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3. 22:39ㆍ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청문(聽聞 : 책읽기 포함)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설명하겠습니다.
듣는 사람들은 주의를 기울여서 말하는 내용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던 만족감이 불안해지고,
자기가 믿고 있었던 확신이 갑자기 흐트러지는 언설(言說)들이 있습니다.
성품에 대하여 진실하지 않고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언설들은 공허하고,
확신으로 이끌어주는 확고한 결심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내버려야 합니다.
한 권의 책을 읽고나서 얻은 확신은 다른 책을 읽음으로써 곧 지워질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공부해 가지고는 평생동안 의문만 붙들고 있게 됩니다.
의문이 풀리고, 반대의견이 제거되는
비이원성에 대한 영적인 서적만 읽어야 합니다.
해탈을 지향하는 사람은 영성의 길을 고수하고
비이원성에 관한 내용의 책에 대한 애착 속에서 발전하게 됩니다.
이 세속세상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고, 영적인 깨달음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분별력을 통해서 보는 능력을 기르기 위하여 비이원적인 경전들을 활용해야 합니다.
비이원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원적인 가르침이 그의 앞에 놓이게 되면 마음이 동요됩니다.
만약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의 언설을 들으면 행복을 느끼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마음에 지루함을 느낍니다.
사람은 자신이 하고 있는 특정한 유형의 영적인 수행법에 대해서는 애착을 느끼지만,
다른 것이 설명되고 있을 때는 기분이 별로 좋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랑의 표현은 쉽게 일어나서
물처럼 저절로 하류 쪽으로 흘러내려 갑니다.
마찬가지로, 진아지(眞我知)를 지니고 있는 사람은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탐구하는 곳에서 요구되는 조건입니다.
가문(家門)의 여신(女神)이 바가바티인 사람에게는
삽타사티(바가바티를 찬양하는 700절의 책)의 본문에 대한 토론이 있어야만 합니다.
다른 신을 찬양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흥미가 없습니다.
종교 예배의식에만 관여하는 사람에게는 바가바드 기타의 가르침은 관심이 없고,
그리고 깨달은 현자에게는 그들의 행위에 대한 결실을 전혀 기대하지 않습니다.
팔찌가 코걸이처럼 착용하지 않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은 제자리에 적합하게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다양한 신들의 위대함은 많은 문헌들에서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들은 적절한 상황하에서 읽을 때에 존중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색해 보입니다.
만약 드와카(Dwarka)에서 말하리(Malhari)신의 위대함을 묘사하는 문헌을 읽히거나,
드와카(Dwarka)의 위대함을 카시(Kashi)에서 찬양하거나,
카시의 위대함을 베카테샤(Venkatesha)에게 칭찬하는 경우,
이것들은 글들이 제자리에 적절하게 있지 못한 예들입니다.
[譯註 : 힌두교 문화에는 특별한 능력과 위대함을 지닌 개성있고 다양한 신들이 많이 나타나며, 이 신들은 대개 특정 장소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사마타 람다스님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특정 장소나 신을 찬양하는 글이 그 특정한 장소에서만 그 특정 신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물이 적절한 곳에서 어떻게 적합하게 있는지에 대한 예는 너무나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비이원적인 문헌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은 지혜로은 진인(Jnanis)들 뿐입니다.
만약 요기 앞에서 마술을 부린다거나, 보석상 앞에 평범한 돌을 가져 온다거나,
음악가 앞에서 촌스러운 발라드를 연주하는 경우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은둔자 앞에서 한 사람이 예배의식을 치루고 있거나,
무욕을 성취한 사람 앞에서 행위의 열매를 묘사하거나,
진아 깨달음을 실현한 사람에게 성행위 체위에 대한 책을 읽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
독신 서약을 한 사람 앞에 에로틱한 댄서를 데려온다거나,
또는 영성에 대한 설명을 하는 중에 크리슈나 경과 고피스(소치는 소녀) 간의 사랑을 나누는 연애 소설을 이야기한다거나, 혹은 우유만 마시는 로얄 스완(백조왕) 앞에 맹물을 가져다 놓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성향의 사람들 앞에 연애 소설같은 책을 가져다 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런 책에 대해 어떻게 만족할 수 있습니까?
왕이 가난뱅이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데해 매혹 당하거나, 버터 밀크가 감로라고 칭찬되거나,
귀신의 초능력이 산야신(출가수행자)에게 설명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종교의식을 집행하는 사람에게 최면술에 대한 조언을 받거나
귀신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면 자연스럽게 흥미를 잃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성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진아 깨달음이라는 주제를 다루지 않는 책은 읽어도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의 진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비이원성에 관한 책자에 담겨진 가르침에 대하여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진아지(眞我知)를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한적한 곳에서 비이원성의 원리에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취감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여러 가지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비이원성에 관한 책과 견줄 만한 가치있는 다른 책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책은 세속적인 삶을 건너 뛰어 궁극의 절대적 가치로 데려다 주는 나룻배와 같습니다.
유머나 사람을 웃기게 만드는 것들, 다른 감정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들과 같은
세속적인 흥미를 다루는 책들은 영적인 길에서 유용하지 않습니다.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책은 영성의 지혜가 증대되고, 내면에서 변화가 일어나며,
헌신적인 실천에 대한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책입니다.
그런 책에 담긴 내용을 들으면, 자만감이 떨어져 나가고, 의심이 없어지며,
마음이 갑자기 내면(또는 神) 쪽으로 향하게 됩니다.
