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님(無)이 그대 자신이오.

2008. 9. 16. 16:32성인들 가르침/란짓트 마하리지

 

 

 

 

 

그대가 한 스승을 만났을 때에  그를 어떻게 알 수 있겠읍니까 ?

깨달은 사람인지, 아닌지, 직접 테스트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슨 통계자료로 추측할 수도 없읍니다. 

 

직접 체험한 사람들과 많은 성인들의 의해서 쓰여진 책 속에서 가르쳐 주는 내용을 그대가 직접 체험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스승이  " 이것이 소금이다" 라고 말한 것은, 책에서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읍니다.

만일 그것이 소금기라면,

그대가 스스로 그것을 입속에 넣어 직접 맛을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스승이 말하는 것을 그대 스스로 직접 체험해야 합니다.

그대가 직접 맛을 보아야만 그것을 알수 있읍니다.
그대에게 스승이 직접 가르쳐줄 때에 그대는 그 체험을 얻을 수가 있읍니다.

이세상에 불가능한 것이란 없읍니다.

그대가 바로 신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불가능 하겠읍니까?

 

그대는 아직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대는 이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잘 알아채지 못합니다.

육체와 마음을 자기라고 동일시하는 것 때문에,

그대는 자기가 완전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깊은 잠 속에서는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그런데도 왜 그대는 그대 자신의 밑바탕으로 갈수 없다고 생각합니까 ?

 

이 생명힘이 일어나고 있는 곳에서 그 힘이 나온 근원을 찾으시오.

그러면 그것이 바로 그대의 진아입니다.

만일 스승이 바른 방향으로 가르쳐 준다면,

구도자는 최종 진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만일 그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면, 그대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없읍니다.

스승이 완전한 도인이라면,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그대에게  진리의 길을 보여 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스승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이들 둘만 있어도, 그 둘중 한 아이는 항상 또 다른 아이의 스승이 되려고 합니다.

 

스승에게서 나오는 에너지는 내면적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본래적인 에너지입니다.

만일 그대가 스승이 가르쳐 준 것을 스스로 체험한다면,

만일 그대가 그 체험을 바탕으로 그것에 완전히 안정되게 머무를 수만 있다면,

바로 그것이 진리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스승과 구도자는 따로 따로 떨어져 남아있게 됩니다.

진리 안에서는 스승과 제자라는  이원화의 분리가  없읍니다.

그러므로 스승을 의심한다는 문제도 있을 수가 없읍니다.

 

전체적으로 완전히 하나가 될 때에, 

이세상에서 얻을 만한 것이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고 여겨질 때만이

완전한 평화가 충만합니다

 

 

충만감이란 그대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구도자는 스스로 이것을 체험을 해야만 하는데,

그말은 다르게 표현하자면,

구도자는 완전한 침묵 속에서 안주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만 필요합니다.

나중에는 "믿음조차 사라진 상태"가 또한 요구됩니다.

 

만일 그대가 은행에다 600만 프랑의 거금을 저금해 놓았다고 가정해서,

내가 "(은행을) 믿고 있어라"고 새삼스레 강조하여 말한다면,

이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읍니까? 

그대는 "걱정할 필요 없읍니다. 은행을 믿고 있읍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일단 그대가 이해하고 나서,

그 이해조차 사라지게 되는 확고함이 안정된 이후에는,

그 믿음은 더 이상 필요 없읍니다.

 

그러나 그러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에고가 포기되어야 합니다.

 

갖난아기는 전적으로 엄마만을 믿고 있읍니다.

그래서 엄마는 아기를 위해서 온갖 정상을 들입니다.

아기가 울기도 전에 엄마는 미리 젖을 먹이고, 온갖 정성으로 보살핍니다.

만일 아기가 어쩌다 높은 침대에서 떨어졌다면, 

그녀는 놀래서 다른 일은 전부 제쳐두고, 

우선 아기가 어디 다치지나 않았는지 자세히 살펴 볼겁니다. 

 

이와 똑같이 스승도 또한 그렇읍니다.

구도자가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는 스승 역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읍니다.

모든 구도자들의 오해와 의심하고 있는 사항을 스승들은 아주 잘 간파하고 있읍니다.

 

단순한 진아만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대는 다만 자기자신을 옳바르게 표현하거나 혹은 좀 잘못 표현하고 있을 뿐인데,

만일 진아에 대해서 설명하는 옳바른 표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에고가 그대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인도의 민담에,

"카레가루의 원료인 심황뿌리 몇근 가지고는, 식품가계를 차릴 수가 없다"라는 말이 있읍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신에 대한 말은 잘도 합니다.

이유가 뭡니까?

왜냐하면 그사람들은 항상 신이 가르쳐주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만일 그대가 북쪽에 있는 산으로 가고자 하지만,

그런데 실제로는  남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면 어떻게 그대가 가고자 하는 산에 도착할 수가 있겠읍니까?

 

신은 어디에 있으며, 신이 누구입니까?

신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며,

자기 내면에 있다는 것을 구도자들은 명확히 알아야만 합니다 !

 

생각이란 저절로 외부로 향하게끔 되어 있읍니다.

그 생각들이 스승의 도움으로 진아를 향하도록, 

내면으로 방향을 돌려 놓아야 합니다.

"그대는 누구인가 ?"를 탐구하십시요.

모든 생각이 그칠 때에만, 진아가 있읍니다.

그대가 지금까지 배운 모든 지식을 잊어버리십시요.

그러면 신이 됩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나아가다 보면, 결국은 구도자는 평온하게 됩니다.

평온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흘러 나옵니다.

 

그리스도는 "그대자신을 알면 세상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읍니다. 

그대가 그대 자신의 가장 밑바탕으로 가라앉으면,

평온이라는 생각조차 일어나지 않읍니다. 

 

無(아무것도 아닌 것)만 남는데,

바로 그것이 그대 자신입니다.

 

                                                                                 -란짓트 마하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