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의 "상에 머물지 말고 보시하라"에 대하여(1)

2013. 8. 4. 19:41성인들 가르침/금강경

 

 

 

* 무한진인의 금강경 이야기(7)

 

제4분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復次 須菩提 菩薩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복차 수보리 보살어법 응무소주 행어보시 

所謂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소위부주색보시 부부성향미촉법보시

須菩提 菩薩應如是布施 不住於相

수보리 보살응여시보시 부주어상

何以故? 若菩薩不住相布施 其福德不可思量

하이고 약보살부주상보시 기복덕불가사량

須菩提 於意云何 東方虛空可思量不? 不也 世尊

수보리 어의운하 동방허공가사량불? 불야 세존

須菩提 南西北方 四維上下虛空 可思量不? 不也 世尊

수보리 남서북방 사유상하허공 가사량불? 불야 세존

須菩提 菩薩無住相布施 福德亦復如示 不可思量

수보리 보살무주상보시 복덕역부여시 불가사량

須菩提 菩薩但應如所敎住

수보리 보살단응여소교주

" 다음에는 이어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법(경계)에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해야 한다.

이른바 모양에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할 것이며, 소리, 향기 ,맛, 촉감, 법에 머물지 말고 보시를 해야 한다.

수보리야, 보살은 이와같이 보시를 할 것이며, 상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왜 그러한가?  만약 보살이 상에 머무르지 않고 보시를 한다면, 그 복덕은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동쪽 허공을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느냐? "헤아릴 수 없읍니다, 세존 "

"수보리야 남서북방과 네 간방과 위 아래 허공을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느냐? " "헤아릴 수 없읍니다. 세존"

"수보리야, 보살이 상에 머무르지 않고 보시하는 복덕도 또한 이와같아서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

수보리야, 보살은 다만 가르친 바와 같이 머물러야 한다."

 

이 4분의 제목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이라고 소명태자가 붙혔는데, 묘행(妙行)이란 "깊고 미묘한 수행"이라는 뜻이 있으며, 절대본체로 들어가는  비이원적수행을 표현한 것 같읍니다.  

무주(無住)는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묘행무주(妙行無住)는 " 머무름 없는 깊고 미묘한 수행"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지요.

 

제2분에서 <아뇩다라 삼먁삼보리심을 발심한 선남자 선여인은 어떻게 마음을 머무르며, 어떻게 마음을 항복시킵니까?>라는 수보리의 물음 중에서 <어떻게 머무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실천적인 대답이 되겠읍니다.

한 문장 한문장 천천히 짚어 가면서 천천히 진행해 나가겠읍니다.

 

<다음에는 이어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법(경계)에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해야 한다.>

<다음에 이어서(復此)>, 이 말은 "또한 " " 또 다음과 같이"이러한 뜻인데, 이 제4분이 제 3분의 이야기에서 계속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3분의 마지막 이야기 내용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더 보겠읍니다.

[왜 그런가?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아상, 중생상, 수자상을 갖는다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 이말을 다시 다른 말로 고치면 <보살은 "나"라는 에고상이 완전히 없어져야한다>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깐 여기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수행 수준은 <나라는 에고의식이 없는 높은 근기의 보살>수준에 해당되는 수행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이죠.

이 상태는 수행자중에서 가장 근기가 높은 수준의 구도자의 행동을 예를 들어 가르쳐 주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수보리가 일반 대중인 선남자 선여인이 발심을 하면 어떻게 수행하며 어떻게 마음을 항복시켜야 되느냐고, 일반인 수준에서 질문을 했는데, 부처님은 오히려 수보리 존자의 수행 수준에 맞추어 대답해 주었읍니다.

그 과정을 제2분에 나온 대화부터 다시 역추적해 보겠읍니다.

수보리의 물음에 부처님이 대답 중 한 부분만 다시발췌해 보았읍니다. 

[汝今諦聽 當爲汝說 善男子 善女人 發阿뇩三먁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그대는 자세히 듣거라. 그대가 하는 수준에 맞추어서 말해주겠다.

선남자나 선여인이 아뇩삼보리심을 내려면 마땅히 이와같이 머물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

위의 인용문에서 굵은 글씨부분(當爲汝說)이 바로 부처님은 수보리에게 "네 (근기) 수준에 맞추어서 선남자 선여인이 어떻게 마음을 수행할 것인가를 말해 주겠다는 것이죠.

그리고는 부처님이 "이와같이 마음을 머물고, 이와같이 마음을 항복시키라"고만 애매하게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지금 여기 4분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은 수보리 존자의 높은 근기 수준을 기준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수보리의 수행수준은 어느 정도 될까요?

