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한암선사] 참선에 대하여(3)

무한진인 2025. 1. 22. 22:33

 

고정간(高亭簡) 선사는 처음에 강 건너서 덕산스님을 보고 멀리서 합장하면서,

"안녕하십니까?"

하였더니 덕산이 부채로 부르는 시늉을 하매 선사가 갑자기 깨닫고 피해 달아난 것과

구지 화상이 천룡의 한 손가락 세우는 데 크게 깨달은 것 등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조사 문하에 쉬운 것을 주로 하고 어려움은 말하지 아니하니

왜 그러냐 하면 어느 곳이든지 버드나무에 말을 맬 수 있으며

집집마다 문 앞의 큰길은 모두 장안으로 통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 누가 분(分)이 없으며 그 누가 능히 하지 못하리요.

산 너머 연기를 보면 불이 난 줄을 알고 담장 너머 뿔을 보면 소가 있는 줄 아나니

참으로 이른바 하지 않아서이지 능히 하지 못할 바는 아니로다.

부처와 중생이 한 이치로 고루 평등하고 범부와 성현이 둘이 아니건마는

다만 믿지 않는 것만이 유감이니 믿는 마음만 발하면

본래 생긴 천진불성(天眞佛性)을 누구에게 양도하며 무슨 마음으로 물러서리오.

 

그래서 <화엄경>에 이르기를,

"믿음이 능히 여래 땅에 이르며 믿음이 능히 지혜의 공덕을 자라게 한다." 하셨다.

 

그런즉 신심을 내는 자가 곧 여래의 혜명을 이을 분이다.

아! 성현께서 태어나신 지 오래되어 게으른 사람이 많고 부지런한 이는 적어서

자기의 일을 전부 망각하고 쓸데없는 탐진아만(貪嗔我慢)과 허망한 명상(名相)과

유위(有爲)를 집착하여 마음을 돌이킬 줄 알지 못하고 일생을 헛되이 보내서

어느덧 머리가 백발이 되었도다.

천당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앞길이 망망하니 누구를 탓하리오.

참선 못한 내탓이다.

 

눈물이 비오듯 쏫아지니 쓸쓸하기 짝이 없고

슬픈 바람이는 곳에 바람 소리만 서늘하다.

황량한 풀밭에 부질없이 돌비석만 서 있고

녹양 중에 공연히 종이돈만 걸렸도다.

 

죽을 때를 당하여서는 이와 같은 비참한 경계를 면하지 못하나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뜻 있는 장부는 들어보소.

옷 안에 밝은 구슬을 어째서 못 찾고

유리걸식 즐겨하며,

집 안의 보물 창고는 왜 버리고

비렁뱅이 거지는 못 면하나.

 

옷 가운데 밝은 구슬을 속히 찾고 집 안의 보물 창고를 얻었다면 사대(四大) 색신이

헛된 줄을 알고 육진(六塵)의 인연 그림자가 실됨이 없는 줄을 깨달으라.

석가모니의 성실한 말을 베껴서 말하라면 바닷물로 먹을 갈아 써도 다하지 못하나

진실로 공부를 얻으려면 많은 말이 필요없다.

그러므로 나옹조사가 이르신 말씀인즉,

"백천 가지 방편과 억만 가지 설화가 이곳에는 쓸데없다. " 하셨다.

 

한 선화자(禪和子)가 곁에 있다가 미소하며 이르기를,

"위의 갈등이 모두 잘 아시는 말이거늘 첫머리에 달려들어 선을 알지 못한다는 말은 그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말히기를,

"너는 어찌 듣지 못했는가. 부처는 무식(無識)이라 하고 달마는 불식(不識)이라 하고,

육조는 불회불법(不會佛法)이라 하셨느니라."

"어찌하여 불식불회입니까?"

"불식 불식이요, 불회 불회니라."

"제가 실로 어둡고 우둔하여 낙처를 모르오니 자세히 일러주시기를 바라나이다."

"불회의 회처(會處)가 곧 불식처요, 식의 불식처가 곧 이 회의 불회처니라."

"그러면 회와 불회, 식과 불식이 둘이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그대가 무엇 때문에 스스로 엎치락 뒤치락하는가?"

"어느 곳이 저의 엎치락 뒤치락하는 곳입니까?"

"회와 식을 들으면 회와 식의 해석을 하려 하고

불회와 불식을 들으면 불회와 불식을 해석하려 하니

이것이 곧 말을 따라 해석하려는 것이라 어찌 엎치락뒷치락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말을 따라 해석하려들지 않는다면 도에 계합합니까?"

"그만두어리. 말하지 마라. 나의 법이 오묘해서 생각하기 어려우니라."

"그 생각하기 어려운 오묘함을 통하여 주소서."

"푸른 바다가 마르는 것은 볼지언정 마침내 그대에게 통해줄 수는 없느니라."

선화자가 망연하여 물러가거늘 내가,

"사리여! "

허고 부르니 선화자가 돌아 보거늘, 내가 이르기를

"이 무엇인고!"

하니 선화자가 말을 하려 하거늘,

"할 ! "

일할 하니라.

 

                                                                                - 한암선사 설법집 <할(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