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시에 느끼는 '나'라는 것은 '나'라는 생각일 뿐이지, 잔짜 '나'가 아니다.

2018. 10. 3. 09:49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마다나빨리의 둔칸 그렌레스(네델란드인 헌신자)씨가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

저는 때때로 생생한 의식의 섬광을 체험하는데, 그 중심은 정상적인 자아의 바깥에 있으며, 이 의식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저희들에게 철학적인 개념을 사용하지 마시고, 바가반께서는 저희가 어떻게 그런 흔치않은 섬광을 얻고, 보존하고, 확장하는 방향으로 수행해 갈 수 있는지 조언해 주시겠습니까?

바가반이 말씀하셨다 : '바깥'이라 - 누구에게 안이나 밖이 있습니까? 안과 밖은 주체와 대상이 있는 한에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또 이 둘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그 둘 다 주체 안으로만 합일 될 것입니다. 그 주체 안에 누가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이런 탐구를 하면 그대는 주체마저 넘어선 순수 의식에 이르게 됩니다.

'정상적인 자아'란 마음입니다. 마음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순수 의식은 한계를 초월해 있으며, 앞서 말한 것과 같은 탐구를 하면 도달할 수 있습니다.

'얻는다' - 진아는 항상 존재합니다. 그대는 진아가 드러나는 것을 막는 장애물을 소멸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보존한다' - 진아를 일단 얻고 나면, 그것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잃어버릴 수없습니다.

'확장한다' - 진아는 확장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축하거나 팽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러난다' - 진아 안에 안주하는 것이 홀로 있음 입니다. 왜냐하면 진아와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물러난다는 것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이지만, 진아와 별개의 하나(이것)도 없고 다른 하나(저것)도 없습니다. 일체가 진아이므로 물러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맗이 되지 않습니다. '수행'이란 진아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 - - - - - - -

몇명의 고위직 공무원과 함께 뿌뜨꼬다 주(州)의 전직 수상이었던 라가바이어씨가 아쉬람을 방문했다.

그 중의 한 명이 질문했다 : 마음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지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마하리쉬 : 두 가지 방법이 있지요. 하나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가라앉습니다.

두 번째는 그대의 주의를 어떤 것에 고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은 고요한 상태로 있게 됩니다.


질문자는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하면서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러자 설명을 조금 더 덧붙인 똑같은 대답이 돌아갔다. 질문자는 흡족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다른 질문자 : 저희들은 세속인이라서 이런저런 슬픔을 안고 살지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릅니다. 신에게 기도도 드려 보지만 그래도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하리쉬 : 신을 신뢰하십시오.

질문자 : 저희들은 순복합니다. 그래도 아무런 도움이 오지 않습니다.

마하리쉬 : 그렇지요. 만일 순복했다면 그대는 신의 뜻에 따라 살 수 있어야 하며, 달갑지 않은 일이 생긴다 해도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겉보기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괴로움이 사람들을 신에 대한 믿음으로 이끄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질문자 : 그러나 저희들은 속인입니다. 아내가 있고, 자식들이 있고, 친구와 친척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존재를 무시한 채, 저희들 내면에 개인성의 여지를 조금도 남겨두지 않고 저희 자신을 신의 뜻에 맡길 수가 없습니다.

마하리쉬 : 그것은 그대가 말한 것처럼 순복하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오로지 신을 신뢰해야 합니다.

다른 질문자 : 스와미님, 저는 브런튼의 <비밀 인도에서의 탐색>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마지막 장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그가 말하기를, 생각하지 않고도 의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잊어버린 채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마음 없이도 생각 할 수 있습니까? 생각을 넘어선 그 의식을 얻는 것이 가능합니까?

마하리쉬 : 그렇습니다. 단 하나의 의식이 있는데, 그것은 생시, 꿈, 잠의 상태에서도 지속됩니다. 잠 속에서는 '나'가 없습니다. '나'라는 생각은 생시에 일어나며, 이때 세계가 나타납니다. 잠 속에서는 이 '나'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그것도 있었음이 분명하지만 그대가 지금 느끼는 식으로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나')는 '나'라는 생각일 뿐이지만, 잠잘 때의 '나'는 진정한 '나'입니다. 그것은 항상 지속됩니다. 그것이 바로 의식입니다. 만일 그대가 알면, 그것은 생각을 넘어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질문자 : 마음 없이도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생각은 지고의 의식을 방해하지 않고도 이루어지는 다른 활동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 :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습니까?

마하리쉬는 늘 하듯이 그에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기 전에 자신의 진아를 발견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 그대 자신이 진아와 별개의 다른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하고 마하리쉬는 반문하셨다.

질문자 : 높은 체험과 낮은 체험(영적인 체험과 세속사를 의미함)을 어떻게 서로 관련지을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단 하나의 체험이 있을 뿐입니다. 거짓된 '나' 위에 구축된 것 말고 세속적 체험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에게 자신의 진아를 아는지 물어보십시오. "모른다"고 하겠지요. 자기(진아)를 모르면서 누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모든 세간적 지식은 그런 취약한 기반 위에 구축되어 있습니다.

질문자 : '거짓된 나'와 구별되는 '진정한 나'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구나 알지만, 그러나 자기를 모릅니다. 이상한 역설(逆說, 파라독스)이지요.  


마하리쉬는 나중에 이렇게 덧붙이셨다 : 마음이 과연 존재하는지 탐구해 들어가면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마음제어입니다. 그러지 않고 마음을 존재한다고 보고 그것을 제어하려고 하면, 그것은 마음으로 마음을 제어하려는 격이 되어 마치 경찰관으로 가장한 도둑이 도둑, 즉 자기 자신을 잡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그런 식으로 마음은 지속되며 , 스스로 빠져 나갑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대화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