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공부(63)

2015. 6. 21. 09:28성인들 가르침/능엄경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63회]


3. 여래장은 평등 무차별


3-1. 부루나의 의혹

[본문]

[富樓那言호대 我與如來 寶覺圓明眞妙淨心 無二圓滿이나 而我昔

無始妄想하야 久在輪廻일새 令得聖乘이라도 猶未究竟어니와 世尊諸妄一

切圓滅하사 獨妙眞常이라 敢問如來하노니 一切衆生何因有妄하야 自蔽妙

明受此淪溺이닛고 ]

  부루나가 말했다.

“저와 여래의 보각원명(寶覺圓明)한 진묘정심(眞妙淨心)은 서로 둘이

니어서 원만하건만 제가 시작도 없는 과거로부터 허망한 생각을 내어 오랫

동안 윤회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지금 성인(聖人)의 과(果)를 이루었는데

아직 완전하지 못하거니와 세존께서는 모든 허망함이 다 없어져서 홀로

하고 진실하고 항상하십니다. 감히 여래께 묻습니다. 일체중생은 무슨

으로 허망한 생각이 있어서 스스로 묘명(妙明)을 가리우고, 이렇게 윤

빠지게 되었습니까?”

[해설]

​보각원명(寶覺圓明)은 여래장의 본체(體)를 말하는 것이고, 진묘정심(眞妙淨心)은 여래장의 작용(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부처님의 여래장이나 부루나의 여래장이나 그 본체와 작용이 다 같은 것인데, 즉 모두 전체에 두루한 하나인데. 어째서 부처님은 모든 망상이 없어져서 홀로 묘하고 진실하고 항상한 상태에 우뚝 있는데, 부루나 자기는 과거의 허망한 망상에 휩쓸려서 오랫동안 윤회를 하다가 그래도 도를 좀 공부해서 소승의 아라한까지는 도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완전하게 깨달음을 얻지를 못했는데, 저와같이 일체 중생들은 무슨 원인으로 허망한 망상이 묘하고 밝은 여래장을 가로막고 있어서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느냐고 아직도 자기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의혹을 부처님께 다시 여쭙고 있는 내용입니다. 위에서 부루나가 성인의 과를 이루고 있다고 말하는데, 아마도 소승 아라한과까지는 도달한 것 같은데, 부처님처럼 완전한 구경각 까지 이르지 못해서 아직 무명(無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3-2. 미혹은 미혹 자체의 원인으로 있을 뿐이다.

[본문]

[佛告富樓那 汝雖除疑 餘惑未盡이니 吾以世間現前諸事 今復問汝

리라 汝豈不聞 室羅城中演若達多 忽於晨朝에 以鏡照面이라가 愛鏡

中頭眉目可見하고 瞋責己頭不見面目일새 以爲魑魅하야 無狀狂走하니

於意云何此人何因無故狂走 富樓那言是人心狂이요 更無他故니다 ]

 부처님이 부루나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비록 의심은 제거하였으나 아직

나머지 의혹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내가 세간의 드러난 가지가지 일을 가지

고 다시 네게 묻는다. 너는 어찌 듣지 못하였느냐? 실라벌성의 연약달다

(演若達多)가 갑자기 이른 새벽에 거울로 자기 얼굴을 비추어 보다가 거울

속에 있는 머리는 눈썹과 눈이 가히 볼만한데 그러나 자기 머리에는 얼굴

눈도 보이지 않는다고 성을 내면서 이것이 도깨비라고 여겨, 까닭 없이

달아났으니 너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무슨 인연으

까닭 없이 미쳐 달아났겠느냐?”

 부루나가 말했다. “그 사람은 마음이 미친 것일 뿐, 다른 까닭은 없습

다.”

[해설]

부루나가 비록 의심은 제거되었으나 아직 나머지 의혹은 다 버리지 못하였다는 말은, 다시 말해서 소승의 아집(我執)은 없어졌으나 법집(法執)이 남아 있으니깐, 아직 완전히 미망(迷妄)이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루나 네가 아직 의심이 없어지지 못한 그것에 대해서 말해주겟다는 것입니다.

