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경봉스님 법문] 봄소리(1)

무한진인 2025. 1. 31. 22:07

 

우리가 알려고 하는 이 자리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일체 상대적인 것이 떨어진 자리다.

시절은 춘삼월 호시절이라 우주에 춘광이 도래하여 시냇물은 잔잔히 흘러가고 꽃은 웃고 새는 우짖는다. 봅이 오니 새 우는 소리도 봅에 우는 소리가 다르다.

겨울에는 추워서 근근히 움추리는 소리로 우는데, 봄에는 아주 활발한 활짝 핀 울음소리다.

물은 잔잔히 흘러가고 산꽃은 웃고 들새는 노래하는 여기에 법문이 있다.

법문은 법사의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이 모두 법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기 전에 눈썹말을 전하고

묵연히 눈으로 미소를 짓네.

 

목격(目擊)에 도존(道存)이라.

눈이 마주치는 곳에 도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가만히 참선하고 있는 것이 극락세계 소식이요.

이것이 안락처요, 이것이 불경계(佛境界)에 들어가는 것이다.

 

탐심 진심 모든 망상을 다 쉬고, 모든 생각이 붙으려고 해도 붙을 수가 없는 그 경지, 천진난만한 동심에 돌아가야 한다.

마음이 항상 편해야 하고 몸은 바쁘더라도 마음은 태연부동해야 한다.

마음이 바쁘면 몸도 바쁘게 되니 몸은 바쁘더라도 마음은 태연해서 안락처를 얻어야 한다.

지극히 고요한 데 들어가면 편안한 것이 들어와서 몸도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그런데 속에 분별망상의 도적이 들어 있으니 항상 불안한데 그것을 없애고 가라앉히고 쉬어야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극히 고요한 데 들어가면 편안할 뿐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하늘과 달보다도 더 밝아지고 고요한 바닷물보다 더 맑아지는 이러한 경지가 들어온다.

지극히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한다.

이 자리가 사람마다 다 있는 것인데, 자기가 잘못해서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픈 것이다.

 

마음이 바르면 모든 일이 편안하고 즐겁다.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자연히 불안이 생기고 몸과 마음이 불안해지는데,

마음이 바르고 맑으면 항상 편안하고 즐거워지는 것이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고 부처님 말씀이다.

또 바르지 못하면 위태롭고 근심이 있다.

몸을 바르게 해야 한다.

몸을 바르게 하여 앉고 서더라도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바른 게 아니다.

몸이 바르고 말을 바르게 해야 한다.

공부하는 사람은 지혜(智慧) 가 있어서,

무슨 말을 들으면 그 말이 어디에 떨어지는지 그 말의 낙처(落處)를 안다.

그 말을 무엇때문에 끄집어내는지 말을 다 안들어도 안다.

 

정신수련을 하면 모든 면에 통찰력이 빨라지기에 좋은 것이다.

금을 캐면 금 속에 은도 들어 있고 철과 연도 들어 있는데,

잡철을 다 빼고 이십사금이 되면 세계에 통용하는 보배가 된다.

보검을 만드는데도 쇠에 불을 넣어 달구어서 자꾸 두드려 쇠똥을 모두 빼내고 쇠의 정수만 남아

아무런 잡철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두드린다.

다시 불에 달구어 최후에 온도가 덥지도 차지도 않는 물에 담갔다가 건져낼 때에 거기에 묘가 있는 것이다. 거기서 보검이 나온다.

우리가 본래 천진난만해서 아무 생각도 없는데 탐(貪)진(嗔)치(痴) 삼독(三毒)과 팔만사천 가지 번뇌를 일으켜서 모두 잡철 붙듯이 붙어 있다.

우리가 불교를 믿어서 마음도 바로 하고 그 마음 속에 아무 잡된 생각이 없으면 순금이 되고 보검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바른 뜻을 가지고 자비를 베푸는데, 자비는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보살의 행하는 곳이다.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하게 본다(了見)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욕된 것을 참는 데 머물러서, 부드럽고 화하고 착하고 순한 마음을 지닌다.

 

아무리 중생들이 수행을 잘하고 욕됩을 잘 참아도 부처님의 과거 인행(因行) 당시와 비교할 수가 없다. 누가 와서 내가 꼭 쓸 데가 있으니 너의 눈을 좀 빼달라고 조르니 쑥 빼주었다.

그러나 눈은 쓰지도 않고 발로 땅에다 문질러버렸다.

그러니 얼마나 괘씸하겠는가.

그래도 태연부동해서 동(動)하지 않으셨으니 부동지(不動地)에 이르러 그렇게 되기가 참 어려운 일이다.

 

마음이 조급하지 말고 또한 놀라지도 말아야 되는데,

산에 풀밭길을 가다가 꿩이 푸드득 하고 날라가면 깜짝 놀란다.

길을 가더라도 마음을 모아 집중하는 공부가 있으면 푸드득 할 때 꿩인줄 알아서 놀라지 않는다.

우리가 알려고 하는 이 자리는 마음을 두어서 구하지도 못하고 무심으로써 얻지도 못한다.

무심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망상(妄想)이 없는 바로 그것이다.

언어(言語)로 짓지도 못하고 말로써 어떻다고 말할 수도 없고, 문자로 이 자리를 어떻다고 형용할 수도 없고 적묵(寂默)으로 통할 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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