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되지 않은 세계로 들어가기(4)
또 다른 문(2)
현시되지 않은 세계로 들어가는 또 다른 문은 생각을 정지함으로써 열립니다.
이는 매우 간단한 방법으로 출발할 수 있는데, 의식적으로 호흡하거나 예민하게 깨어있는 상태로 한 송이 꽃을 바라볼 때, 그 순간 마음이 거기 간섭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칠 줄 모르는 생각의 흐름에 틈새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가지 있습니다.
수많은 명상법이 바로 그런 방법입니다.
생각은 현시된 세상의 영역에 속합니다.
끊임없는 마음의 활동은 눈에 보이는 현상의 세계 속에 당신을 가두어 둠으로써
현시되지 않은 세계, 당신 자신과 모든 사물과 생명체 안에 존재하며,
형태나 시간을 초월한 신의 본질을 의식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불투명한 장막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확고하게 현존하고 있는 동안에는 굳이 생각을 정지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의 활동이 자동적으로 멈추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다른 모든 문의 본질적인 면이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내맡김' 또한 현시되지 않은 세계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면의 저항은 다른 사람들과 진정한 당신 자신, 그리고 주변의 세상으로부터 당신을 차단시킵니다. 그래서 에고가 의존하고 있는 분리감을 강화합니다.
분리감이 강해질수록 당신은 현시된 세상, 분리된 형상의 세계에 얽매이게 됩니다.
그리고 형상의 세계에 속박되어 있을수록 당신의 모습을 자신과 동일시 하게 됩니다.
그래서 문이 닫히고 내면의 차원, 깊이의 차원으로부터 단절되는 것입니다.
반면, 내맡김의 상태 속에서는 눈에 보이는 모습과의 동일시가 깨어지고,
어느 정도 '투명'해지면서 현시되지 않은 세계가 당신에게 빛을 비추게 됩니다.
현시되지 않은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여는 것은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내면의 몸의 에너지 장과의 접촉, 확고한 현존, 마음으로부터의 독립, 있는 그대로에 대한 내맡김, 이러한 것들이 모두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문들입니다.
그 중에서 한 가지만 사용해도 됩니다.
문 : 사랑도 그러한 문 중의 하나인가요?
답 : 아닙니다. 사랑은 아닙니다. 그 문들 중 하나가 열리자마자 사람은 합일의 느낌으로 당신 속에 자리 잡습니다. 사랑은 문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 문을 통해 이 세상에 들어 옵니다. 당신이 완전히 눈에 보이는 모습과 동화되어 있는 한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할 일은 사랑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들어오는 문을 찾는 것입니다.
-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노혜숙 유영일 옮김 <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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