화가 절대로 될 수가 없는 것이죠. 따라서 모양도 없고 대상화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므로 나는 알려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나를 알수 없어서 '나는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내면으로 묻고 있는 중에 어떤 심리현상이나 무엇인가 형상,기분,이미지,느낌 등으로 어떤 체험이 드러나게 되면, 이것들도 역시 알려지는 것이므로 <대상화> 된 것이므로, 망상일 뿐이며,진짜 '나'가 아니죠. 이런 마음 가짐을 변함없이 유지하면서 끊어지지 않고 꾸준하게 '이뮛꼬'나" "부모가 태어나기 전에 나의 본래존재는 어떤 것이었나?" 또는 "나는 누구인가?" 등을 오로지 내면을 향해 의심을 해 나가면 '나가 사라지는 삼매상태'를 접하게 됩니다. 수행하기 전에 자기가 수행하고 있는 깨달음법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별도 없는 깜깜한 밤 중에 고향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방향감각을 잃은 미아(迷兒)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수행을 하면서 어떤 요행이나 신의 기적이 나에게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은 절대 금물입니다. 모든 나타나고 알려지는 것은, 세상까지도 전부, 의식의 파동작용의 장난이며, 꿈과 같은 망상임을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무한진인-
'성인들 가르침 >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뿌라끄리띠와 뿌루샤의 일과 전혀 무관하다 (0) | 2016.05.29 |
---|---|
억지로 의식을 초월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0) | 2016.05.06 |
이 현상계는 "내가 있다"는 작은 점(부라마란드라)이 지탱하고 있다. (0) | 2016.01.24 |
이 현상계의 삶이란 미현현자(未現顯者)가 꾸는 꿈이다. (0) | 2016.01.20 |
참나는 즉유(卽有)하는 것이며, 가장 친밀한 것이다. (0) | 2016.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