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즉각적이고 순수한 생각은 무위(無爲)를 낳는다

무한진인 2025. 1. 24. 22:54

 

마하리지는 방문갣들이 질문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질문들이 몸-마음과 동일시하는 수준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런한 류의 질문들과 문제들은 사람의 행동이나 행위에 관한 것들이며,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책들이 쓰여졌고 그 방면에 권위자라고 하는 스승들 또한 셀 수 없이 많음을 강조하곤 했다.

 

마하리지가 질문하라고 하자 한 방문객이 질문했다.

" 선생님께서는, 깨닫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생각(사념)을 삼가해야 한다고 종종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생각이 다 피해야 될 개념화를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면, 선생님의 대답은 아주 적절하면서도 즉각적이라 그 대답 이면에는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분명 어떤 생각이 그 대답의 밑에 깔려 있는 게 아닌가요? "

 

마하리지는 그 질문이 아주 적절하다는 듯이 따뜻한 웃음을 보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사실 같은 단어이기는 하지만 생각과 생각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백일몽 같은 생각, 과거에 대한 후회의 생각,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같은 생각이 있는가 하면

무의식의 심연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생각이 있기도 합니다.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심연의 생각은 전자의 생각과는 아주 다릅니다.

전자의 경우는 보통 무시되고 피해지지만 후자의 경우는 무시되거나 피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생각들은 본질적으로 자발적이며 즉각적이고 기본적으로 비개념적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존재한다'라는 첫 생각 역시 확실히 하나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을 마음으로 다시 계산하고 트집잡고 동의를 받아야 할 생각은 아닙니다.

사실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그 뒤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의 기본으로서 선개념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음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선개념의 생각에서 파생된, 분리되고 이원적인 마음으로 피상적인 생각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방식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모든 행동의 주체라고 여기는 그릇된 가짜 실체와 동일시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직접적이고 절대적인 생각은 절대적인 비현시가 스스로를 나투는 과정입니다.

그러한 생각은 자발적이고 즉각적이어서 모든 분리된 마음의 면모인 시간의 경과라는 요소가 없습니다. 시간의 경과가 있다면 그 생각은 필연적으로 현상적이고 이원론적으로 해석된 지나가 버린 생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개념적인 생각들의 폭풍들이 가라앉고 마음이 텅 빈 상태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지 않는 한, 자발적이고 비이중적인 직관적 생각이 떠오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직관적 생각은 속박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즉각적이고도 순수한 생각은 조그마한 구속도 없는 순수한 행동을 낳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위(無爲)입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자도 행위에 개입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교는 근본적으로 직접적이고 순수한 생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뜻은 개념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개념 위에 점차 거대한 구조가 세워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인도하게끔 되고만 것입니다.

 

                                                               -라메쉬 발세카 지음, 이명규 역 <담배가계의 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