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금강경의 "구경(究境)에는 내가 없다."에 대하여(4)

2014. 3. 9. 19:57성인들 가르침/금강경

 

 

무한진인의 금강경 이야기(38)

 

제17분 구경에는 내가 없다(4)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아뇩다라삼보리를 얻었다고 할 만한 어떤 법이 있느냐?

"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 말씀의 뜻을 이해하기에는 부처님께서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아뇩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할 만한 어떤 법도 없읍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수보리여, 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할만한 어떤 법도 있지 않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법이 있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라면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하시기를 '네가 다음 세상에 마땅히 부처를 이루어 석가모니라 하리라'고 하시지 않으셨을 것이지만, 실로 어떤 법이 있지 않은 경계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기에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네가 다음 세상에 마땅히 부처를 이루어 석가모니라 하리라'고 수기하셨느니라. 왜냐하면 여래란 모든 법에 여여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여래가 아뇩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말한다면 수보리야, 그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며, 사실이 아닌 것에 집착하여 나를 비방하는 것과 같다.

금강경에서 중요한 핵심을 더욱 강조해서 각인시키기 위해서 부처님이 간혹 과거 전생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집어 내어 예를 들곤 했읍니다.

예를 들면 제10분에서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여래가 연등부처님 밑에서, 어떤 대상을 얻은 바가 있느냐?" 고 물으니, 수보리가 "여래께서는 연등부처님 밑에서 어떤 대상도 없어서, 얻은 바가 없읍니다." 라고 대답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번 17분의 내용과 거의 비슷한 내용입니다.

"대상"이라는 단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단어로 바뀐 것 뿐입니다.

또한 제14분에서는 부처님이 인욕선인으로 수행하고 있을 때에 가리왕에게 육체를 절단 당할 때도 아상, 인상, 중생상,수자상의 사상이 없었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아뇩다라삼보리를 얻었다고 할 만한 어떤 법이 있느냐?>는 부처님의 물음을 다른 측면으로 보자면 < 연등부처님 처소에 있을 때 내가 아상, 중생상, 인상,수자상으로 사상을 가지고 있었겠느냐?>라고 묻는 것이나 같읍니다.

 

만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라는 무엇인가를 얻었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진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은 것이 아니라, 어떤 유사한 관념적인 대상이나 체험이라고 볼 수가 있는데,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것은 얻을 수 있는 어떤 관념적 대상이 아니라, "나"가 없어서 어떤 대상도 없고,어떤 체험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말하자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주객 이원화 상대세계에서 비이원화 절대세계로 향하도록 이끌기 위하여 이원화 세계에서 설정한 하나의 관념적인 대상이며, 그 이름만 있을 뿐, 실체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관념적인 대상이나 체험도 없으려면 그 주체인 "나"가 사라져야 되겠지요.

따라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는 생각도 없다면, 아상, 중생상,인상, 수자상의 사상도 모두 사라졌다는 말과 같읍니다.

그래서 "내가 있다"는 생각이 모두 사라지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말할 주체인 "나"가 없으므로 어떤 것도 얻은 바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아뇩삼먁삼보리라는 어떤 관념적인 대상을 얻었다고 생각했겠느냐?'라고 물었는데. 만일 이런 아뇩삼먁삼보리, 무상정등각이라고 불리우는 관념적인 어떤 대상적 체험을 얻었다고 여긴다면 진짜로 아뇩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수보리로 하여금 넌즈시 직접 확인시켜주기 위한 위한 질문이라고 볼 수 잇읍니다.

당연히 수보리는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 말씀의 뜻을 이해하기에는 부처님께서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아뇩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할 만한 어떤 법도 없읍니다.">

수보리도 부처님의 묻는 의도를 알아차려서, "부처님이 그런 관념적인 어떤 대상을 얻은 것이 없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어느 수행자가 운문스님에게 "부처가 무엇이냐"고 묻읍니다.

운문스님이 대답하기를 "마른 똥막대기다"라고 대답합니다.

부처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깨달음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인데, 수행자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즉 이원화된 관념적 대상(부처에 대한 관념)을 타파시켜 주기 위하여 운문스님은 '마른 똥막대기'라고 대답합니다.

바로 "부처"란 마른 똥막대기처럼, 요즘 말로 똥 닦고 버린 휴지쪼가리처럼 아무 쓸데없는 헛된 관념의 껍때기라는 것을 충격적으로 대답해 주는 것이지요. 

이것은 누군가가 "아뇩삼먁삼보리는 무엇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마른 똥막대기가"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하자면 이원적인 관념적 대상이기 때문에 똥막대기와 같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비슷한 예를 들어보면, 어느 수행자가 동산스님에게 "부처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동산스님이 즉시 "삼세근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삼세근이란 바로 스님들이 입고 있는 베옷가사 한벌을 말합니다.

