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기타 비이원론 가르침

시간이라는 것에 대하여

무한진인 2024. 10. 3. 21:11

 

시간의 형성에 대하여

 

"우주의 신"은 원초적 환상입니다.

나중에, 8 배로 현상화가 확장되었고, 우주의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을 때, 어떤 형상도 없이,

공간처럼 순수한 무형(無形)만이 존재합니다.

시간은 거기에 없습니다.

 

환상의 덮개가 넓어지면서 시간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환상 이외에는 시간이 존재하는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움직임이고 다른 하나는 고요함입니다.

움직임이 있을 때 시간의 개념이 있습니다.

움직임과 시간이 다른 곳은 어디입니까?

 

공간에는 그 안에 포함된 거리 또는 간격이 있습니다.

공간에는 "시작'과 "간격" 뿐 아니라, 약간의 시간 경과 또는 지속시간이 있습니다.

이 지속기간이나 공간의 간격이 시간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태양 때문에, 한 순간부터 다음 순간까지의 세는 기간,

단 1초부터 영겁의 끝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는 기간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초, 분, 시, 일, 낯과 밤,2주,1개월,6 개월, 1년,

그리고 영겁이 알려지게 됩니다.

 

유가시대의 연대기와 마찬가지로,

고대경전에 묘사된 신(神)들의 다양한 수명(나이)은 지구상에서 이와 같이 진행됩니다.

 

삼신(三神, 세 가지 구나)의 활동은 아주 미묘한 질서 내에서 펼쳐지는데,

만약 사물의 질서에 어떤 불일치가 발생한다고 상상하면 사람들은 걱정하게 됩니다.

 

세 가지 구나의 혼합물은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우주의 전체 구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혼합물(파동에너지)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십시오,

이러한 문제는 깨달은 사람에 의해서만 이해가 됩니다.

무지한 사람은 불필요하게 망상에만 얽히게 됩니다.

이러한 숨겨진 사항들은 깨달은 지혜에 대한 실제적 경험에 의해 알려집니다.

 

창조의 생성시간, 창조의 확장시간, 지속 시간, 창조의 파괴 시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의 형태입니다.

 

어떤 특정기간의 이름은 해당기간 동안 발생한 것에 따라 지정됩니다.

만약 이것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면 더 자세히 들어 보십시오.

 

장마철,겨울철, 더운 계절, 만족의 시간, 기쁘고 슬픈 시간, 즐거움의 시간은 모두 경험됩니다.

아침 시간, 오후 시간, 저녁 시간, 봄 계절, 길한 시간, 힘든 시기는 모두 사람들이 이해합니다.

출생시간, 유년기, 청년기, 노년기, 사망시간, 그리고 행운의 시간은 모두 시간의 형태입니다.

풍성한 시간, 기근의 시간, 불길하고 상서로운 시간, 이 모든 시간이 함께 시간이라고 불리우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한 가지가 있지만 다른 것으로 느껴질 때, 이것을 분별의 결여라고 합니다.

많은 세상 활동을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활동에 참여하는 수준에서만 이해합니다.

 

마음이 계속해서 세상활동에 참여 할 때, 그것은 아래 쪽(객관화)으로 향합니다.

마음이 모든 세속적 참여에서 멀어질 때(객관화에서 멀어짐), 지복이 있습니다.

이 지복의 즐거움은 분별력을 활용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우주의 형성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분별력을 활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것을 반복해서 탐구하는 사람들은 브라흐만이라는 본래의 지위에 도달합니다.

 

자신의 신성한 참된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삶을 사는 사람은 브라흐만의 상태에 도달하여,

운명과 과거의 행적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 머물러서 살아갑니다.

 

모든 것의 뿌리는 오직 하나입니다.

일부는 그것을 알고, 일부는 알지 못합니다.

분별의 힘을 활용함으로써 영적인 삶의 정점에 즉시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사람의 삶이 가치있게 됩니다.

현자는 세상의 삶과 영적인 삶을 모두 분명하게 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분별의 힘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별력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동물과 같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그들의 말을 들음으로써 영적인 삶의 절정에 어떻게 이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대로 한다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였든지 그에 따라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뿌린 것은 무엇이든 자라났고,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하든 그에 따라 열매를 받게 됩니다.

헌신한 사람은 신에 도달합니다.

신과 헌신자가 하나가 될 때, 만족감은 커집니다.

 

신을 찬양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은 쓸데없이 왔다 갔다 합니다.

현명한 몇몇 사람들조차 환상 속에 있는 것들에 매료되어 그들의 진정한 본모습을 잊어버립니다.

그들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 이 세상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간에 여기에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경험입니다.

결국 누군가가 그들과 함께 무엇을 가지고 (죽음으로) 가는지 말해 보십시오?

 

세속적인 일에 무관심하십시오.

분별의 힘을 사용하여 모든 것을 쉽고 편안하게 보십시오.

이런 방법으로, 거의가 깨닫지 못하는 우주의 주님(神)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우주의 신을 깨닫는 것만큼 위대한 일은 없습니다.

다양한 상황에 적절하게 맞추어서 초연한 자세로 세상일을 처리해 나가면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자나카 왕처럼 왕국을 통치하면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늘 날에도 이러한 덕망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왕이 죽음을 맞이하여 수백만 루피 혹은 수십억 루피를 지불하겠다고 제안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죽음을 면제받지 못할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이렇습니다.

그것은 항상 다른 사람과 죽음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인생에는 많은 고통과 고뇌, 많은 불만과 걱정이 있습니다.

너무나 많아서 다 말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상 삶의 장터 한 가운데서, 신(神)을 깨닫는 이득을 찾아야 합니다.

오직 신을 깨달음으로써 삶의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