즉, 실라벌성에 사는 연아달다라는 사람이 새벽에 잠에서 갑자기 깨어나 처음으로 거울을 보면서 거울 가운데 비친 머리가 자기 그림자가 비친 것을 모르고 딴 사람인 줄 착각하며, 그 얼굴에 눈썹과 눈이 보기 좋은데, 어째서 자기 머리에는 얼굴과 눈도 없고 코도 없는가고, 성질을 내면서, 그 거울에 비친 상이 도깨비라고 여기면서 마음이 미쳐서 거울 앞에서 달아났는데, 이 사람의 미친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부처님이 부르나에게 묻습니다. 이 사람이 무슨 원인으로 까닭없이 미쳐서 달아났느냐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부루나가 대답하기를 그 사람은 단순히 마음이 미친 것 뿐이지, 즉 정신이 바로 서지 않아서 일 뿐이지, 다른 원인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즉 우리의 무명(無明)은 아무 까닭도 없이 미쳐다는 것에 비유한 것이죠.


 [본문]

[佛言妙覺明圓하야 本圓明妙어늘 旣稱爲妄인댄 云何有因이니 若有所因

인댄 云何名妄이리요 自諸妄想展轉相因하야 從迷積迷하야 以歷塵劫

雖佛發明이나 猶不能返이니라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묘각(妙覺)이 원명(明圓)하여 본래로 원명묘(圓

明妙)하거늘, 지금 이미 허망이 되었다면 거기에는 원인이 있을 것이

무슨 원인이 있었으며, 원인이 있는 줄 알았다면 어떻게 허망이라 부를

있겠는가? 본래는 허망이 없는데 스스로의 망업(妄業) 때문에 가지가

지 망상이 전전(展轉)히 서로 원인이 되어 미혹에다 미혹을 쌓아 수많은

세월을 지내왔으므로, 비록 부처님이 깨우쳐 주었으나 아직도 돌이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해설]

부처님이 부루나의 대답을 듣고는 다시 말씀하십니다.

'묘각이 원명하여 본래로 원명묘하거늘'이라는 말은, 깨달음(覺)자리의 묘하고 밝고 원만한 것이 새로 닦아서 얻는다든지 그런게 아니고, 본래부터 구족해 있는 두루하고 밝고 묘한 것, 이라는 말입니다.

이미 망(망)이라고 말했으면 그것은 무슨 원인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원인이 있으면 실제한다는 것인데, 허망한 망(妄)은 원인을 찾으려 한다면 쓸데없는 짓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마음이 미쳐서 달아난 것뿐이지 머리가 없어진 것도 아니고 아무 까닭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미쳐서 도망갔느냐는 것입니다. 그 망(妄)은 까닭이 없다는 것이죠.

만일 원인이 있다면 그것은 실제이지 망(妄)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무명이 생겼는가? 원래부터 까닭이 있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망(妄,미혹)으로 인해서 망(妄,미혹)이 생긴 것이지, 망 외에 어떤 특별한 다른 원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眞)에서 망(妄)이 생겨다고 하지만, 眞과 妄이 하나인데, 妄이란 眞을 모른다는 말이니깐, 眞을 의지해 妄이 생겼다고 하지(달이 있으니깐 달 그림자가 있다고 하지), 眞이 妄을 냈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망상을 쫏다 보면 또 다른 망상이 일어나고, 미혹이 자꾸 쌓여서 수많은 시간과 함께 망(妄)이 두껍게 덮히면, 비록 부처님이 아무리 그것이 원인이 없다고 해도 중생들이 그것을 명확하게 깨달아 되돌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워낙 중생의 무명의 껍때기가 두껍게 덮혀 있어서, 원래는 무명이 없는 것인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如是迷因 因迷自有이니 識迷無因하면 妄無所依尙無有生어늘 欲何爲

이리요 得菩提者如寤時人 說夢中事인달하야 心縱精明이나 欲何因

으로 取夢中物이며 況復無因으로 本無所有리오 ]

 이와 같이 미혹의 원인은 바로 미혹으로 인하여 스스로 있는 것이니 미

에 인(因)이 없음을 알면 망념이 의지할 데가 없을 것이요, 이와 같이 미혹

이 오히려 생(生)이 없거늘 어떻게 멸(滅)이 있다고 하겠는가? 깨달음을

었다는 것도 마찬가지, 마치 잠을 깬 사람이 꿈속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는 비록 꿈속의 일이 분명하지만 어떻게 꿈속의 사물을 취할

수 있겠으며, 더구나 인(因)이 없어 본래로 있지 않은 것이겠느냐?

