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22. 12:31ㆍ무한진인/無爲閑人 心身不二
벌써 봄의 중반을 지나가 초여름으로 건너가는 시절이 온 것 같다.
엇그제는 집 인근 공원의 벗꽃이 화사하게 만개하더니 어느새 벗꽃잎은 다 떨어져 버리고,
대신 연산홍과 연분홍 철죽꽃이 공원 화단과 길가마다 눈부시도록 화려하게 환희의 잔치를 벌리며 피어나고 있고,
라일락과 여러 가지 이름모를 화초와 꽃나무들이 저마다 독특한 이름다움과 꽃향내를 내뿜는 생명의 환희가 절정을 이루고 있는 시절이다.
내 방안의 창문가에 실내용 작은 화분들이 몇개 있는데,
그 중에 싱고니움이라는 작은 화초가 있다, 몇 년전에 다이소에서 사온 것인데 생각보다 꽤 오래 살고 있다.
몇 칠 전에 화분들에게 목욕탕에서 물을 주고 있는데, 싱고니움 화분에 잎파리 모양이 조금 다르고 큰 새싹이 새로 나온 것을 발견했다. 벌써 사온지 꽤 오래되어서 잎파리들이 점점 작아지는 것 같던데, 왠 일로 갑자기 키가 큰 새싹이 새로 나왔나 하고 신기하게 생각하며 자세히 들여다 보니, 원래 심어져 있던 싱고니움 잎파리 모양 하고는 좀 다른 잎파리처럼 보였다. "거 희안하다 ! 어째서 싱고니움에서 다른 풀이 돗아 나왔나?!" 하고 생각하면서 뿌리 아래쪽을 자세히 살펴 보니, 그 새싹이 싱고니움 뿌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도토리 열매에서 나온 도토리 나무 새싹이었다.
그제서야 작년 가을 일이 문득 생각이 났다.
"아 ! 그렇구나.작년 가을, 썩어서 싱고니움 거름이나 되라고 ,거기에 도토리 알을 버린 것이 저절로 새싹이 터서 나무가 되어 나왔네 그래, 신기 하네 !"
작년 (2018년), 10월 중순경, 낙옆들이 지는 시기에 집 인근 공원, 나무가 우거진 숲 속의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가을이 무르익어 숲속의 오솔길은 낙엽으로 뒤덮혀 있고 또한 도토리가 여기 저기 떨어져 있었다.
그 날, 숲 속 오솔길을 무심코 걷고 있는데 내머리 위를 토도독~ 때리며, 도토리가 연속해서 몇개가 두두둑 떨어졌다.
그 중에 세 개를 줏어서 한참 들여다 보다가 별 생각없이 바지 호주머니에 무심코 집어 넣었다.
원래는 공원 안에서 줏은 도토리는 공원 밖으로 갖고 나가지 못하게 하고 공원 후문 도토리 수집함에 집어 넣으라고 하는데,후문을 나오면서 반납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호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집에 들어와 옷을 벗다가 토토리 3개가 있길래 컴퓨터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가, 나중에 쓰레기통에 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몇 칠 동안을 책상 위에 그대로 놓아 두었다.
몇 칠동안 두고 책상 위의 도토리 삼형제를 그냥 놓고 물끄러미 잠깐 잠깐 들여다 보다가,
도토리 삼형제. 이것들도 나와 만난 것이 인연이라고 기념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두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사진을 한 장 찍고는 쓰레기통에다 버리려다가, 이것도 살아 있는 것일 텐데, 그냥 쓰레기로 패기처분하기 보다는
그것 나름대로의 보람있는 생명보시를 해보도록 인연을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장식장 위에 있는 싱고니움 작은 화분 속에 넣어 놓으면,거기서 그대로 썩어서 좋은 거름에 되어 싱고니움이 생장하는데 그런대로 보람있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혼자서 '참 기똥찬 아이디어 네'라고 자화자찬하며, 씩~ 한번 웃고는 화분 속에서 잘 썩어 화초 비료가 되기를 바랬다 . 그리고는 바로 그 일은 잊어 버렸다.
그런데 봄이 되어 날씨도 따뜻해지고. 매주 꼬박 꼬박 싱그니움 화분에 물을 주니깐 썩어서 거름이나 되라고 화분 속에 넣어둔 도토리가 오히려 반대로 싹을 트이고 크게 자라나서 이제는 원래 집주인인 싱그니움보다 키가 더 크게 자라나서 제법 도토리 나무 작은 묘목 수준으로 까지 성장해 버린 것이다.
우연하게 공원 숲속 길에서 내 머리를 토~도톡하고 맞히며 떨어진 도토리 삼형제가, 이제는 도토리 나무로 생겨 나와서 내 눈앞에서 자라는 이것을 보고 있자니, 그야말로 자연의 신비한 인연 작용이 나라는 인연뭉치와 직접 연관되어 참으로 우연스럽게 작용하고 있는 것을 바로 실감적으로 느껴 보는 것 같다.
얼마 후에 좀 더 나무가 자라면,이 도토리 묘목을 나의 머리 위로 떨어졌던 바로 그 자리,
그 공원 오솔길 옆에 안전하게 심어주면,
매일 아침 공원 산책 할 때마다 마치 내 애인처럼 정답고 즐겁게 그 도토리 나무를 들여다 볼 것이다.
고요한 숲 속에서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 얌전한 나의 애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이 모든 자연의 신비한 인연작용을 일어나게 하는 이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뭐꼬?
- 2019. 4. 22. 淸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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