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21-1)

2022. 2. 17. 20:27성인들 가르침/불교경전

559. 가마경(迦摩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파라리불투로국(波羅利弗妬路國)에 계셨고, 존자 아난(阿難)과 존자 가마(迦摩)도 파라리불투로국 계림정사(鷄林精舍)에 있었다. 

  그 때 존자 가마는 존자 아난의 처소에 찾아가, 서로 문안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앉아, 존자 아난에게 말했다. 
  신기합니다. 존자 아난이여, 눈[眼]이 있고 빛깔[色]이 있으며, 귀[耳]가 있고 소리[聲]가 있으며, 코[鼻]가 있고 냄새[香]가 있으며, 혀[舌]가 있고 맛[味]이 있으며, 몸[身]이 있고 감촉[觸]이 있으며, 뜻[意]이 있고 법(法)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비구는 이런 법들이 있어도 지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존자 아난이여, 그 비구는 생각[想]이 있으면서 지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생각이 없기 때문에 지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존자 아난이 가마 비구에게 말했다. 
  생각이 있는 사람도 지각하지 않을 수 있는데 하물며 생각이 없는 사람이겠습니까?
  존자 아난이여, 어떤 것을 존재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있으면서도 지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까?
 
  존자 아난이 가마 비구에게 말했다. 
  만일 비구가 욕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멀리 여읨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초선(初禪)에 완전하게 머물면, 이런 비구는 생각이 있지만 법이 있어도 지각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제2선·제3선·제4선·공입처(空入處)·식입처(識入處)·무소유입처(無所有入處)에 완전하게 머물면, 이런 비구는 생각이 있지만 법이 있어도 지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생각이 없기 때문에 법이 있어도 지각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비구가 모든 생각들을 기억하여 담아두지 않으면, 무상심삼매(無想心三昧)를 몸으로 증득하여 완전하게 머물게 되는데, 이것을 비구가 존재하는 법에 대한 생각이 없기 때문에 지각하지 못하는 것이라 합니다.

  존자 가마 비구가 다시 물었다. 
  만일 비구가 무상심삼매에서 들뜨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으며, 해탈하여 머물거나 머물러 해탈한다면, 세존께서는 그것을 무엇의 결과요 무엇의 공덕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존자 아난이 가마 비구에게 말했다. 
  만일 비구가 무상심삼매에서 들뜨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으며, 해탈하여 머물거나 머물러 해탈한다면, 세존께서는 그것을 지혜의 결과요 지혜의 공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두 정사(正士)는 서로의 논의를 마치고 함께 기뻐하면서, 각각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560. 탁량경(度量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아난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존자 아난이 비구들에게 말했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가 내 앞에서 스스로 분명하게 말한다면[記說]1), 나는 마땅히 '훌륭하다'고 위로하고 인사하거나, 또는 네 가지 도를 요구할 것입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만일 비구나 비구니가 좌선하여 잘 머무는 마음[善住心]·집중하여 머무는 마음[局住心], 이와 같이 머무는 마음을 써서 마음을 항복 받고 지관(止觀)을 닦으며, 한마음으로 정신 통일하여 분별하고, 법을 헤아려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모든 번뇌[使]를 끊을 수 있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가 내 앞에서 스스로 분명하게 말한다면 나는 곧 이와 같이 '훌륭하다'고 위로하거나 또는 이것을 요구하리니, 이것을 첫 번째로 도를 설명하는 것이라 합니다. 
  '비구나 비구니가 바르게 앉아 사유하여 법을 선택하고, 잘 머무는 마음·집중하여 머무는 마음, 이와 같이 머무는 마음을 헤아려 마음을 항복 받고 지관(止觀)을 닦으며, 한마음으로 정신 통일하여 이와 같이 바르게 향하고 많이 머물면 모든 번뇌를 여의게 된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가 내 앞에서 스스로 분명하게 말한다면, 나는 마땅히 이와 같이 '훌륭하다'고 위로하거나 또는 이것을 요구하리니, 이것을 두 번째로 도를 설명하는 것이라 합니다. 
  '비구나 비구니가 들뜨고 어지러운 마음에 붙들리면 마음을 항복 받아 앉고, 잘 머무는 마음·집중하여 머무는 마음, 이와 같이 머무는 마음에 바르게 앉아 마음을 항복 받고 지관을 닦으며, 한마음으로 정신 통일하여 이와 같이 바르게 향하고 많이 머무르면 곧 모든 번뇌를 끊게 된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가 내 앞에서 스스로 분명하게 말한다면, 나는 곧 이와 같이 '훌륭하다'고 위로하거나, 또는 이것을 요구하리니, 이것을 세 번째로 도를 설명하는 것이라 합니다. 
  '비구나 비구니가 지(止)와 관(觀)을 화합해 함께 행하고 이와 같이 바르게 향하고 많이 머무르면 곧 모든 번뇌를 끊게 된다.'

