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1. 23:23ㆍ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마하리지는 지각력이 있는 존재가 가지고 태어나는 유일한 자산은 의식이라고 종종 말한다.
태어난 것이 육체 같지만, 그것은 외관상 그렇고, 실제에 있어서는, 태어나는 것은 의식이며,
의식은 스스로를 나타내 보일 유기체를 필요로 하는데 그 유기체가 바로 육체라고 한다.
지각력이 있는 존재에게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자극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구별짓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존재감각이요, 물리적 구조체인 육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역동적인 정신이다.
스스로를 개별적 형태로 현시하고, 그 형태들에게 명백한 존재성을 부여하는 것은 실제로 의식이다.
그러한 현시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독립된 '나'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그리하여 각 개인에게 있어서 절대는 자각으로 반영되고
자각은 자기 인식이나 자기의 의식으로 되는 것이다.
객관적 우주는 끊임없이 흘러가며 수많은 형태를 투영하고 용해시킨다.
하나의 형태가 만들어져 거기에 생명력이 주입될 때마다
절대자각이 생물에의 반영에 의해 의식이 동시에 그리고 자동적으로 나타난다.
의식이란 생물의 표면에 비치는 절대의 반영이며
그것으로 하여 이원적인 분리감이 초래된다는 점이 명확하게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
그것과는 달리 순수 자각의 절대적 상태는 시작과 끝이 없고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이 스스로 존재한다.
자각은 그것이 부딪쳐서 반영될 대상을 가질 때에만 의식이 된다.
자각과 의식으로 나타난 지각 사이에는 마음이 넘나들 수 없는 틈이 있다고 마하리지는 말한다.
한 방울의 이슬에 비친 태양은 진정한 태양이 아닌 것이다.
현시된 의식이란 그것이 깃들어 있던 물질적 구조(육체)가 소멸되자 마자 사라지는 현시적인 것으로서
당연히 시간을 초월할 수 없다.
그러나 마하리지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존재가 가지고 태어나는 유일한 '자산'이라고 한다.
또한 현시된 의식은 그와 절대 사이의 유일한 연결고리이며,
지각있는 존재가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개별적인 나로부터 가공적인 해방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왜 가공적인 해방인가? 본시 해방되어야 할 개별적인 '나'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식과 하나됨으로써, 자신의 의식을 자신의 생명의 근원으로 간주함으로써
전혀 길이 없어 보이던 근본으로의 회기라는 문제에 숨통을 터 가능할 수 있는 일로 되는 것이다.
활기를 불어넣는 이 의식의 실체는 무엇인가?
의식은 물질적인 형태를 의존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그것 역시 물질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현현된 의식은 그 거처인 육체가 건강하여 거기에 머물만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
의식은 절대의 반영이긴 하지만 그것은 시간을 초월할 수 없고,
육체를 구성하는 5대 원소로 이루어진 음식물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의식은 건강한 육체에 머물며 육체가 쇠하여 소멸할 때 함깨 사라진다.
태양의 반영은 깨끗한 이슬방울에서만 볼 수 잇을 뿐 흐린 이슬방울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마하리지는 우리가 날마다 경험하는 잠자고 꿈꾸고 깨어있는 일상의 상태에서 의식의 성질과 기능을 관찰할 수 있다고 종종 말한다.
깊은 잠 속에서 의식은 말하자면 휴면상태로 물러난다.
의식이 없을 때는 세계와 그 안에 머무는 것들의 존재나 구속과 해방에 관한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느낌조차도 없다.
그때는 '나'라는 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꿈의 상태에서는 약간의 의식이 활동하기 시작하여 그 의식 속에 산과 계곡, 강과 호수, 꿈꾸는 사람 자신을 포함한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도시와 마음의 온전한 세계가 창조된다.
여기에서 보다 중요한 점은 꿈에 나타난 형상들의 움직임에 대해 아무런 통제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 약간의 단순한 의식 작용에 의해 기억과 상상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살아있는 세계가 일순간에 창조되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마하리지는 단지 약간으로 전 우주를 포함하고 투영할 수 있는 이 의식의 비범한 힘을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꿈꾸는 사람이 깨어나면 꿈의 세계와 꿈에 나타난 형상들은 사라진다.
깊은 잠과 꿈의 상태가 끝나고 의식이 다시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가?
이때 나타나는 즉각적인 느낌은 '나'의 존재가 아닌 그 자체로서의 존재에 대한 느낌이다.
그러나 곧 정신(마음)이 들게 되고 '나'라는 관념과 육체에 자각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의식을 가지고 있는 육체라고 생각하는데에 너무나 익숙하여 진실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하는 것조차 어렵게 느끼고 있다는 점을 마하리지는 되풀이 해서 말한다.
실제로 스스로를 수많은 육체 속에 시현하고 있는 것은 의식이다.
따라서 태어남과 죽음은 시공 속의 사건들로 해석되는,
일련의 의식의 움직임의 시작과 끝에 불과함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이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가 본래의 원시상테에서는 다만 존재 그 자체의 자각인 지복(至福)이며
의식과 접촉할 때는 의식의 다양한 활동을 목격할 뿐임을,
그리고 그 활동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분명히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
즉 인식자는 자기가 인식하는 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 ,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인 것이다.
-라메쉬 발세카 지음, 이병규 번역<담배가계의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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