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움직임(心行)

2018. 3. 31. 09:50성인들 가르침/종범스님법문



심행(心行)은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우주의 존재는 마음의 움직임일 뿐입니다.존재가 아니고 생각이다'라는 이야기를 벌써 부터 해 왔는데, 세계 사상사적으로 이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세상에는 어떤 고정불변한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고, 생각이 있을 뿐입니다.

옛날에는 우주의 근원이 불이냐, 물이냐, 빛이냐 등을 가지고 계속 골몰했는데, 요즘은 생각일 뿐이라는 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일찍이 '일체법이 오직 식(識)일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이 존재가 아니라 생각임을 깨닫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예를 들어 찻잔을 보고 '이것이 물질적 존재이다. 이것은 찻잔이다.'라고 생각이 머무는 곳이 심행처(心行處)입니다.

이것 자체는 있다고 정의할 수 없고, 없다고 정의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무엇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을 해결하는 것이 인생문제의 해결입니다.

그 생각을 깨달아서 생각에 자재하는 것이 인생문제 해결입니다.

그래서 심행처(心行處)가 중요합니다.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느냐? 하는 마음의 움직임 뿐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죽는다'는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행복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행복하다'는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 뿐입니다. 그것이 유식무경(唯識無境), 즉 오직 인식이 있을 뿐 경계는 없는 유식불교학입니다. 오직 인식이 있을 뿐이고, 경계존재는 인식의 그림자입니다.

연못가에는 나뿐인데, 연못 안에 내가 또 보입니다. 그것은 나의 그림자입니다. 이것 또한 내가 찾잔이라고 생각할 뿐이지, 찻잔인 것도 아니고 찻잔이 아닌 것도 아닙니다. 정의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화엄에서는 여러 가지로 설명합니다. 선(禪)에서는 정의할 수 없는데 자재(自在)를 합니다. 설명을 생략하고 정의 할 수 없는데, 자유자재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선입니다.

유식무경이라는 유식에서는 식을 전5식(前五識), 제6식(第六識), 제 7말라식(第七末那識) 그리고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의 8식으로 설명합니다.

먼저 전오식은 안(眼), 이(耳),비(鼻),설(舌),신(身) 다섯가지에서 나오는 인식입니다. 이 전오식은 세상만 보는 것(觀世)입니다. 비,설,신 세 가지는 합해서 관세합니다. 즉 코와 혀와 몸은 합해서 부딪쳐야 합니다. 또 눈과 귀는 떨어져서 관세합니다. 합삼이이관진세(合三離二觀塵世)라, 세 가지는 합하고 둘은 떨어져서 티끌 세상을 봅니다. 아무튼 이 다섯 가지는 순전히 밖으로만 보는 관세식(觀世識)입니다.

다음 제6식(第六識)은 동신발어독위최(動身發語獨爲最)라고, 항상 몸을 움직이는 식입니다. 말도 하게 하고, 보게도 하고,기억하게도 합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전부 제6식에서 담당합니다.

그다음 제7식(第七識)은 아집식(我執識)입니다. 자기가 보고 듣고 행동하는 것을 전부 나라고 집착합니다. 이것 때문에 자기가 경험한 것은 다 옳다고 믿습니다. 나는 유일무이한 존재이지만, 다른 사람은 여러 사람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를 생각하는 기준과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기준이 다른 것이 아집입니다. 어디든지 가서 인연 따라서 자기를 집착하는데, 그 생각하는 기준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8식(第八識)은 장식(藏識)으로, 자기가 들었던 것, 보았던 것, 행동했던 것, 경험했던 것을 전부 모아서 저장합니다. 그래서 어릴 때 경험햇던 것을 다 기억하는 것입니다. 갈 때는 다른 것은 다 먼저 가버리는데 제8 아뢰아식만 제일 늦게 갑니다. 그리고 어디 태어날 때는 그것이 제일 먼저 태어납니다. 그래서 집장식(集藏識)은 거후내선작주공(去後來先作主公)이라, 갈 때는 뒤에 가고 올 때는 먼저 와서 항상 주인공이 됩니다. 이것이 심행(心行)입니다.

이 세상에는 심행 뿐입니다. 제행이 무상하니 모든 행이 심행뿐입니다.

'저기 물이 흐른다'라고 할 때,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고 내가 물이 흐른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내가 늙은 게 아니라 내가 늙었다고 보는 것이고, 죽는 게 아니라 죽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심행대로 나타납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면 그림을 그리는 대로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화엄경> "여래출현품"에 " 이러이러하게 생각하고 분별함으로써 이러이러하게 한량없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존재하는 데서 생각하는 것은 미혹한 것입니다. 깨달음은 생각하는 대로 보이는 것이지 있는 대로 보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고(一切唯心造), 마음이 곧 법(心外無法)"입니다.

일체가 오직 마음이요, 마음 밖에는 존재가 없습니다.


                                      -종범스님 설법집 <오직 한생각>에서 발췌함-  

                                

           -종범스님 설법집 <오직 한생각>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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