악행을 포기하게끔 영감을 주고, 그 내용을 듣고는 타락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그런 책이 훌륭한 서적입니다.
용기를 일으키고, 다른 사람에 대한 자비심을 불러 일으키고,
관능적인 만족에 대한 욕구를 꺾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은 훌륭한 책으로 간주됩니다.
일상 속에서 세속적인 삶을 넘나드는 수단을 제공하고, 그 방법을 통해 지식을 얻고,
세속적인 삶의 얽매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은
진정으로 훌륭한 책이라고 간주됩니다.
어떤 성과를 약속하는 책들도 많지만,
그런 책이 초탈이나 헌신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훌륭한 책이라고 간주될 수 없습니다.
해탈로 가는 길을 보여주지 않고, 행동의 결실만을 말하는 책은,
그저 계속 증가하는,끝없는 희망만을 제시하는 책일 뿐입니다.
더 많은 욕구만을 일으키는 책을 읽으면,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파멸을 초래하는 끝없이 만족할 줄 모르는 희망의 귀신들에게 시달리게 됩니다.
미래의 어떤 결과에 대한 약속을 들을 때, 적어도 다음 생애에는 열매를 거둘 것이다 라고 말하고.
이런 식으로 가면 확실한 몰락을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열매들이 많은 새들에 의해 먹히고 만족해 하지만,
차코르 새는 달빛의 감로만을 갈망합니다.
이처럼 가정을 가진 남자는 자기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는 반면,
신에게 순복한 사람은 오직 신만을 갈망할 뿐입니다.
진인(Jnani)은 지혜만을 원하고, 헌신자는 숭배만을 원하며,
영적인 구도자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영적 수행만을 원합니다.
영적인 열망자는 영성만을 원하고,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 이익만을 원하며,
구두쇠는 마음 속에 돈에 대한 욕심만 가지고 있습니다.
요기수행자는 요가수행을 원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은 쾌락만을 원하며,
아픈 사람은 병을 치료하는 약을 원합니다.
시인들은 명시를 쓰기를 원하고, 논리적인 사람들은 유창한 논리술을 원하고,
헌신적인 사람들은 신에 대한 토론만이 즐겁다고 느낍니다.
학자는 학문적 지식을 원하고, 학생은 공부를 잘 하기를 원하고,
예술가는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원합니다.
신의 하인들은 신을 찬양하기를 원하고, 순결을 바라는 사람은 숭배의식을 행하기를 원하고,
특정한 의식을 행하는 사람은 그 의식만 행하기를 원합니다.
다정다감한 사람은 동정심을 원하고, 슬기로운 사람은 각성을 원하고,
현명한 사람은 영리함을 존중합니다.
신봉자는 우상의 형태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대중 음악가는 리듬에 대한 지식을 좋아하고,
클래식 음악가는 다양한 무드와 작곡에 대한 공부를 좋아합니다.
하타 요가의 학생들은 육체에 대한 지식을 원하고, 철학자는 다양한 철학체계를 알고 싶어하며,
아유르베다 의학의 전문가는 맥박수와 다양한 약초의 특성에 대한 지식을 원합니다.
성적 욕망을 가진 사람은 섹스에 관한 책을 원하고,
흑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주문을 걸기 위한 만트라를 원하고,
기계기술자는 기계와 기술정보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짓굳은 사람은 남을 놀리는 것을 좋아하고, 규율이 없는 사람은 많은 게으른 습관 가지고 있으며,
무식한 사람은 많은 실수를 저지르기 쉽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음악소리에 사로 잡히고,
남을 비평하는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의 결점을 발견할 기회를 노리며,
그릇된 행동을 잘 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도 자기와 비슷한 행동을 저지르고 있는지 살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고, 어떤 사람들은 긴 일화를 원하는 반면에,
또 어떤 사람들은 단순하게 경건한 헌신만을 원합니다.
베다 경전을 아는 사람은 베다 경전을 보고 싶어 하고, 용맹한 사람은 전쟁을 만나고 싶어하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많은 종교에 대해 알고 싶어 합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행동 속에서 자유를 보고 싶어하고,
모든 일에 관심있는 사람은 온갖 것을 모두 보고 싶어하고,
점성술사는 예언을 보고 싶어 합니다.
이와 같은 예를 얼마나 더 많이 들어야 할까요?
사람들은 단지 다양한 책을 읽기를 좋아하며,
자기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따라서 그것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브라흐만의 지혜를 얻기 위해 사용되는 영적 수행에 대한 주제의 논의가 없을 때에
이것을 진정한 청문(聽聞,shravana)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아 깨달음이 없는 곳에서 그런 논의는 단순히 오락일 뿐입니다.
달지 않은 것을 달다고 말할 수 없거나, 코가 없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진아 깨달음에 대한 논의가 없는 영성에 대한 책자는 마치 앙꼬없는 단팥빵처럼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 이 주제에 대한 설명은 이것으로써 충분히 말한 것 같습니다.
영성 서적 속에 담긴 내용을 잘 읽고 새겨들어야 합니다.
영성 서적이 없으면, 인생을 공허하고, 경박하게 보내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영원하고, 무엇이 일시적인지,
그리고 무엇이 본질적인 것이며, 무엇이 비본질적인 것인지에
대한 탐구에 대하여 언급하는 영성서적에 대해서만 읽고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그러한 책자만이 분별력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 줌으로써
고통스런 세속적 삶의 강물을 건너가는데 도움이 될수 있을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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