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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조법사의 조론 공부18] 물불천론(物不遷論)- 13

무한진인 2025. 1. 13. 22:44

 

[본문]

이와 같다면 천지가 뒤집힌다 해도 고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며, 홍수가 하늘까지 넘실된다 해도 움직인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움직이는 사물에 나아가 천류하지 않는 이치에 나의 정신이 하나로 일치할 수만 있다면 이를 멀지 않아 알게 되리라.

 

[주해]

여기서는 결론을 지어 범부의 미혹을 책망하고 깨달음을 수행하라고 권하였다.

이미 사물이 천류하지 않는 이치가 분명해졌다면, 하늘이 돌고 산악이 뒤집힌다 해도 고요하지 않다고 말하진 말아야 하며, 홍수가 하늘까지 넘실댄다 해도 움직인다고 말하진 말아야 됨을 말하였다. 이는 범부의 미혹을 책망한 것이고, 다음부터는 수행하도록 권하였다.

즉 천류하는 사물에 나아가서 천류하지 않는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진여의 세계를 볼 수 있다면 눈에 부딪치는 대로가 제법실상의 상주 아님이 없다.

그리하여 일체의 만법에서 움직이며 구를 만한 것은 한 티끌만큼도 없다.

이는 꼭 멀리서 찾지 않아도 현재의 위치에서 알 수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조론>을 읽었다. <조론>을 읽다가 현상의 사물은 천류하지 않는다고 한 종지에 있어서 멍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매양 '선람(旋嵐)의 겁풍(劫風)이 불어와 수미산이 무너진다 해도 항상 고요하다.'고 한 등등의 네 구절에 의심을 품었다.

그 뒤 깨닫고 나서야 조공께서 제법의 실상을 심오하게 깨달았다는 것을 알고 확신하게 되었다.

<화엄경> 청량 국사의 <대소(大疎)>를 열람하다 문명품(文明品)에 이르러 '비유하면 강물이 다투듯이 빠른 속도로 달리듯 한다.'고 한 데 대해, 청량국사는 조공의 찬류하지 않는다한 게송을 인용하여 이 경문의 내용을 증명하였다. 이는 청량국사가 조공의 소견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셨던 의미와 오묘하게 계합하였다고 추앙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언젠가 친구와 이 문제를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나의 의견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되려 조공은 어느 한 쪽의 이치만 치우치게 본 외도(外道)라 하면서 불교의 의리를 광대하게 인용하여 조공의 논리를 반박하였다.

그 뿐 아니라, 불법 문중의 큰 스님인 운서(雲捿), 자백(紫栢) 같은 덕이 높은 스님들까지도 모두 애써 다투면서 끝내 자기들 학설을 돌이키지 않았다.

내가 <정법안장(正法眼藏)>이란 선서(禪書)를 열람해 보았더니 그 내용 가운데 이러한 부분이 있었다. 즉 불감화상(佛鑑和尙)이 대중스님들에게 법문을 하면서 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스님께 묻기를, '사물이 천류하지 않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 하였더니,

조주가 양 손으로 물이 흐르는 시늉을 하자, 그 스님은 깨달음이 있었다 하였다.

다시 어떤 스님이 법안(法眼)스님에게, '육진의 차별적인 모습을 취하지 않고 여여(如如)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였습니다. 어떻게 해야만 육진의 차별적인 모습을 취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제법실상의 도리를 보게 될까요?'라고 물었더니.

법안스님은 말하기를, '해가 아침에 동쪽에서 뜨더니 저녁엔 서쪽으로 진다네.' 하자,

그 스님도 깨달음이 있었다 한다.

이들은 사물이 천류하는데서 천류하지 않는 실제를 보인 것이다.

여기에서 제법 실상을 볼 수 있어야만 선람(旋嵐)의 바람이 수미산을 무너뜨린다 해도 본래 항상 고요하며, 강물이 다투듯이 바다로 흘러간다 해도 흐르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을 알리라.

혹시 이러하지 못하다면 다시 많은 설명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면치 못하겠구나,

하늘은 왼쪽으로 돌고 대지는 오른쪽으로 회전하면서 예로부터 지금까지 몇 번이나 지났던가?

해는 날고 달은 달리면서 바다 위로 솟아올랐는가 하면 다시 청산(靑山)의 뒤로 진다.

강물의 파도는 아득히 질펀하여 회수(淮水)와 제수(제水)의 파장이 유유하게 흐르면서 밤낮없이 푸른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이윽고 큰소리로 말하노라.

참선을 하는 모든 선덕들이여, 제법이 유유하게 움직이지 않는 도리를 보았느냐?

그러나 조주와 법안 스님은 모두가 선종문하(禪宗門下)의 대덕들로서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수했던 큰 스님들이었다. 불감화상은 그들을 추앙하여 대중에게 설법을 하고 천류하지 않는 종지를 발현하기를 마치 밝은 해가 중천에 떠있는 듯이 하였다.

교의(敎義)의 문자나 지키는 스님으로서 도를 깨닫길 바라는 자가 아니라면 조공이 외도의 견해를 지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를 기록해서 학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사물이 천류하지 않는다 한 의미에서 언어 밖의 의미를 깨닫고 스스로 확신을 갖게 되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 승조 지음, 감산덕청 주해, 송찬우 옮김 <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