  만일 비구나 비구니가 내 앞에서 스스로 분명하게 말한다면, 나는 곧 이와 같이 '훌륭하다'고 위로하고 가르치거나 또는 이것을 요구하리니, 이것을 네 번째로 도를 설명하는 것이라 합니다. 

  그 때 여러 비구들은 존자 아난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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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위(果位)를 얻거나 얻을 것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을 말한다.
  
  
561. 바라문경(婆羅門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고, 존자 아난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어떤 바라문이 존자 아난의 처소로 찾아가, 서로 인사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앉아 존자 아난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사문 구담(瞿曇) 밑에서 범행(梵行)2)을 닦습니까?

  존자 아난이 바라문에게 말했다. 
  끊기 위해서입니다. 
  존자는 무엇을 끊으려 하십니까? 
  탐애[愛]를 끊으려 합니다. 
  존자 아난이여, 무엇을 의지해 탐애를 끊을 수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의욕[欲]3)을 의지해 탐애를 끊습니다. 
  존자 아난이여, 그러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바라문이여,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것은 끝이 있으니,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존자 아난이여, 어떤 것이 끝이 있어서,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바라문이여, 내가 이제 그대에게 물으리니 마음대로 내게 대답하십시오. 바라문이여, 당신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당신은 먼저 오려는 의욕이 있어서 정사에 온 것입니까?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아난이여.
  그와 같다면 바라문이여, 정사에 이르고 나서는 그 의욕이 쉬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 아난이여, 그리고 저는 노력하고 준비하고 계획해서 이 정사에 왔습니다.
  이미 이 정사에 오고 나서는 그 노력과 준비와 계획은 쉬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 아난이 다시 바라문에게 말했다. 
  그와 같이 바라문이여, 여래(如來)·응공(應供)·등정각(等正覺)께서는 알고 보신 것으로 네 가지 여의족(如意足)4)을 말씀하시어, 일승(一乘)의 도로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괴로움과 번민을 없애며, 근심과 슬픔을 끊게 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욕정(欲定)으로 끊기를 수행해 성취하는 여의족[欲定斷行成就如意足]과 정진정(精進定)·심정(心定)·사유정(思惟定)으로 끊기를 수행해 성취하는 여의족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제자는 욕정으로 끊기를 수행해 성취하는 여의족을 닦아, 욕심 여읨에 의해, 욕심 없음에 의해, 생사를 벗어남[出要]에 의해, 멸함에 의해, 평정함[捨]으로 향하면, 나아가서는 탐애를 끊게 되고, 탐애가 이미 끊어지면 그 의욕도 또한 쉬게 됩니다. 정진정·심정·사유정으로 끊기를 수행해 성취하기를 닦아, 욕심을 여읨에 의해, 욕심 없음에 의해, 생사를 벗어남에 의해, 멸함에 의해, 평정함으로 향하면, 나아가서는 탐애가 다하게 되고, 탐애가 이미 다하면 사유도 곧 쉬게 됩니다. 바라문이여, 당신의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이것이 끝이 아닙니까?

