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로 마음에 의지하여 지관(止觀)을 닦아야 하는가?

2018. 8. 20. 20:44성인들 가르침/불교 교리 일반



[가] 직접 설명

1. 반드시 마음을 의지

다음은 어떤 이유로 <우리의 마음인 여래장을> 의지해야 하는가를 설명하겠다.

외인이 질문했다. "무슨 까닭에 여래장 진심을 의지하여 지괸을 닦아야 합니까?"

이에 혜사스님이 대답했다.

" 이 마음은 일체의 모든 법을 나타내는 근본이 되기 때문에 일체의 모든 법은 우리의 마음(本)을 의지할 때 파괴도지 않는다. (청정한 수행이든 그릇된 수행이든 우리의 여래장 진심을 의지하여 일어난다) 그렇게 때문에 반드시 여래장 진심을 의지하여 지관을 수행해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지관을 수행함에 있어 이 마음을 의지하지 않으면 결코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원래부터 어느 하나의 법도 우리의 마음을 떠나서 따로 존재하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일심 자체의 본성(本性)에는 고요한 측면과 변화할 수 있는 측면의 두 가지 성품을 본래 갖추고 있다.

이렇게 이 두 가지 성품을 의지하여 수행함으로써 고요한 성품을 의지하여 수행함으로써 고요한 성품을 의지하여 열반을 증득하고 (自利의 功德), 현실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성품을 의지하여 보살행을 실천해야 한다. (利他의 功德)

왜냐하면 우리 마음을 의지하여 수행하지 않으면 <두 가지 공덕의 작용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작용이 나타나는가, 개인적인 깨달음을 위한 수행이든(寂-止 수행) 이타(利他)의 보살행이든(用-觀 수행) 이와 같은 까닭(因緣)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 마음을 의지하여 지관을 닦아야 한다"

2. 전체의 성품을 의지

외인이 질문했다."어떠한 이유로 우리 마음 자체에 고요한 측면과 현실적인 응용의 측면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습니까?"

이에 혜사 스님이 대답했다. "우리의 마음 자체는 절대평등하여 일체의 상대적인 차별상을 떠나서 존재하는데 이것이 고요한 측면의 의미이다. 한편 우리의 마음은 현실적인 응용의 측면에서 마음을 순종하는 작용과 마음을 거역하는 작용을 모두 갖추고 있는데, 이것이 현실적인 응용의 측면에서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지(止)수행을 닦으면 어지럽게 분별하는 망상이 끊어져 우리의 마음 자체가 일체의 차별상을 떠나 지극히 고요하고 안정되어 자리(自利)의 열반으로 나아간다. 관(觀) 수행을 닦으면 현실적인 응용의 측면에서 중생의 근기에 따라 방편으로 끊임없이 중생을 구제하는데 이것이 이타(利他)의 보살행이라 한다.


[나] 의문 해결

외인이 질문했다. " 지관(止觀)을 수행하는 것은 생사(生死)의 모습을 없애기 위한 것인데 만약 끊임없이 마음의 작용을 일으키게 한다면 오히려 더욱 더 생사에 유전(流轉)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에 혜사 스님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단지 그 잘못된 병통(病痛)만 제거할 뿐이지 법성(法性)마저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병통이란 중생이 분별망상으로 대상을 집착하는데 있지 지관의 두 가지 작용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많은 불보살이 치연(熾然)하게 방편을 사용하여 중생이 살고 있는 사바세계(六道)에 무간지옥의 모습을 나투는데 이것은 마음을 거역하는 작용(違用)을 나타낸 것이지만, 필경 < 그 근본 자체는> 청정하여 생사 번뇌에 물들지 않는데 이것은 지혜로써 밝게 관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상호(相好)가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고 심신(心身)은 오묘하고 수승(殊勝)한 경계에 안주해 있으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공덕을 모두 갖춘 것은 마음을 순종하는 측면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상으로 반드시 우리의 마음을 의지하여 지관을 수행해야 하는 까닭을 밝혔다.


                                                            -남악혜사 지음, 원경 옮김 <대승지관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