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0. 21:08ㆍ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상승과 하락에 대한 이야기
많은 변상(變相)들의 뿌리는 원초적 환상(Moolamaya)일 뿐입니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고요함 속에서 일어나는 가장 미묘한 움직임의 형태입니다.
원초적 환상은 욕망의 원초적 뿌리, 원초적 결정인 자각의 성품입니다.
여섯 가지 순수한 특성을 부여 받은 것으로서 인식 가능한 신(神)입니다
[譯註: 힌두교에서 신의 6가지 순수한 특성은 지혜,의식(Jnana), 편재(Aishwarya), 에너지(Shakti),힘(Bala), 생명력(Virya),광명(Tejas) 입니다.]
푸루샤/프라크리티,시바/샥티, 반남/반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원초적 환상은 이 모든 것의 근원이며 "우주의 빛"입니다.
이 원초적 환상의 본래적 욕망이나 움직임은 바람의 성질(파동성)입니다.
이 바람으로부터 세 가지 구나(속성)와 5대 원소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덩굴포도나무를 보면, 그 뿌리가 땅 속 깊숙히 뭍혀 있고,
그 뿌리에서 잎,꽃, 열매가 나옵니다.
이 외에도 뿌리에서 나오는 다양한 색갈, 모양, 다양한 맛이 있습니다.
만약 뿌리가 부러져서 열리면 그 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잎,꽃 열매 등)은 뿌리가 나날이 자라기 시작해야만 바로소 발견됩니다.
이 현현(現顯)된 우주의 경우는, 덩굴이 절벽 위의 높은 곳에서 자라기 시작하여 뿌리가 강제로 아래쪽으로 이동하여 가시적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확장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오대 원소와 세 가지 구나(속성)는 원초적 환상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이해는 실제 경험에서 확인되어야 합니다.
이 덩굴나무는 계속해서 자라면서 많은 변화와 수정이 꾸며지며,
갈수록 더욱 많은 변화와 수정을 계속 일으키면서 무한하게 변화해 나갑니다.
이 현상계를 창조하는 덩굴나무는 많은 가지와 줄기를 키워가면서,
끝없이 많은 가지를 확장하며 뻣어 나갑니다.
많은 열매가 떨어지면 그 자리에 그들을 대체할 나무가 더 많이 자라납니다.
오고 가는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덩굴나무는 말라죽으며, 그 자리에서 더 많은 싹을 틔웁니다.
이와 같이 많은 모습들이 왔다가 사라집니다.
잎이 떨어지고 새 잎파리가 돋아납니다. 꽃과 열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존재들이 이 세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어떤 때는 덩굴나무 전체가 다 타버리고, 다시 새 덩굴이 돋아납니다.
이것의 의미는 자신의 체험에서 탐구되고 이해되어야 합니다.
직접적인 경험에 바탕을 둔 지혜로 뿌리를 파내버리면,
전체가 뿌리채 뽑혀서 완전히 성장이 멈춥니다.
현재의 씨앗은 처음과 끝이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현재에 물의 중간 형태인 진액으로 존재합니다.
만물이 알려지게 된 것은 씨앗에서 나온 뿌리에서 부터입니다.
씨앗인 본질은 모든 부분에 자연스럽게 존재합니다.
반복되는 경험의 순환(윤회) 속에서 존재들이 사라지고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집니다.
진아지혜(깨달음)를 가진 사람만이 이 순환(윤회)에 속하지 않습니다.
깨달은 진인(Jnani)은 이 순환(윤회)에 속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면적으로는 이해해야 할 사항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활동은 내적 자아의 힘으로 행해지지만, 그것은 보이지도 않고 알려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면 (지혜가) 빈곤한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은 오직 내적 자아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것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진아를 알기 위해서는 거친 것(알려진 것)을 버리고, 미묘한 것(알 수 없는 것)에서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은 우주의 마음과 하나입니다.
서로 다른 몸들의 많은 변화로 인해 원래는 하나인 것이 다양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한 손가락의 통증은 다른 손가락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같은 원리로 손, 발, 그리고 다양한 다른 장기에도 적용됩니다.
몸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의 체험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의 체험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남의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물의 존재로 인해 많은 다른 식물이 자라고 나타납니다. 물은 단 하나입니다.
식물의 일부가 부러지면 물과 연결이 끊어지고 말라버리는 반면에,
식물의 나머지 부분은 생생하게 살아서 꽃이 만발합니다.
이 비유를 가지고 진아가 어떻게 차별화되는지 이해하십시오.
사람에 대한 상대적 수준에서는 다른 사람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지만,
아는 자인 진아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자아에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단지 신체의 다양성 차이 때문입니다.
이것은 많이 배운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됩니다.
현명한 사람은 마음을 살펴 보고 이해합니다.
그들은 내면적으로 모든 것을 조용하고 은밀하게 이해합니다.
그런 사람은 많은 사람들을 보호하고 돌보며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혜를 사용해서 모든 것을 이해합니다.
모든 중생은 상대방을 신뢰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마음 속을 알려고 합니다.
기억에는 건망증이 뒤따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직접 경험합니다.
종종 어딘가에 보관된 것을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때로는 이전에 자신이 한 말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마음 속에 무수히 많은 개념들이 생겨나는데 어떻게 그것들을 다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움직임의 수레바퀴가 돌고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똑바르고, 어떤 곳에서는 구부러져 있습니다.
기억으로 '신들의 왕'이 되기도 하고, 건망증으로 거지가 되기도 합니다.
진아를 기억하는 것은 신이 되는 것이고, 진아를 잊어버리는 것은 악마가 되는 것입니다.
기억과 망각의 결합은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억과 망각의 두 가지 특성의 효과를 이해하십시오.
하나는 신과 같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악마가 되는 것입니다.
분별력을 활용하여 마음의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 이것을 이해하십시오.
분별의 힘을 이해하기 위하여 분별을 사용하십시오.
진아로써 진아를 알아차리십시오.
거을을 통해 자신의 눈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거친 것은 거친 것만 접하게 되고, 미묘한 것은 미묘한 것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진아에 대한 미묘한 표시는 진아만이 미묘하게 알 수 있습니다.
생각은 생각으로 이해되고, 마음은 마음으로 이해됩니다.
타인의 마음은 그들과 하나가 됨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기억의 전체에는 망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차별화 개념이 도입됩니다.
이것은 결코 완성될 수 없는 편향된 관점입니다.
배움이 계속되면 과거에 배운 것은 잊어버립니다.
앞에는 빛과 같고 뒤는 어둠과 같습니다.
새로운 것이 기억되면 과거의 것들은 잊혀집니다.
네 번째 몸(투리아: 의식)은 진아에 대한 기억이고,
깊은 잠은 망각(忘覺,잊어버림)상태임을 이해하십시오.
이 두 가지 상태가 지금 바로 육체 안에 현존하고 있음을 아십시오.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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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온날 아침 베란다의 채송아꽃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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