[해설]

이와같이 미혹의 원인은 바로 미혹 그 자체로 인하여 스스로 있는 것인데, 이 미혹 때문에  스스로 산하대지(山河大地)인 이 세상의 과(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연하달다가 미쳤기 때문이지, 다른 것 때문이 아니듯이, 미혹 때문에 이 세상, 산하대지가 나타난 것이지,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혹이라는 것이 그 자체 원인이 없다는 것을 알면, 이런 망념이 의지할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미혹을 의지한 것이 망념(妄念)인데, 미혹이 원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 놓으면 망념이 어디를 의지해 생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도, 꿈을 깬 사람처럼 꿈 꿀 때는 미혹(迷惑) 되어 있었지만, 꿈을 깨고 나서 꿈 속의 일을 말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에 꿈 꾸는 일은 분명히 나타나지만, 꿈 속에 본 물건을 실제로는 얻을 수 없는 것처럼 허망한 것이라는 것입니다,그런데 '하물며 다시 원인이 없어서 본래 있지 않은 것이랴?'라는 말은, 잠자기 때문에 꿈이 생겼고, 본래부터 아무 것도 없었고, 공연히 미혹해서 그런 것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如彼城中演若達多 豈有因緣이리요 自怖頭酒이니 忽然狂歇하면 頭非

이며 縱未歇狂이라도 亦何遺失 富樓那 妄性如是어니 姻何爲在

리오 ]

 저 실라벌성의 연약달다가 어찌 미친 인연이 따로 있었으리오? 스스로

리에 눈과 얼굴이 없다고 두려워 달아난 것뿐이니 홀연히 미친 증세가

쉬면 그 머리에 눈과 얼굴이 밖에서 얻어진 것이 아니며, 비록 미친 증세

가 없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또한 어찌 잃어버린 것이겠느냐? 부루나야,

미혹의 성품이 이와 같거니 인(因)이 어찌 따로 있으리요?

[해설]

연아달다가 도깨비라고 놀라서 달아난 그 미친 행동이 까닭이 없다는 것입니다. 미쳐서 달아날 때도 머리는 그냥 머리대로 있는데, 공연히 마음이 미쳐서 도깨비와 같이 얼굴과 눈이 없다하여 달아났지, 즉, 그 미혹한 것이 없어지기만 하면 이 산하대지라는 분별세상의 그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비록 미친증세가 없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머리는 머리대로 있으니깐 조금도 잃어버린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누구든지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데, 부처님 말씀은 '원인이 있으면 미혹을 망념이라고 하겠느냐, 그러니 원인이 없다'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망념(妄念)이 생기는 그 원인은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汝旦不隨分別世間 業果衆生 三種相續하면 三緣斷故三因不生하야

則汝心中演若達多 狂性自歇하리라 ]

 네가 다만 세간(世間)과 업과(業果)와 그리고 중생(衆生)의 세 가지 상속을 따르고 분별하지 아니하면 삼연(三緣)이 끊어지기 때문에 삼인(三因)도 생기지 아니하여 곧 너의 마음속에 연약달다와 같은 미친 성품이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해설]​

지나간 장에서 세간(世間), 중생(衆生), 업과(業果) 같은 것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업이나 과, 세간, 출세간, 중생, 부처, 등의 분별심을 일으키니깐 자꾸 여러가지가 새기쳐 가며 이어가지만, 미친 것을 따로 쉬는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분별을 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분별이란 차별을 내서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삼종상속(三種相續)하는 것을 따라 분별행위를 하지만 않으면, 삼연(三緣)이 없어지고 삼연을 분별하던  삼인(三因,殺盜淫)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삼인은 세혹경계(世惑境界)를 말하며, 삼연(三緣)은 진혹경계(塵惑 境界)를 말합니다. . 이것이 바로 닦는 일없이 닦는 다는 무수지수(無修之修)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갖 것을 차별하고 분별하지 않으면 마음 가운데 있는 미친 증세가 다 쉰다, 우리가 아집과 법집으로 분별하기 때문에 중생이 따로 있고, 부처가 따로 있지, 그렇지만 않으면 다 같다는 것입니다.


3-3. 미혹이 사라지면 바로 각(覺)이다.

