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선사의 대승찬(大乘讚)

2010. 3. 20. 18:04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1.

큰도는 항상 눈 앞에 있지만

눈 앞에 있다 해도 보기는 어렵네.

도의 참된 본체를 깨닫고자 한다면

빛과 소리와 언어를 없애지 말라.

언어가 곧 큰 도와 같은 것이니

번뇌를 없앨 필요가 없네.

번뇌는 본래 비고 고요한 것인데

허망한 생각들이 서로 얼키고 설킨 것이네.

온갖 것은 모두가 메아리와 그림자이니

어느 것이 좋다,나쁘다 알수 없는 것이다.

마음에 형상을 취하여 진실이라고 우긴다면

결코 옳바른 성품을 보지 못함을 분명히 알라.

업을 지어서 부처를 구하려 하나

업은 생사의 가장 큰 요인이므로

생사의 업이 항상 몸을 따라 다녀서

캄캄한 지옥 속에 들기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하네.

진리를 깨닫는 이치는 본래 차별이 없거늘

깨닫고 난  뒤엔, 누가 늦고 빠른 것인가.

법계의 부피는 허공과도 같거늘

중생은 스스로 지혜가 작다고 여기네.

그저 나라는 생각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열반의 법식(法食)으로 항상 배부르리라. 

 

2.

허망한 몸을 거울 앞에 비추면

그림자와 허망한 몸이 다르지 않은데

그림자는 버리고 몸만 남기려 한다면

몸의 근본이 함께 허망한 것임을 모르는 것이네.

몸의 근본과 그림자가 다르지 않나니

하나만 남기고 하나는 버리려고 한다면

영원히 진리와 서로 어긋날 것이네.

또 성인을 좋아하고 범부를 싫어한다면

생사의 바닷 속으로 빠져 들리라.

번뇌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니

마음이 없다면 번뇌가 어디에 있으랴.

분별하고 취사하느라 애쓰지 않는다면

저절로 순식간에 도를 얻으리라.

꿈꿀 때 꿈속에서 하던 짓과

꿈을 깨고나면  깨어난 경지에는 모두 없으니

깨어났을 때와 꿈 속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뒤바뀐 두가지 소견이 다르지 않네.

미혹을 고쳐서 깨달음을 취해 이익을 추구하려 한다면

장사꾼들과 무엇이 다르랴.

움직임과 그침이 모두 사라져 항상 고요하면

저절로 진여와 하나가 될것이네.

중생이 부처와 다르다고 말한다면

부처와는 언제나 아득하게 멀어져 있을 것이네.

부처와 중생은 다르지 않나니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자연히 남는 것이 없으리라.

 

3.

법성(法性)은 본래부터 항상 고요하고

활짝 트여서 끝이 없건만

마음을 써서 취하거나 버리는 사이에

두 경계 사이에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헤메네.

얼굴빛을 가다듬고 선정에 들고

시선을 한곳에 뫃고 고요하게 마음을 관조하는 일은

나무인형이 도를 닦고 있는 것과 같은 격이니

언제 저 언덕에 도달할 수 있을까?

모든 법은 본래 空하여 집착할 것 없으며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것이 뜬 구름과 다름없네.

본성품이 원래 空한 줄 홀연히 깨닫는다면

열병을 앓다 땜낼 때처럼 후련하리라.

지혜없는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그대의 육신은 별똥같이 흩어져 사라진다는 것을.

 

4.

그대 중생들에게 바로 말로 전하니

있지 않음이 곧 없지 않은 것이네.(非有卽非無)

있지 않음과 없지 않음은 다르지 않은데

굳이 있음 만을 상대하여 허망하다고 말할 것인가.

있고 없음은 허망한 마음으로 세운 이름이니

하나가 없어지면 다른 하나도 있을 수가 없네.

두가지 이름은 그대들의 생각(妄情)에서 만들어진 것이니

생각이 없으면 본래 진여(眞如)이네.

생각을 지닌 채 부처를 찾으려 한다면

산 위에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으려 하는 것과 같다네.

아무리 애를 써도 이익이 없나니

그 얼마나 부질없는 헛수고 공부를 했던가.

마음이 바로 부처인 줄 알지 못하면

나귀를 타고서 나귀를 찾는 것과 같다네.

모든 것을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으면

그러면 번뇌는 모두 없어지리라.

번뇌가 없어지면 몸조차도 없어지며,

몸이 없어지면 부처도 원인도 찾을 수가 없고

자연히 법도 사람도 없어지리라.

 

5.

대도(大道)는 수행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나

수행을 說하는 것은 어리석은 범부들을 위한 방편이네.

이치를 깨닫고 수행을 돌이켜 살펴보면

비로소 그릇되게 공부한 줄 알게 되리라.

아직 두루 펼쳐진 큰 진리를 깨닫지 못했거든

말과 행동이 서로 일치해야 하나니

저 알음알이 지식에만 집착하지 말고

바탕으로 돌아가 아무것도 없음을 돌이켜 보라(廻光返本全無)

그 누가 이러한 설법 알아들으랴

그대에게 이르노니, 스스로(內面)를 향해 깊히 탐구하라.

그대 스스로 지난날 잘못된 허물을 발견하여

오욕(五欲)의 부스럼을 없애 버려라.

해탈하여 한가하게 소요자재하니

곳곳에서 풍류를 헐값에 파는 구나(진리를 깨달은 도인이 속세에서 자비를 베품)발심하여 사려고 하는 자 누구인가.

그 또한 나와같이 근심없는 경지를 얻은 사람이다.

 

6.

