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과 무지(無知)

2008. 8. 24. 08:59성인들 가르침/란짓트 마하리지

 

 

 

나의 스승인 싯따르메쉬와르 마하리지는 입문하는 제자들에게 

처음부터 지성적인 기본개념을 가르쳐 주었는데,

반면에  전통적인 흰두교 가르침에서는 먼저 자기를 포기하고 나서,

그다음에 개념적인 원리를 가르쳐 주었읍니다.

저의 스승님은 개념적인 앎 없이 자기를 포기한다는 행위는 헛된 수고라고 말씀하시곤 했읍니다. 

앎이 없는 자기포기는 마음에 의해 속박당하기가 쉽읍니다. 

 

예를 들면, 아주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준비되었읍니다.

구미를 당기는 맛있는 요리냄새가 솔솔 풍겨서,

모든 사람들이 요리를 먹고 싶어 침을 삼키고 있는데,

그러나 갑자기 그대가 다른사람들에게 " 먹지마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왜 먹지 말라는 거냐?"고 그대에게 항의할 겁니다.

"음식 속에 독이 들어 있다"고 그들에게 말한다고 합시다.

독이 들었다는 정보는 즉각적으로 음식이 먹고 싶은 그들의 마음을 완전히 포기시킵니다.

 

이와 같이, 만일 맨 처음에 앎이 있다면, 포기는 자동적으로 오게 됩니다.
처음에는 지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이고, 그후에 실천적인 이해가 뒤따르게 됩니다.

지성적인 기능은 아주 위대한 능력입니다.

사람은 지성없이는 전혀 이해 할 수가 없읍니다.

 

그런데 그대들은 지성적으로 완벽하게 이해를 하고 난 다음에는,

그 앎 또는 이해한 결과를 또한 전부 잊어 버려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 앎도 하나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모두가 생각일 뿐입니다.

 

이처럼, 앎은 황금으로 된 가시이고,

무지(無知)는 보통 나무로 된 가시이지만,

두개가 다 동일한 속박일 뿐 입니다.

 

만일 그대의 두팔에 수갑을 찼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이 강철로 만든 수갑이든, 황금으로 만든 수갑이든,

상관없이 그대를 구속할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개가 다 가시일 뿐이며,

수행자는 이것을 확실히 이해해서 앎자체도 버려야만 합니다.

 

앎을 버리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에고가 앎과 함께 접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앎자체가 바로 에고이며, 그외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앎을 지우기 위해서는, 수행자는 "나는 아는 것이 없다"라고 말해야만 됩니다.

소크라데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말했읍니다.

실재(實在)인 진아상태에서는 아무 체험도 없읍니다.

그대가 잠에 빠져 있을 때에, 무슨 경험이 있었읍니까?

의식 또는 생기가 있는데,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읍니다.

 

진아는 무지와 앎을 넘어서 있읍니다.

예를 들면 어둠과 빛은 함께 진행됩니다.

빛이 사라지면, 어둠이 있고,

만일 그대가 불을 키면, 어둠은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빛과 어둠은 하나입니다. 

 

이와 똑같이 앎과 무지는 모두가 하나입니다.

싯따라메쉬와르 마하리지 스승님은 "앎(의식)이 가장 거대한 無知 다"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의식을 통해서 우리들은 "그것"을 아는데,

"그것"은 아무것도 아님(無)입니다.

이것이 바로 미묘한 트릭입니다.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읍니다.

수행자들은 이 기막힌 트릭을 알아채야 합니다.

 

그대가 오늘 안 것, 그대가 내일 알고자 하는 것,

이 모두가 동일한 것입니다.

 

이와 똑같이, 앎은 변하지 않읍니다.

무지에 의하여 그 결과가 다를 뿐입니다.

그대가 빛에다 덮개를 씌우면 어둠이 될 것이고,

덮개를 벗기면 빛이 돌아 옵니다.

그대에게 덮힌 무지의 베일을 제거하십시요.

빛 앞에 입힌 외투를 벗기면, 빛은 거기 그대로 있읍니다.

잠 속에서 사람은 그 맨끝의 "밑바탕"으로 가라앉읍니다.

그 맨끝의 "밑바탕"으로 가서 그대의 참나를 발견하십시요.

발견한다는 것은 그대의 마음,그대의 생각, 그대의 개인성을 몽땅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박살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읍니다.

왜 어떤 것을 박살내서 부셔버려야 합니까?

무엇을 없애려고 합니까?

어떤 사물도 그대에게 시비를 걸지 않읍니다.

그대가 그안으로 스스로 들어가서 시비를 거는 겁니다.

 

이 의자는 "나는 당신 것이요"라고 말하지 않읍니다.

그대가 " 그것은 내 의자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누가 잘못된 겁니까?

의자는 잘못된 것이 없고, 그대 자신이 잘못된 겁니다.

그대가 그것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읍니다.

그대는 이러한 요령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수행은 항상 끊이질 말고 계속 진행해야 합니다.

장애물은 있을 수 밖에 없는데,그러나 장애물은 넘어가야 합니다.

수행자는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문제가 바로 생각입니다.

어린시절부터 그대는 많은 생각들을 �아왔읍니다.

이 모든 생각들은 누가 그대에게 주었읍니까?

모든 지식들이 그대의 아버지,어머니, 그대의 친구등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대에게 온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무지한 사람들인데, 그들이 그대에게 무엇을 줄수 있었겠읍니까?

 

어둠이 빛에게 무엇을 줄수 있겠읍니까?

대답해 보세요., 아무것도 없잖읍니까? 그렇잖아요?

그대가 어둠 속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겠읍니까? 아무것도 없읍니다.

모든 생각, 모든 경향성, 습관들은 진실된 것이 없읍니다.

모든 것이 無知에 의해서 그대에게 들어왔읍니다.

 

그대가 일어난 그 근원으로 다시 들어 가세요. 그러면 모든 것이 지워집니다.

모든 속박은 그대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빌려온 그 지식의 구속일 뿐입니다.

빌린 돈은 그대의 것이 아닙니다.


이와 똑같이,

그대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빌려왔고, 그것으로 자신을 묶어놓고 있읍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수가 있읍니까? 그 속박을 스스로 내던져 버리세요.

그속박을 벗어버리는 것을 누군가가 막는 사람이 있읍니까?

채권자에게 빚더미를 갚아 버리세요.

그러면 그대는 그 무거운 빚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그대는 빚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란짓트 마하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