  바라문이 말했다. 
  존자 아난이여, 그것은 곧 끝이요, 끝 아님이 아닙니다. 

  그 때 바라문은 존자 아난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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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팔리어로는 brahmacariya라고 함. 바라문들은 음행(淫行)을 끊고 자(慈)·비(悲)·희(喜)·사(捨)의 하늘에 태어나기 위한 네 가지 청정한 행을 행하는 것을 범행이라 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음행을 끊고, 탐욕을 여의며, 잘못을 여의어 청정한 것을 범행이라 하는데 열반에 이르기 위한 다섯 가지 행(行) 가운데 하나임.

3) 여기서 '욕(欲)'은 희망(希望)·발심(發心)을 가리킴. 
4) 네 가지 선정에 바탕을 둔 삼매와 그 의도적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신통의 기초를 말한다. 네 가지 선정이란 욕정(欲定)·정진정(精進定)·심정(心定)·사유정(思惟定)임.
 
 
562. 구사라경(瞿師羅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는데, 존자 아난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구사라(瞿師羅) 장자는 존자 아난의 처소로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아, 존자 아난에게 말했다. 
  어떤 이를 세상에서 법을 설하는 사람이라 하고, 어떤 것을 세상에서 잘 향하는 것[向]이라 하며, 어떤 것을 세상에서 잘 도달한 것[到]이라 합니까? 

  존자 아난이 구사라 장자에게 말했다. 
  내가 이제 당신에게 묻겠으니 마음대로 대답하십시오. 장자여, 당신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만일 어떤 이가 법을 설하여 탐욕을 항복 받고 성냄을 항복 받고 어리석음을 항복 받는다면, 세상에서 법을 설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존자 아난이여, 만일 어떤 이가 법을 설하여, 능히 탐욕을 항복 받고 성냄을 항복 받고 어리석음을 항복 받는다면, 그는 세상에서 법을 설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신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만일 세상에서 탐욕을 항복 받고 성냄을 항복 받고 어리석음을 항복 받는 데로 향한다면, 그것을 세상에서 잘 향하는 것이라 하겠습니까? 만일 세상에서 이미 탐욕·성냄·어리석음을 항복 받았다면, 그것을 잘 도달한 것이라 하겠습니까, 아니라 하겠습니까?. 

  존자 아난이여, 만일 탐욕을 항복 받아 이미 남김 없이 끊고, 성냄과 어리석음을 이미 남김 없이 끊었다면, 그것을 잘 도달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장자여, 내가 시험삼아 당신에게 물은 것에 대해 당신은 곧 나에게 진실하게 대답해주었습니다. 그 이치가 그러하니 마땅히 받아 지녀야 할 것입니다. 

  구사라 장자는 존자 아난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떠나갔다.
 
  
563. 니건경(尼?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비사리국(毘舍離國) 미후지(??池) 가에 있는 중각강당(重閣講堂)에 계셨는데, 존자 아난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니건(尼?)5)의 제자 무외 리차(無畏離車)6)와 아기비(阿耆毘)의 제자 총명동자(聰明童子) 리차가 존자 아난의 처소로 함께 찾아와, 서로 인사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앉았다. 그 때 무외 리차가 존자 아난에게 말했다. 
  우리 스승 니건자(尼?子)는 불타는 법[熾然法]을 끄고 청정하고 뛰어나시어, 제자들을 위해 이러한 도를 설하셨으니, '숙명(宿命:前生)의 업은 고행(苦行)을 행함으로써 그것을 다 없애고, 몸의 업[身業]을 짓지 않음으로써 연결다리를 끊어 미래 세상에서는 모든 번뇌가 다시는 없고 모든 업이 아주 다하며, 업이 아주 다했기 때문에 온갖 고통이 아주 다하고 온갖 고통이 아주 다했기 때문에 고통을 완전히 벗어난다'고 하셨습니다. 존자 아난이여, 이 뜻은 무엇입니까?

