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1. 21:28ㆍ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 싯따르 메쉬와르 마하리지의 <다스보드 제 16講> -
[제16강 주제 : 전혀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왜 묻는가?
그러나 의심할 여지가 없도록 한 마디 말해주겠다.]
- [다스보드 제8장 3절 1문장]-
많은 사람들이 참된 영적 지혜를 얻으려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스승은 제자가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해 어떤 치료법을 처방해야 할까요?
한 사람이 건강한데, 의사에게 자신의 병을 어떻게 치료해야 될 것인지 묻습니다.
그가 무엇을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마을 이장이나 변호사에게도 똑같이 묻습니다.
모두가 "당신은 살이 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내가 살이 찌는 이유가 무엇일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의사에게도 묻습니다.
의사는 그의 맥박을 짚어보며 "이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 사람은 병이 없다. 진단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절대진아를 추구하는 것은 위에 주어진 예와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뭔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또한 "당신은 한 인간 존재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냥 무시해 버리십시오.
물론 실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이해가 이렇게 되도록 확신하여 완전히 자유로워지십시오.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모두 '나'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내 것'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입니다.
진실은 단 하나뿐입니다. 보십시요,
당신이 "내 손이 아프다"고 말할 때, 당신의 손이 아닙니다.
지식은 들은 것을 배우기 위한 것입니다.
신을 '있는 그대로'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습니다.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면 더 이상 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이해하려면 마야(환상)가 파괴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녀(마야)'를 정복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지만 그녀에게는 많은 속임수가 있습니다.
그녀는 '그녀'를 정복했다고 말하는 사람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그리고 깨달은 진인이 된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렇게 묻는다면 대답은 “그대의 몸과 가정사 등에 관련된 것 대해서는 아무것도 관심두지 말고 그대로 두십시오."
그대가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길을 가다가 곰을 만나서 씨름을 해서, 그 곰의 가슴에 위에 눌어앉아서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대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거기에 곰은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명상가(Dnyani)입니다. 나는 성자입니다. 나는 해탈열망자입니다. 또는 영적인 지혜를 추구합니다."라고 여기는 것은 모두가 망상일 뿐입니다.
신이 '오시고' 신이 '가신다'고 느끼는 것, 이것이 마야(Maya) 또는 환영(Illusion)입니다.
우리의 개념은 환상의 곰입니다.
때로는 그것은 그대를 넘어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대가 그것을 넘어뜨리게 합니다.
스승의 조언은 "왜 이런 일에 개입하느냐? 이 모든 혼돈은 환상의 그림자들이다."
그러니 대상들이 어디에 있든 상관하지 마십시오.
대상에 매달리다 보면 원초적 근원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행위자라는 관념은 마야(환상)에 있고,
비행위자라는 관념은 브라만에게 있습니다.
해탈열망자는 항상 진리가 아닌 것만을 생각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마하라지?" 스승은 그에게 담배 냄새를 맡지 말라고 하니깐,
제자의 반응은 담배가 담긴 상자에 코를 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대가 이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대 자신은 그것에 빠져 듭니다.
세상에는 단 두 가지, 즉 새속적인 것과 브라만이 있습니다.
일어난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세속적인 일에 관여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세속적인 것을 버리면 참된 지식이 밝아 옵니다.
사람들이 속박에 걸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개인성은 객관적인 대상세계에 마음을 참여시키는 것입니다.
신성(神性)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은 성전 안에 있습니다. 밖에 놓여있는 것은 바위입니다.
왜 신(神)이 돌의 가치여야 합니까?
돌 사이에 사는 신(당신 자신) 때문에 개인성(무지)이라고 합니다.
성 투카람은 "이 신은 아주 오래된 신입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만물보다 그 이전입니다.
모든 것보다 이전에 존재하는 최고의 존재인 파라마트만이 이 몸 안에 앉아 있다는 것을 이해한 사람이 명상자입니다. 이 신을 내버려두면 사람들은 선을 행할지 악을 행할지를 생각합니다.
그것이 환상 속에 있는 개인성입니다.
마야는 사람을 유식하게 하고, 베다 경전의 해설자가 되게도 하고, 세상 놀이를 즐게게도 합니다.
만일 일이 좋으면 좋은 것이고, 나쁘면 나쁜 것이고, 부유하면 부자인 것이고, 만일 가난하면 가난한 것입니다. 누가 진정한 해탈 열망자입니까? 환상이 아무 것도 아닌 무(無)라는 것을 이해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꿈 속에서 곰과 씨름읋 해 보았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모두 가짜일 수도 있지만 ,
환상은 해탈 열망자가 승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나'와 '너'라는 개념은 '해탈 열망자'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망상입니다.
'나는 신이다'라는 생각조차도 망상입니다.
이 세상 자체가 망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나는 신이다' 또한 착각입니다. 나와 그대가 신이라면 어째서 어떤 추정이 있어야 합니까?
앞에서 말했듯이 모든 것을 버리십시오 !
무지한 사람들은 예배를 위해 심벌즈를 치기 시작합니다.
이 지식은 사실 무지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식 자체도 참된 가치는 없는데, 지식은 무지를 파괴합니다.
개인성은 마야 안에서 머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해탈 열망자는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대는 아것을 해야 한다. 그대는 저것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그를 속이기 위한 것입니다.
