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아닌 법문

2010. 9. 15. 21:05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완릉록]

 

27. 둘 아닌 법문.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유마거사가 잠자코 있으니 문수보살이 찬탄하기를,

'이것이야 말로 둘 아닌 법문(不二法門)에 드는 것이로다' 했는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둘 아닌 법문이란 바로 너의 본 마음이니라.

그러니 법을 설했느니 혹은 설하지 않았느니 하는 것은 기멸(起滅)이 있는 것이다.

말없을 때에는 나타내 보인 것이 없으므로 문수보살이 찬탄한 것이니라."

 

"유마거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소리가 단멸된 것이 아닙니까?"

 

"말이 곧 침묵이고 침묵이 그대로 말이다.

말과 침묵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소리의 실제 성품도 역시 단멸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문수보살이 본래 들음(本聞)도 역시 단멸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일찌기 말하지 않은 때가 없다'고 하신 것은 여래의 말씀이 곧 법이요,

법이 곧 말씀이니, 법과 말씀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나아가 보신, 화신, 보살, 성문과 산하대지와 물,새,수풀이 일시에 법을 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도 설법이고 침묵도 설법이어서,

종일 설법하나 일찌기 설한 바가 없다.

이미 이와 같다면 말없음으로써 근본을 삼느니라."

 

28. 한 마음의 법 가운데서 방편으로 장업하다.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성문이 3계에서는 모습을 감추지만, 보리에 있어 감추지 못하는 까닭은 어찌된 것입니까?"

 

"여기서 말한 모습이란 바탕이니라.

성문들이 다만 3계의 견도혹(見道惑)과 수도혹(修道惑)을 끊을 수 있어 이미 번뇌를 여의긴 하였으나,

보리에 있어서는 모습을 감추지 못한 까닭이니라.

그래서 보리 가운데서 마왕에게 붙들리어 숲 속에 앉아 있으면서,

도리어 보리를 미세하게 본다는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그런데 보살들은 3계와 보리에 있어서 결정코 버리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느니라.

취하지 않으므로 7대(七大) 가운데서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하고,

버리지 않으므로 외도,마구니가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다.

네가 다만 한법이라도 집착하려 하면 흔적(印子)이 벌써 생기게 된다.

있음(有)에다 도장을 찍으면 곧 6도,4생의 무늬가 나오고,

공(空)에다 도장을 찍으면 곧 모양없는 무늬가 나타나느니라.

만약 모든 사물에 도장을 찍지 않으면,

이 도장이 허공과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어서,

공(空)이 본래 공이 아니고,

도장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닌 줄을 다만 알지니라.

시방 허공세계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심은

번갯불을 보는 것과 같으며,

꿈틀거리는 모든 작은 벌레를 보는 것은 메아리와 마찬가지이며,

시방의 셀 수 없는 많은 국토를 보는 것은 흡사 바다 가운데 한 방울 물과 같은 것이다.

매우 깊고 깊은 법문을 듣더라도 허깨비와 같아서,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않으며,

법과 법이 서로 다르지 않고,

나아가 천만가지의 경론(經論)이 오로지 너의 한 마음 때문이니라.

모든 모양을 결코 취하지 않으므로,

말하기를 ' 이와같은 한마음 속에서 방편으로 부지런히 장엄한다'고 하였느니라."

 

                                                                       -황벽선사의 완릉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