내견(內見-주관)과 외견(外見-객관)이 모두 나쁜 것이고,

불도와 마도 모두가 잘못되었네.

이것과 저것이라는 두가지 갈라짐(이원화 의식)은

괴로움을 싫어하고 즐거움만 추구하나니

근본바탕을 깨달으면 生死가 空한데

부처와 마귀가 어느 곳에 붙을까.

허망한 생각으로 인해 분별한다면

진신(前身)과 후신(後身)이 외롭고 박복하여

육도윤회가 멈추지 않고

지은 業에서 끝끝내 벗어나지 못하네.

生死 안에서 헤메는 것은

모두가 어지러운 잔꾀를 내기 때문이네.

몸은 본래 허무하여 진실하지 않으니

근본으로 돌아가면 그 누가 따지고 분별하랴.

있고 없음은 내 스스로 만든 것이니

허망한 마음으로 헤아리느라 고생하지 말라.

중생의 몸은 허공과 같으니

번뇌가 어느 곳에 붙으랴.

그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면

번뇌는 저절로 녹아 없어지리라.

 

7.

가소롭구나, 꿈틀거리는 중생들이여.

저마다 제각기 다른 견해 하나씩 집착하고 있네.

그저 번철 옆에서 떡을 구하려고 할 뿐

바탕으로 돌아가 밀가루를 볼 줄 모르는구나.

밀가루는 진짜와 가짜의 바탕인데

사람에 의해서 조작해서 백가지로 변화시켜서

필요한 것을 마음대로 만들어 내니

짐짓 치우쳐서 애욕에 빠져들지 말아야 하리라.

집착이 없으면 그것이 바로 해탈이요

구함이 있으면 또 다시 그물에 걸리리라.

인자한 마음으로 일체를 평등하게 대하면

진여와 보리가 저절로 나타나리라.

만일에 나와 남이라는 두 마음을 품는다면

마주 대하고도 부처님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8.

세간의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道를 가지고 다시 道를 구하고자 하는가.

온갖 이론을 두루 찾아 다니며 어지럽게 말하면서

자기 자신은 제대로 구제하지 못하네.

오로지 남의 글을 찾아 어지러이 말하여

지극한 이치 오묘하고 좋다고 스스로 말하네.

일생을 수고로이 헛되게 보내다가는

영겁토록 生死에 빠지고 말리라.

혼탁한 애욕에 마음 얽혀 버리지 못하면

청정한 지혜의 마음이 저절로 괴로워지네.

진여와 법계의 총림이

도리어 가시덤불과 쑥대밭이 되었구나.

누런 가랑잎을 금이라고 집착해서

잎사귀를 버리고 황금을 구할 줄은 모르는 구나.

바른 생각 잃고서 미친듯이 내달리며

애써서 겉 모습만 좋게 꾸미려고 할 뿐이네.

입으로는 경을 읽고 논을 외고 있지만

속마음은 언제나 바짝 말라있네.

하루 아침에 본래 마음이 空한 줄 깨달으면

진여를 갖추어 하나도 모라람이 없으리라.

 

9.

성문은 마음 마음마다 미혹을 끊으려 하나

끊으려는 그 마음이 도리어 도둑일세.

도둑들이 번갈아가며 서로 제거할 뿐이니

어느 때에 본래 말없는 바탕을 깨칠 것인가.

입으로는 천권의 경을 외우지만

본체 위에서 뜻을 물으면 알지 못하니

불법의 원융한 근본원리를 알지 못한 채

헛되이 문자에 집착하여 뜻을 놓치고 마네.

조용한 곳에서 두타행을 하는 이는

죽은 뒤의 공덕을 바라는 마음이 있겠지만

그 희망하는 생각이 곧 성인 경지를 방해할 뿐이니

큰 도를 어떻게 얻을 수가 있으랴.

꿈 속에서 강을 건널 때

사공이 강 북쪽으로 건네다 주었지만

문득 깨어나면 침상에 편히 잠들어 있었고

배로 건너간 사실도 없으며,

뱃사람과 강 건넌 사람

두 사람은 본래부터 서로가 모르는 사이인 듯이,

중생들은 미혹하고 헷갈려 서로 속박하며

삼계를 오가니 피로하기 이를 데 없네.

삼계가 꿈과 같음을 깨달으면

온갖 것을 구하려던 마음이 저절로 쉬어지리라.

 

10.

깨달아 아는 것이 곧 보리이니

근본바탕을 깨치면 단계는 없는 것이네.

안탑갑네, 범부들은 허리가 굽어

팔십이면 걷지 못하는구나.

일생을 한갓 헛데게 보낼 뿐

세월의 흐름을 절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위로 향하는 일은 스승의 입만 쳐다보고 있으니

어미를 잃은 젖먹이와 다를 바 없네.

도인과 속인들이 앞다투어 빽빽히 모여들어

종일 죽은 말만을 듣고 있구나.

자기의 몸이 무상함을 스스로 관찰해 보지도 않고

마음은 이리떼처럼 탐욕으로 치달리네.

애닮구나, 中下근기 이승(二乘)은 속이 좁아 터지고 유치하니

몸을 굴복시켜야 한다고 믿고서

술이나 고기, 오신채(고추,마늘등 자극성 야채)를 먹지 않고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을 경멸하듯 쳐다보네.

또 어떤 극기 수행을 한다는 무리들은

육체의 生氣를 정화시킨다고 소금도 식초도 먹지 않는구나.

그러나 가장 수숭하고 참된 진리를 깨달으면

짐짓 남녀를 분별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 誌公禪師 大乘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