" 마야는 머리에 긴 뿔이 있습니다. 누군가 그녀(마야)를 대신하면 그녀는 그를 괴롭히고, 그 사람이 뒤쳐지면 그를 발로 차게 됩니다."
따라서 환상을 초월하는 열쇠는 단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모든 행복,불행, 걱정과 근심이 환상에 포함됩니다.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하고, 아무 것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모든 행위와 비행위가 환상입니다.
성인 람다스가 다스보드에서 말한 것이 이것입니다.
그래서 이 환상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춤을 출 수도 있습니다.
마야는 꿈과 같습니다. 꿈에서 곰과 씨름을 했다면 승패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야는 브라흐마 경, 비슈누, 하리하라 경 등도 정복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진실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비슈누는 "내가 그들을 보호하겠다"고 말했고, 그래서 그는 팔이 네 개인 신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환상입니다. 모두가 이 환상에 빠져 있습니다.
불임 여성의 아들이 마루티(영원한 금욕주의자)의 결혼식에서 횃불을 들었다고 말했다고 가정해 보십시요. 마야 형태의 이 세계도 마찬가지로 허구입니다.
그러므로 환상을 정복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속은 것입니다.
신의 헌신자들은 마야에서 일어나는 행복이나 불행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그의 (해탈열망자의) 영광은 작지만 Hari와 Hara 신의 영광보다 높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이 모든 것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어떤 행동도, 원인도, 행위도 없습니다.
원인과 결과의 느낌이 있는 곳은 어디든 '나는 브라만이다'라는 느낌 때문입니다.
이 느낌이 결과이고 무지인 지바(개인성)가 원인입니다.
당신이 브라만이 아니라고 느낄 때 당신은 지바(Jeeva)가 됩니다.
당신이 지바(개인)도 시바(신)도 아니라고 느낄 때 당신은 파라브라만(최종 현재)이 됩니다.
지바, 좋음, 나쁨 등 이 모든 것은 물질 세계인 프라크리티의 본성에 대한 망상의 표시입니다.
이 모든 것은 맹인의 눈가림 게임입니다.
그는 행위자의 눈을 가리는 사람이므로 행위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참가자들의 눈을 단 한 번만 가리었습니다.
지식, 무지, 이것들은 모두 프라크리티(현상계)의 본성입니다.
이것을 상상이라고 합니다.
누가 경전을 해석하고 누가 지식을 줍니까?
마야의 염불, 고행, 방법, 연구, 최면술을 거는 활동 등, 모든 '해야 할 일'에서 자유로울 때만 현현자인 프라크루티를 건너갑니다. 이것들은 모두 초기 단계의 문제입니다.
지성이 있는 한 미혹도 있습니다.
당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벗어나십시오.
'벗어난다'는 것은 어떤 것도 손대지 말라는 뜻입니다.
"나는 진아이고, 나는 브라만이다. 나는 몸도 아니고, 그 어떤 것도 아니다."라고 계속 에배하십시오. 내면에서 말하는 사람은 '나'이고, 그 사람이 신이니, 그것을 확신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한 공주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게으른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나라 전체에 공고가 났습니다. 곧 게으르다고 주장하는 예비 구혼자들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공주는 그들의 주장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어깨에 올라타 마을에 도착하여 게으른 척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침묵을 가장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구혼자들의 수만큼 게으른 척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공주는 그들을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똑똑한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단지 공주에게 자신이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왔다고만 알렸습니다.
공주는 "당신이 게으르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게을러서 결혼하러 왔다고 솔직히 대답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다 그런 척하며 단지 시늉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단지 배우일 뿐이지, 정말 게으르지는 않습니다.
" 침묵을 지키는 것, 걷는 것, 손으로 먹는 것 이것들은 모두 속이기 위한 외적(外的)인 행동들입니다. 정말 게으른 사람은 그런 가식을 통해서는 추적될 수 없습니다.
정말 게으른 사람은 천성적으로 게으릅니다.
마찬가지로, 진인에게도, 그가 브라만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성인의 참된 표식은 세상을 참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야 역시 진실이 아닙니다.
그것이 모두 물질계인 프라크루티의 본질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공주와 결혼할 수 없습니다. ' 게으르다는 것'은 외적인 행위를 포기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게으른 사람을 의미합니다.
개인은 항상 어떤 활동에 참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함니까?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육체 의식의 본성입니다.
환상은 우리의 생각을 의미합니다.
“일을 하다 지쳤을 때 신에게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거짓된 것을 모두 거부하면 신이 됩니다.
'나는 이것 저것을 해야 하고, 이것 저것을 관리해야 하고, 부자가 되야 하고, 성인이 되야하고, 그 다음에는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 이것이 환상을 나타냅니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 두십시오.
당신이 개입하면 당신의 육체 의식이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당신은 항상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싯다(최종 실재)의 상태에 도달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몸이 아닌데 왜 부와 가난에 대한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있습니까?
모든 것이 실재하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불필요한 질문이 필요한 걸까요?
이것이 바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라는 신성(神性)입니다.
우리는 "신처럼 조용히 있으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의 육체의식을 탐닉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옴 산티, 즉 지복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 모두에게 주는 나의 축복입니다.
- Amrut Laya (The Stateless sta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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