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뿌라끄리띠와 뿌루샤의 일과 전혀 무관하다

2016. 5. 29. 11:47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질문자 : 사람들이 저한테 와서 마하리지님의 가르침에 대해 묻습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마하리지 : 그 대답을 안다면 얼마든지 대답해 주라구. 허나 자신을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말아. 그 사람이 외면적인 대상에만 관심이 있을 때는 즉흥적으로 그때 그때 알아서 대답을 해주라구, 그러나 이해하려는 열정을 가진 진지한 자세라면, 그 사람과 그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의를 해봐야 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바른 지식을 전해주게 되면, 그 사람과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또 다름사람들에게 피해를 줄수도 있겠지.

질문자 : 제가 진아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하리지 : 우리가 사물을 지각하지만, 지각을 가능케하는 그 원리가 우리 자신(참나)이라는 것을 이해해야지.

보통 개인은 자신이 보거나 지각하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자신으로 동일시하는데, 자네는 지금 여기 존재하는 근본 원리가 무엇인지 잘 이해를 해야 돼. 자네의 탄생은 기본적으로 자궁과 연관되어 있는데, 그 전 과정을 분명하게 이해해야지. 자칭 스승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옳게 깨닫지를 못한 것 같애. 다만 그들은 과거부터 말로만 전해내려오는 전통적인 개념적인 내용을 가르칠 뿐, 그 말이 나온 뿌리로 돌아가지 못하지. 자기 자신의 관념과 개념에 따라 이런 저런 종교를 창시한 예언자들이 몇 사람이 있었지만. 이런 종교들은 여러가지 계율을 정하여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지 마라'고 하는데, 이런 '하라'와 '마라'들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의 기본적 본능에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한 힌두교도가 소에게 돌을 던졌는데 소가 죽었지. 그 힌두교도는 자신의 종교 때문에, 자기가 큰 죄를 지었다고 괴로워하며 죄의식을 느끼지만, 그러나 다른 종교의 사람들은 소를 도살해서 그 고기를 먹어치운다네. 그들에게는 그것이 죄가 아냐. 도살자와 그 가족들은 아주 행복해 하고, 평안하게 잘도 살아간다구. 그들은 전혀 죄에 대한 영향을 받지 않지. 반면 힌두교도는 죄를 씻기 위해 전통적인 거창한 참회의식을 거행한다네. 자네는 이런 여러가지 전통 규범 속으로 들어가지를 말고, 뿌리로 바로 들어가야 돼. 잉태되었던 자궁에서 벗어나고, 자네가 태어난 그 씨에서 벗어나야 돼. (자네가) 잉태될 때 자네의 존재성은 잠재적인 상태에 있었는데,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태아 속에서 그 몸의 형성과정이 저절로 일어나는데, 그것(존재성)이 그대라고 생각하는가? 그대는 지금 마음이 그렇게 안정되어 있지 않아. 나는 이야기를 할 때 마다 자네에게 그 근원(내면)으로 향해가길 바라는데, 자네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외부(대상세계)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어. 근원은 지각할 수 있는게 아닌데, 그에 대해 무슨 질문이라도 할수가 있겠나?


질문자 : 그 첫 번째 몸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마하리지 : 처음이든 마지막이든, 과정은 동일하다구.

질문자 : 만일 시작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고 아무 것도 끝나지 않습니다.

마하리지 : 여기서는 말로 표현될 수가 없어. 근원 안에서 머물러 있어야 돼. 거기에 자리 잡고 있으면 답변을 얻게 되어 있어. 브라끄리티(남성원리)와 뿌라샤(여성원리)라는 이 두 원리에서, 뿌루샤는 정지해 있는 것을 뜻하고 쁘라끄리띠는 움직임의 원리야. 이것들은 몸도 없고 형상도 없어. 우리는 바로 허공성에서 시작되는데, 허공성은 안정되어 있고 (허공에는) 기의 흐름인 쁘라끄리띠가 있지. 그래서 쁘라끄리띠의 투사(投射)가 거기서 시작되는 것이야.

공기와 하늘 사이에서 마찰이 있고 그 마찰에서 열이 나오는데, 이 열이 가라앉을 때 그것은 물의 형태로 스며 나온다네. 그 물이 비로 내리고, 그것이 안정되는 곳에서 대지의 형성이 일어나며, 대지로부터 식물의 발아가 일어나게 되지. 이것은 모두 쁘라끄리띠와 뿌루사의 유희야. 그것이 대지와 식물의 단계에 이를 때에야 몸들, 형상들, 모습들의 형성들이 일어나는 것이야. 그러고 나면 다양한 벌레들, 짐승들, 인간들이 태어나게 되지. 그러나 그 모든 형성은 허공 안에서 이미 정해져 있었어. 운명은 허공 안에서 이미 결정되는 것이야.

허공 안에서 뿌루샤와 쁘라그리띠의 접촉이 있고, 그 최종적 완성은 인간, 짐승들의 몸이 창조되는 것이지. 힌두신화에서는 8천 4백만종이 있다고 하데.