[본문]

[歇卽菩提勝淨明心 本周法界 不縱因得이어니 何籍劬勞肯綮修證

이리요 ]

 무명이 쉬면 곧 깨어 있는 맑고 밝은 수승한 마음[勝淨明心]이 본래

법계에 두루해 있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어찌 애써 수고로이 뼈와 살을 나누는[肯綮] 등의 닦고 증득함을 빌

리겠는가?

[해설]

누가 가르쳐 주어서 마음을 닦아 얻는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미친 증세만 쉬면 (​연아달다의 머리가 그대로 있는것과 같이) 삼종 분별(三種分別)하는 것만 없다면 깨어있는 밝고 맑은 마음, 즉 승정명심(勝淨明心)이 본래부터 법계에 충만해 있으니까,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애써 공부하지 않아도 분별만 안 일으키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즉, 세간(世間), 업과(業果), 중생(衆生)의 삼종상속(三種相續)하는 것만 분별하지 않으면, 따로 닦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미혹되어 그것을 모르니까, 자꾸 애써 닦는 것이지 정말 알고 닦을 때는 무수지수(無修之修), 닦는 것이 없이 닥아야 된다, 분별을 하지 않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 거울 가운데 있는 영상, 그대로 거울이 되어야지, 영상을 따로 떼어 버리고 거울이 된다고 하면 미륵불이 하생하더라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선(禪)하는 이와 교(敎)하는 이의 차이라는 것인데, 교학(敎學)하는 이들은 삼아승지겁을 차근차근 닦아나가서 번뇌가 끊어져야 된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서 화엄경이나 능엄경 같은 원교에서는 차근차근 닦는 것을 말하지 않고, '닦을 것이 없다', '깨닫기만 하면 된다'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문]

[譬如有人 於自衣中繫如意珠호대 不自覺知하고 窮露他方으로

食馳走인달하니 雖實貧窮이나 珠不曾失일새 忽有智者指示其珠하면

所願從心하야 致大饒富하며 方悟神珠 非從外得하리라 ]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옷 속에 여의주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고 가난하게 타향에서 걸식하며 돌아다니는 것과 같아서,

비록 가난하기는 하나 일찍이 여의주를 가리켜 주면 소원대로 마음

을 따라서 큰 부자가 될 것이요, 그때서야 비로소 그 신비로운 여의

주가 밖에서 얻어진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해설]

여의주는 용이 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는 아마도 아주 귀한 보배구슬(寶珠)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여의주만 가지고 있으면 온갖 일이 원대로 이루어진다는 그런 뜻으로 지어진 얘기같습니다.

여의주를 몸속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있는 줄을 모르고는 품팔이 해서 밥을 얻어먹고 다닌다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원래 법화경에 있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옷속에 여의주가 있다고만 했습니다만, 법화경에서는 어떤 가난한 사람이 잘 사는 친구의 집에 가서 대접을 잘 받고 하룻밤을 잤는데, 그 친구는 볼일이 바빠서 아침 일찍 나가야 되는데, 이 가난한 사람이 곤히 자고 있어 깨우지도 못하고, 옷고름 속에 여의주를 달아주고는 볼일을 보러 나갔는데, 이 가난한 사람은 옷 속에 여의주가 달린 것은 모르고, 여전히 힘든 품을 팔아서 밥을 얻어 먹다가 다시 그 잘사는 친구를 만났는데, 아무 때 여의주를 몸에 달아주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아직도 그러고 있느냐?"는 얘기를 해주어, 그 여의주를 팔아 훌륭히 잘 살았다는 법화경의 비유가 있습니다.

여기서 여의주를 차고도 걸식하는 사람은 여래장, 불성 자리가 자기에게 있는 줄 모르고 육도를 윤회하면서 구차스럽게 사는 중생이고, 여의주를 달아주었던 부잣집 친구는 부처님을 가리킵니다.

제 몸에 가지고 있지, 딴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이 지금 우리가 허망하다고 하는 것이 '나'라고 하는 느낌 때문인데, 우리에게도 불성자리가 있으니 알기만 하면 그것으로 끝난다는 말씀입니다. 연아달다가 미쳐서 달아났지만, 머리는 없어지지 않은 것처럼, 우리에게도 여래장 묘진여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까지가 부루나와의 문답이 끝나고,, 다음부터는 처음과 같이 다시 아난과의 문답이 이어집니다.

​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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