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3. 20:47ㆍ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어떤 사람이 임제선사에게 물었다.
"올바르게 안다는 것은 어떤 견해입니까?"
임제선사가 답했다.
"그대들은 범부 마음이 되기도 하고, 성인의 마음이 되기도 하며,
오염된 마음이 되기도 하고 깨끗한 마음이 되기도 하며,
모든 부처님 나라에 들어가서 미륵의 누각이 들어가 비로자나불의 법계에 들어가는데, 그때마다 자기세상을 나투어서 성주괴공(成住壞空)을 한다.
부처님께서는 세간에 출현하시어 큰 법륜을 굴리시고 다시 열반에 드시지만
가고 오는 모양을 보지 못하니,
거기서는 태어남과 죽음을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다.
문득 태어남이 없는 법계에 들어가 모든 법이 다 빈(空) 모양으로서 실다운 법이 없음을 본다.
그런데 유독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법문을 듣고 있는 (자기내면의)道人(觀照,주시자)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이 나온 근원인 것이다.
이렇게 부처는 의지할 것 없는 곳으로부터 생겨나므로
만약 의지하지 않는 (내면의)것을 깨닫는다면 부처조차도 얻을 필요가 없다.
이와같이 보게 된다면 그야말로 바른 견해라고 말할 수 있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그런 것도 알지 못하고,
온갖 명칭과 말뜻에만 집착하여 저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이름에만 구애되므로
도안(道眼)이 막혀 분명히 알지 못한다.
저 12분교란 모두가 근본이치(참나,주시자)를 드러내 주는 말인데,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명칭이나 개념에 관해서만 알음알이를 낸다.
이는 모두가 어디엔가 기댄 것(依存)이라서 因果에 떨어져 3界의 생사윤회를 면치 못한다.
그대들이 만약 태어남, 죽음, 가고 머무름(生住離滅)을 벗어나 자유롭기를 바란다면,
지금 당장 법문을 듣는 (내면의)그 사람(주시자,참나)을 알도록 하라.
모양도 없고 뿌리도 없으며 머무는 곳도 없이 활발하게 살아 움직인다.
수만가지로 응용을 하지만 그 응용에는 정해진 곳이 없다.
그러므로 찾을 수록 멀어지고, 구할 수록 어긋나니,
그것을 비밀(秘密,깊이 감추어진 것)한 것이라고 한다.
구도자들이여,
그대들은 이 꿈 같고 허깨비같이 따라다니는 몸둥이를 잘못 알지말라.
머지않아 덧없음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대들은 이 세계 속에서 무엇을 해탈이라고 찾는가?
그저 밥 한술 찾아 먹고, 누더기 꿰메며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선지식을 찾아 뵙도록 해야지 보기좋고 즐거운 것이나 찾아 다니며 그럭저럭 지내서는 아니된다.
1초라도 아껴야 하니 생각생각 덧없이 흘러가 거칠게는 지수화풍(地水火風) 4大에, 미세하게는 생주이멸(生住離滅) 4相에 붙잡히게 된다.
구도자들이여,
지금 이 순간 모양없는 네가지 경계를 잘 알아서
저 경계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여라"
"무엇이 모양없는 네 가지 경계입니까?"
" 그대들이 한 생각 의심하는 마음이 흙(地)이 되어 가로 막고,
한 생각 좋아하는 마음이 물(水)이 되어 빠지며,
한 생각 성내는 마음이 불(火)이 되어 타고,
한 생각 기뻐하는 마음이 바람(風)이 되어 나부끼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알아챌 수 있다면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가는 곳마다 경계를 활용할 것이다.
동쪽에서 솟았다가 서쪽에서 꺼지며, 남쪽에서 솟았다가 북쪽에서 꺼지며,
가운데서 솟았다가 가생이서 꺼지며, 가생이서 솟았다가 가운데서 꺼져서,
땅 밟듯 물을 밟고 물밟듯 땅을 밟는다.
어째서 그런가?
4대가 꿈같고 허깨비 같은 줄 통달하였기 때문이다.
구도자들이여,
지금 법문을 듣고 있는 것은 그대들의 4大(몸과마음)가 아니라,
그 4大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그것(참나, 주시자)이다.
이렇게 볼 수만 있다면 가고 머물고에 자유자재 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꺼려할 법이라고는 없다.
그대들이 만약 성인을 좋아 한다면 그때 성인은 성인이라는 이름일 뿐이다.
어떤 납자들은 오대산에서 문수를 친견하겠다고 하나 그것은 영판 틀린 얘기다.
오대산에는 문수가 없다.
문수를 알고자 하는가?
그대들 눈 앞에서 작용하는 그것,
처음과 끝이 다르지 않고 어딜 가든지 의심할 것 없는 이것이(주시자) 산 문수다.
그대들의 한 생각 차별없는 빛은 어디에나 두루한 진짜 보현이요,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스스로 묶인 것을 풀 줄 알아서 어딜가나 해탈이니,
이것이 관음의 삼매법이다.
서로 주인도 되고 짝도 되어 나올 때는 한꺼번에 나오니,
하나가 셋이고, 셋이 하나이다.
이와같이 알 수 있다면 비로소 일대장교(一大藏敎)를 보는 것이다.
-임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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