제 9분에서 수보리는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세존, 부처님께서는 저를 '무쟁삼매를 얻은 사람 가운데 제일'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이는 '욕심을 여읜 제일 아라한'이란 말씀이오나 저는 '욕심을 여읜 아라한'이라는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무쟁삼매라면 원인체(8아뢰아식)의 무상삼매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것으로 보아서 수보리 존자의 수행상태가 거의 부처수준 묘각까지는 안되드라도, 바로아래 수준인 등각수준까지 도달한, 수행자 중에는 가장 근기가 높은 수준에 있는 수행자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현대의 베단타 스승들 식으로 말하자면 "내가 있다"는 뿌리까지 도달한 도인입니다. 이것은 불교 유식학적으로 말하자면 8아뢰아식을 벗어나기 직전에 있는 상태라고 보아야지요. 그런데 지금 부처님은 이렇게 높은 수보리존자의 근기정도에 맞추어서 금강경에서 가르침을 펼치고 있는 중입니다.

이점을 잘 감안해야지 금강경을 옳바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수행자 중에서 가장 높은 근기의 수행자는 어떻게 수행하는지를 모범적인 실예를 들어 보여 준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이 4장에서는 갑자기 처음부터 <보시(布施)>라는 단어가 나왔읍니다.

부처님 말씀이 보살 마하살은 전체 생명체를 하나도 빠짐없이 구제하여 열반에 들게하겠다는 헌신적인 마음을 가지고 큰 서원을 하고 이 서원하는 마음으로 "내가 있다" 는 모든 에고를 항복시킨 다음에, 이 4분에서 보살의 보시행으로 들어가라는 것이죠.

 

얼뜬 생각하면 선남자 선여인이 보리심을 발해서 어떤 방편을 통해서 열심히 수행을 해서 소정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거친 다음에 삼먁삼보리심을 성취하고 나서 속세에 나와서 중생을 위해 보시행을 하는 과정이 아니라, 선남자 선여인이 발심을 하고나서 큰 원력으로 "나"라는 관념을 없애고 바로 사회에 나와 보시활동을 펼치며, 그 보시활동 중에 여러가지 상에 집착하지 않는 수행을 겸한다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요즘 식으로 본다면 수행자가 산속 선원에서 수행을 오랫동안하여 어떤 경지를 얻은 다음에 시중에 나와 보림과정으로 만행(보시)을 하는 과정을,

금강경에서는 구도자가 첫 발심한 후에 선원에서 수행하는 과정을 없애고, 바로 일반사회에 나와서 봉사활동을 하며 겸사로 수행을 한다는 말씀같이 들리는데, 그러나 이렇게 간단하게 단편적으로 판단할 일은 아닌 것 같읍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말씀하시는 수행수준은 아주 높은 수준의 보살들에게 해당하는 단편적인 예를 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인도의 베단타 스승인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대화록을 보면 그 긴 대화록의 전편에 걸쳐서 말씀하시는 내용이 오직 "내가 있다" 상태가 되라는 이야기인데, 그 "내가 있다"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내가 있다"상태까지는 도달하는 방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전혀 설명하는 부분이 없죠.

어쩌다 누가 물어보면 "그건 그대가 지금 그 상태에 있다" 이렇게만 대답을 하니, 니사르가다타 대화록으로 도를 공부하는 구도자는 참으로 속 시원하게 이해하지 못하므로 답답하죠.

또한 어쩌다 한다는 소리가 "그건, 마음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또는 "그냥 말없이 지켜보는 앎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정답이 있는 것이죠.

금강경도 지금 이 4분이 바로 이와 비슷합니다.

 

이번회에는 이야기가 좀 엉뚱한 방향으로 간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선 여기서는 부처님이 지금 이야기하는 수행수준을 수보리 존자의 수행수준에 맞추어 이야기 하고 있음을 자세히 파악해 보았읍니다.

그러니깐 부처님이 이야기하는 내용은 수보리의 수준에 맞추어 보살의 보시할 때에 상에 머물지말라는 한가지 예를 들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 후에 허공의 방향을 비유적으로 물어보면서 진짜 대답을 수보리를 통해서 말하겠끔 보여 주었읍니다.

그 대답이 바로 " 불가사량(不可思量)" - " 생각할 수 없읍니다" , 즉 "모릅니다"입니다. 다음회에 처음부터 다시 하나 하나 짚어가며 이야기해 보겠읍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