그 삼세근의 한벌 베옷이 부처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을 듣기에 따라서는 '그 세근 삼베옷을 걸치고 있는 중인 네가 바로 부처다'라고 말씀으로 알아들을 수도 있겠읍니다만,

정확하게 읽자면,스님의 육체 겉에 걸친 베옷을 부처라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보아야지요.

바로 "부처"라는 생각과 이름은 '중인 네가 겉에 걸치고 있는 그 겉껍때기 베옷처럼,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가치없는 관념일 뿐이다"라는 말씀이라고 알아들을 수도 있읍니다.

"부처"라는 이름과 그에 대한 관념은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가치없는 겉껍질의 베옷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라는 그런 이름과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자기가 입고 있는 세근 삼베옷에 집착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도 결국 부처라는 이원화된 관념적인 대상을 즉시 타파해 주기 위한 대답입니다.

 

<"그렇다, 그렇다 수보리여, 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할만한 어떤 법도 있지 않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법이 있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라면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하시기를 '네가 다음 세상에 마땅히 부처를 이루어 석가모니라 하리라'고 하시지 않으셨을 것이지만, 실로 어떤 법이 있지 않은 경계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기에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네가 다음 세상에 마땅히 부처를 이루어 석가모니라 하리라'고 수기하셨느니라. 왜냐하면 여래란 모든 법에 여여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수보리의 대답에 부처님이 '그렇다,그렇다'라고 긍정을 하십니다. 그리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할만한 어떤 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당시 부처님이 무엇인가 깨달은 체험을 얻었다고 말씀하셨다면 연등부처님이 깨달음을 인정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따라서 아상, 중생상, 인상 수자상의 사상이 없었서 아무 것도 얻은 바가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연등부처님께서 "다음 세상에 석가모니라는 성인으로 다시 태어나리라"라는 수기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에 대한 야부스님 선시 한수 읽어봅니다.

<위로는 한조각 기와도 없고

아래로는 송곳 꼿을 데도 없도다.

해가 지고 달이 떠도

알 수 없어라, 이 누구인가?

아! 슬프다.>

-너무 가난해서 가진 것이 없으나 그 깊은 속은 숨길 수가 없도다-

 

<왜냐하면 여래란 모든 법에 여여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여래라고 부르는데, 이는 모든 법에 평등하게 공통된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법이란 바로 현상계의 만물, 즉 색,성,향,미,촉을 말하며, 색수상행식의 오온을 말하기도 합니다. 모든 현상계가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한 다양한 파동의식의 경계로 그려진 것이므로, 그 모든 법에 공통되고 평등하게 있는 것이란 바로 공통적인 존재바탕을 말하며, 모든 것이 그곳에서 나온 한점의 공통 뿌리라고 볼 수가 있읍니다.

요즘 말로 모든 경계의 분별을 벗어난 절대바탕인데 마치 현상계에서 허공이 만물의 바탕이듯이 항상 모든 것에 공통으로 있고, 어떤 다른 것이 없이 모두 같은 평상(平常)적인 것을 여여(如如)라고 하며, 또한 이러한 분별이 없는 여여한 상태가 진실한 본래상태임을 알고, 모든 분별심을 여의고 그 공통바탕에 안정되게 머물러 있는 이를 여래(如來)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공통되고 평상적인 상태에 있게 되면 모든 것이 하나(일체)가 되어 다른 것(대상) 또는 타자(他者)가 없어서, 모든 분별을 떠나 있고,항상 있는 그대로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상태에서는 나도 없고,너도 없고, 대상도 없고, 없다는 생각도 없으며, 전체가 오직 일체가 되어 하나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분별심을 여읜 상태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는 것이죠. 

 

이 부분에 대한 육조스님 설명을 들어보죠.

" '모든 법이 여여하다는 뜻'이라 말한 것은 모든 법이란 곧 색성향미촉법이니 이 육진 가운데 잘 분별하되, 그 본체가 담연하여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아서 일찍이 변이함이 없이 허공과 같이 움직이지 않아서 원만히 통하고 환하게 밝게 사무쳐서 몇겁을 지나도 항상 그대로 이므로 이름을 '모든 법이 여여하다'고 하느니라. 보살 영락경에 이르되 허뜯거나 칭찬에 동하지 않음이 여래의 행이라 하며, 입불경계경에 이르되 모든 욕망에 물들지 않는고로 보는 바가 없는 데에 예경한다 하시니라."라고 했읍니다.

 

야부스님 선시 한 수 들어보겠읍니다.

<위는 하늘이고 밑은 땅이라

남자는 남자이고 여자는 여자로다.

목동이 목동을 만나니

대중에 다 함게 랄라라- 부르도다.

이 무슨 곡조인가, 만년의 즐거움이로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