  존자 아난이 리차에게 말했다. 
  여래·응공·등정각께서는 알고 보신 것으로 불타는 법을 여의고 청정하고 뛰어나게 하는 방법과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근심과 슬픔을 여의며, 고통과 번민을 벗어나 진여법(眞如法)을 얻게 하기 위해 세 가지를 설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이러한 거룩한 제자는 깨끗한 계에 머물러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7)를 받고 위의(威儀)를 구족하며, 모든 죄를 믿어 두려워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이렇게 받아 지니고서 깨끗한 계를 구족하면 전생의 업[宿業]이 점점 없어져 현세에서 불타는 법[熾法]을 여읠 수 있으며, 때를 기다리지 않고서도 바른 법을 얻게 되어, 통달하고 밝게 보고 관찰하여 지혜로써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리차 장자여, 이것이 이른바 여래·응공·등정각께서 알고 보신 것으로 불타는 법을 여의고 청정하고 뛰어나게 하며,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고통과 번민을 없애며, 근심과 슬픔을 벗어나 진여법(眞如法)을 얻게 하기 위해 설하신 것입니다. 

  다시 리차여, 이와 같이 깨끗한 계를 구족하고 욕심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내지)……제4선(禪)에 구족하게 머물면, 이것이 이른바 여래·응공·등정각께서는 불타는 법을 여의고……(내지)……참다운 법을 얻게 하기 위해 설하신 것입니다. 다시 삼매정수(三昧正受)가 있어, 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를 사실 그대로 알고, 이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跡聖諦]를 사실 그대로 압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운 마음을 구족하여 업을 다시 짓지 않으면, 전생의 업이 점점 끊어져 현세에서 바른 법을 얻어 모든 불타는 법을 여읠 수 있으며, 때를 기다리지 않고서도 통달하고 밝게 보아 스스로 깨닫는 지혜가 생깁니다. 

  리차여, 이것이 이른바 여래·응공·등정각께서 알고 보신 것으로 불타는 법을 여의고 청정하고 뛰어나게 하며,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고통과 번민을 여의고 근심과 슬픔을 없애 참다운 법을 얻게 하기 위해 세 번째로 설하신 것입니다. 

  그 때 니건의 제자 리차 무외는 잠자코 있었다. 그 때 아기비 제자 리차 총명은 리차 무외에게 거듭 말했다. 
  이상하구려. 무외여, 왜 잠자코 있소? 여래·응공·등정각의 말씀과, 알고 보신 바와 좋은 설법을 듣고도 왜 기뻐하지 않소? 

  리차 무외가 대답하였다. 
  나는 그 이치에 대해 생각하느라고 잠자코 있었을 뿐이오. 세존이신 사문 구담의 설법을 듣고 누군들 기뻐하지 않겠소? 만일 누군가 구담의 설법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의롭지 못하고 이익이 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오. 

  그 때 니건 제자 리차 무외와 아기비 제자 총명은 부처님 설법과 존자 아난의 말을 거듭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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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팔리어로는 Nigadha라고 함. 계박(繫縛)을 여읜다는 뜻으로 사람의 이름임.
6) 팔리어로는 Abhaya Licchavi라고 함. 리차(離車)의 이름으로, 리차는 중인도 비사리국 찰제리(刹帝利) 종족의 이름임.

7) 팔리어로는 patimokkha이며, 한역하여 별별해탈(別別解脫) 혹은 별해탈계(別解脫戒)라고도 함. 그릇되고 잘못됨에서 따로따로 해탈한다는 뜻. 즉 계행(戒行)을 지켜 능히 따로따로 몸과 입의 잘못을 방지함으로써 점차로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게 된다. 승단 가운데 비구·비구니라면 마땅히 지속적으로 지켜야 할 계율의 근본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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