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을 성취한 사람들의 징표(徵標)

2022. 11. 2. 00:01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성취자의 징표(특징)

 

감로(꿀)를 몸 안에 섭취하면 육체는 밖에서 빛이 납니다.

진아 깨달음을 습득한 성인의 징표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진아 깨달음을 얻을 것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깨달은 현자(賢者)들의 징표에 대해서 설명을 하겠습니다.

 

성취한 사람인, 싯따(Sidda)의 징표에 대하여 들어 보십시오.

'성취했다' 라는 것은 분리됨이 존재하지 않는 자기의 진아성품(스와루파)을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l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진아 성품에 의식적으로 안정되게 머물러 있는 것을 성취되었다고 말합니다.

자기의 진아 성품 안에서 성취되는 것만이 '성취되었다' 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합니다.

 

베다와 다른 경전에서는 진아성품 속에서 성취한 사람만이 싯다(Sidda)라고 한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어떤 의식의 상태도 성취되었다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지망생들이 성취의 징표를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성취한 사람에 대해서 무언가를 말해 주어야만 합니다.

 

"사람이 진아를 깨달으면, 그 후에 신체는 어떻게 작용할까요?"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그것은 꿈의 세계에서 거짓된 꿈의 활동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성취한 사람들의 징표는 영적인 삶의 내적인 상태가 이해될 수 있도록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항상 의식적으로 진아상태로 머무르는 것이 깨달은 현자들의 주요한 징표입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활동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자기의 진아상태를 한번 보게 되면,

속세 삶에서의 걱정이 줄어들고, 영적 담론에 대한 강한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영적 지망생의 징조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또한 성취자(Siddha)의 징표라는 것도 이해하십시오.

성취한 자는 영적인 지망자의 징표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영적인 지망자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자기의 진아성품과 동일시합니다.

오직 현명한 사람만이 싯다의 징조를 이렇게 이해합니다.

 

성취한 사람은 자신의 영적 수행실천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의 만족은 안팎으로 흔들림이 없습니다.

 

내면 상태가 움직임 없이 안정되어 있으면 어떻게 마음에 어떤 소란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가짐 전체가 자기의 진아 성품 속에 고정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그는 오로지 진아 성품일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사람은 움직이는 동안에 움직이지 않으며,

변화하는 동안에 변하지 않습니다.

육체는 쉴새없이 움직이는데,

그 사람의 진아 성품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진아 성품을 깨달으면, 누워 있던, 일어나서 뛰어 다니든,

그는 움직임없이 그대로 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위하여는,

내면상태는 마음의 외향적 태도가 뒤로 물러나 있거나 혹은 무관심 상태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내면에서 오직 신에게만 고정될 때에 그는 현자(賢者)인 것입니다.

 

외적인 행동은 어떤 유형이든 상관없지만,

내면적으로는 주의가 항상 진아상태에 고정되어 있었야 합니다.

이러한 징조는 현자에게는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왕좌에 읹아 있는 동안은 왕의 특권은 자연스럽게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진아상태를 깨달았을 때, 성취의 징표는 저절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러한 성품은 공부와 같은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의 진아성품을 깨닫는다는 것은 자기의 내면 진아 성품 속에 단순히 머무는 것입니다.

 

영적 수행공부의 왕관 보석은 사람이 무속성(無屬性)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성인과의 친교모임에 가입하여 그들의 가르침을 들음으로써 무속성의 상태에 쉽게 도달하게 됩니다.

 

이것들은 자기의 진아상태를 깨닫는 징표 중 일부이며,이해되어야 합니다.

포기하는 것 조차도 자기의 진아상태를 잃어 버릴 때는 혼란스러워 집니다.

 

이제 이 정도로 이야기 해 두고,

영적인 지망생들이 만족하기 위해서는 깨달은 현자의 징표에 대하여 좀 더 들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개념이 자신의 진아상태 속에 완전히 집중 될 때,어떤 욕망이 어떻게 남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현자에게는 욕망이 없습니다.

 

상상 속의 귀중한 감각적인 물체가 자기 손에서 미끄러져 빠져나가면 그 사람은 화를 냅니다.

그러나 현자의 영원한 보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분노가 없습니다.

성인들은 자기의 진실한 성품을 깨달아서, 부패하기 쉬운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립니다.

 

두 번째 실체가 없는 곳에서 누구에게 화를 내겠습니까?

현자는 이 생명체와 무생물들이 있는 우주현상세계 안에서 분노없이 자기 역활을 해 나갑니다.

 

사람이 자기의 진아 지복 속에 몰두 할 때에 짜증나는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따라서 그들에게는 논쟁과 분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현자는 변형없는 진아상태 속에서 머무릅니다.

어떻게 그에게 혐오감을 줄 수가 있으며, 부러워 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깨달은 현자는 자연적인 실재(實在)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질투도 없습니다.