질문자 : 그 창조를 일어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마하리지 : 그것은 실재하지 않지만, 마야의 영역에서는 실재해. 이 모든 게임을 이해하고 나서 그곳에서 빠져나오게나.


질문자 : 만약 그것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왜 우리가 그것을 이해해야 합니까?


마하리지 : 그럼으로써 자네는 이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이해하게 된다구. 탐구의 과정에서 자네가 더 이상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 '나는 쁘라끄리띠와 뿌루샤의 일과 전혀 무관하다'고 깨달을 때 자네는 해탈하게 될 것이야.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대담록-

[閑 談]

맨 밑의 밑줄 친 문장에서 <'나는 뿌라끄리디와 뿌루샤의 일과 무관하다'고 깨달을 때 자네는 해탈하게 될 것이야>라는 문장에서  "쁘라끄리디와 뿌루샤의 일"이라는 것은 파동성 의식의 작용을 말합니다. 즉 나는 파동성의식의 움직임과는 전혀 상관없음을 아는 것이 바로 깨달음,해탈했다는 말씀입니다.

움직임없는 절대본체에서 어떤 원인도 모르게 절대 한점에서 최초 움직임이 몰록 움직이는데, 이 절대 본체 측의 움직임의 첫 시작점이 바로 뿌루샤라고 부릅니다. 이 점을 여성성이라고도 부르는데, 절대본체의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점이라고 해서 여성성(-)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이 뿌루샤에서 움직이다가 다시 본체 쪽으로 되돌아 오는 반환점을 거쳐 움직이는 점을 뿌라끄리띠라고 부르는데, 이 브라끄리띠는 마치 움직이고 있는 점처럼 느껴지므로 남성성(+)이라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지구의 어스접지와 연결된 피뢰침을 뿌루샤(음극, 마이너스)이라고 하면, 전기를 띤 구름은 푸러스, 즉 뿌라끄리띠라고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번개의 경우는 정전기를 띤 구름과 지구(어스) 사이에 푸러스  또는 마이너스의 어스와 구름이 서로 정전기로 대전(對電)해 있다가 갑자기 구름과 대지사이에 거대한 전기 에너지가 흐르므로서 번갯불과 천둥소리가 나는 것이죠. 그와 같이 푸르샤와 쁘라끄리디 사이에 교번적인 에너지가 작용해서 파동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인데, 이 처음 생가는 절대본체의 기본 에너지파동이 바로 존재의식파동을 만들어 내고 이 존재의식 기본파동 안에서 공(空),지(地),수(水), 화(火), 풍(風)이라는 기본 주파수 스펙트럼이 분리되어 현상계를 구성하는 지,수,화,풍,공, 기본 오원소인 5가지 기본 파동 주파수 스펙트럼이 분리되어 비추어집니다

이것은 마치 무색(無色)의 태양광이 미세한 물방울의 장애를 받아서 반사되어 빨주노초파남보라는 다양한 색갈의 무지개빛이 분해되어 나타나는 작용원리와 비슷합니다. 이것이 의식의 가장 기본 파동인 존재의식의 뿌리에서 지수화풍공 오원소가 파생되어 비추어 나오는 원리입니다. 따라서 이 오원소끼리 서로 상호작용하여 이 현상계의 다양한 형상을  조합하고 만들어서 나타내 보이는 것이죠. 그런데 이 육체의 감각기관을 매개로 하여 반사된 다양한 현상계가 나타나는 것이므로, 육체가 없으면 이러한 오원소도 없고, 수억천 다양한 형상들도 원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식의 파동성은 절대본체의 입장에서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의식 파동작용의 홀로그램 그림들인 이 현상계를 환영이라고도 부르며, 마야라고도 부릅니다. 마야라는 인도말은 그 원래 본뜻이 "없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원래는 없는 것인데, 의식의 파동작용으로 인해서 마치 있는 것처럼 여긴다고 해서  "마야" 또는 '환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파동작용 자체가 일정한 에너지의 움직임이 같은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진동하는 것으로써 파동의 양(+)과 음(-) 부분을 궤환(피드백)해서 합성시키면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없는 無(제로)가 됩니다.

따라서 이 현상세계와 나라는 느낌이 모두가 의식의 파동작용으로 생긴 환상의 그림자라는 것을 체험적으로 깨달으면 해탈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뿌라끄리띠와 뿌르샤의 일'이라는 것이 의식의 파동성 작용을 말하고, 의식의 파동성이란 바로 우리 앞에 나타나 보이고 들리고 느끼는 모든 현상계와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의 작용을 말하므로, 결국 이것들이 모두 환상과 같은  부질없는 의식의 파동성 작용의 그림자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것이 바로 해탈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의식의 파동성 작용의 결과물들이 바로 나라는 느낌과 이 현상세상이며, 모두가 환상의 그림자임을 스스로 탐구하여 깨달아야 합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