자존심과 질투의 광기는 현자에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깨달은 현자는 진아 성품 속에 자유스럽게 머물러 있습니다.

이원성이 존재하지 않는 그러한 사람에게 어떻게 위선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상(相)을 버린 사람에게 어떻게 세속적인 삶이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이러한 이유로 현자는 세속적인 삶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전체 우주가 그의 거주처입니다.

그는 오대 원소의 전체 세계가 거짓이라는 것을 재빨리 깨닫고서 그것을 버립니다.

 

이 때문에 현자는 아무런 탐욕도 없습니다.

그는 언제나 탐욕이 없고, 그의 욕망은 순수한 진아 성품 속에 녹아 버렸습니다.

 

모든 곳에 오직 진아만이 홀로 있고, 그에게는 이기심이 없습니다.

따라서 현자에게는 슬픔이나 비극이 없습니다.

 

부패하기 쉬운 육체를 포기하는 것은 자기의 영원한 진아 성품 속에 머무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현자는 슬픔이 없다는 것을 아십시오.

 

마음의 상태는 슬픔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만,

깨달은 현자는 마음의 상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언제나 슬픔이 없습니다.

 

마음은 대상에 매혹되어 압도당하지만,

깨달은 현자는 무심(無心, unmana)이 되어 있어서, 대상적인 것에 대한 어떤 매혹도 초월해 있습니다.

 

깨달은 현자는 실재(實在)만 있습니다.

두려움을 어디에서 느끼겠습니까?

현자는 두려움을 모르는 절대 실재인 파라브라흐만입니다.

 

그러므로 현자는 두려움이 없으며 평화롭습니다.

비록 모든 사람에게 종말이 올지라도, 현자에게는 종말이 없습니다.

 

실재(實在) 그 자체이기 때문에 현자는 불멸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무엇을 두려워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이유로 현자들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어떤 차별성이나 이원적인 어떤 구별도 없는

오직 그 사람의 진아만 있는 곳에,

어떻게 육체의 잘못된 동일시와 관련된 슬픔이 생길 수가 있겠습니까?

 

지성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현자들은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속성없는 브라흐만의 진리를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자들에게 슬픔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곳에서 자기만을 홀로 경험할 때에, 이기적이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세계가 존재하지 않으면 이기심이라는 것이 있을 자리조차 없습니다.

 

현자는 오직 그 자체 하나 뿐입니다.

하나만 있는데, 어떻게 슬픔이나 절망 같은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타인'과의 차별이나 이원성이 없는 곳에서는 분별력도 생기지 않습니다.

(구별이 없는 명확한 시야만 있을 뿐입니다.)

 

절대 실재(實在)에 대한 열망만을 고집하므로써 잘못된 욕망과 이기적인 기대가 깨집니다.

따라서 무욕(無欲)이 현인들의 구별되는 특징입니다.

 

현자의 징표는 하늘의 부드러움과 같습니다.

따라서 현자의 말씀에는 딱딱한 경직성이 전혀 없습니다.

 

자신의 진아 성품 안에 합일된 수행자는 그가 실재(實在)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항상 욕망이 없습니다.

 

자기의 진아 성품을 일단 깨달으면, 육체에 딸린 걱정은 내버려지고,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걱정도 없어집니다.

 

지성이 실재(實在)와 합쳐지면, 모든 차별적 속성들이 상실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자들은 어떤 차별심도 없습니다.

 

현자가 실재(實在)에 머무를 때는, 어떤 것 또는 다른 누구와도 어떤 관련을 맺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현자는 칭찬이나 모욕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마음의 이해 범위를 너머서 있는 것에 그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있는 현자는 극도로 깨어 있습니다.

그는 절대실재(絶大實在) 속에서 확고하게 자리잡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실재(實在)는 어떠한 불순물에 의해서도 오염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실재(實在) 그 자체인 현자는 오염되지 않고 순수합니다.

 

모든 책무(dharmas) 중에서 자기의 진정한 "진아 책무"는 실재(實在)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자의 중요한 특성임을 이해하십시오.

 

깨달은 현자와의 친견모임에 함께 하면 자기의 진아성품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의 진아성품을 깨달음으로써 스스로 현자의 징표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설명을 들음으로써 깨달은 현자의 징표를 알게 되었습니다.

요점은 항상 진아 성품 속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대의 진아 성품 속에 끊임없이 머물러 있음으로써, 그대는 실재(實在) 그 자체가 되며,

현자의 징표가 지체없이 그대 자신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지성이 실재(實在) 안에 머무를 때에, 모든 부정적 특성과 악행은 사라지지만,

이를 위해서는 성인과의 친교모임에 직접 참여하여 법문을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상에서는 누구나 성취에 대한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절(節)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8-9)

 

- <스승과 제자와의 대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