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바시슈타 요가

[바시슈타 요가] 거대한 숲의 이야기(2)

무한진인 2024. 9. 2. 21:24

시슈타는 계속했다.

오, 라마여! 개체화된 의식인 마음은 지고의 존재에서 일어났습니다.

즉, 파도들이 바다와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한 것처럼,

그것은 무한한 의식과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합니다.

깨달은 이들에게 있어, 마음은 절대적인 브라만일 뿐입니다.

깨닫지 못한 이들에게 있어, 마음은 반복적인 역사(삼사라)의 원인입니다.

오, 라마여! 이원적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가르침을 쉽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분리는 실재가 아닙니다.

 

절대적인 브라만은 전지전능합니다.

절대적 브라만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사물에 가득차 있는 것은 절대적 브라만의 힘과 에너지입니다.

몸을 지닌 존재들 속에서, 그것은 의식 혹은 지성의 힘(찌뜨 아까샤)입니다.

그것은 공기 속의 움직임이며, 땅 속의 안정감이며, 공간 속의 무이며,

창조된 존재들 속에 있는 자기 의식('나는 존재한다')의 힘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지 절대적 브라만의 힘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분리의 힘이고, 슬픔에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슬픔을 유발하는 힘이며,

즐거운 자들에게서 의기양양함을 유발하는 힘입니다.

전사의 가슴 속에서 그것은 용기입니다.

창조를 일으키는 것도 그 힘이며, 우주의 소멸을 가져오는 것도 동일한 그 힘입니다.

 

지바는 의식과 물질의 접합부에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적 브라만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브라만 속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온 우주와 절대 브라만으로서의 '나'를 보십시오.

왜냐하면 브라만인 참나는 전지전능하기 때문입니다.

그 참나가 생각할 때, 그것을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브라만과 다르지 않은 절대적 브라만의 힘입니다.

그 속에서는 '나'와 '이것'으로서의 임의적 분리는 단지 외적인 나타남 뿐입니다.

마음의 바로 실재는 오직 브라만일 뿐입니다.

 

여기 그리고 저기서, 지금 그리고 그때, 이 브라만의 힘은 그 힘들 중 하나나 다른 것을 나타내게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나타남은 브라만이 가진 힘의 외적 나타남일 뿐이며 실재의 창조가 아닙니다. 따라서 창조, 변형, 존재의 파괴는 모두 브라만 속에서 브라만에 의해 일어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브라만일 뿐입니다.

행위의 도구와 행위와 행위자, 탄생과 죽음과 존재, 이 모든 것은 브라만입니다.

상상 속에서조차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혹, 갈망, 탐욕, 집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원성이 없는데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존재하겠습니까?

속박이 존재하지 않을 때, 분명히 해방 또한 거짓입니다.

 

라마가 물었다.

신성한 분이시여!

당신은 마음이 이런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속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것들이 동시에 가능합니까?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오, 라마여! 무지한 상태에 있는 마음은 속박을 상상합니다.

속박은 무지스러운 상태이서만 존재합니다.

꿈꾸는 자가 깨어나면 꿈의 대상들이 사라지듯이,

깨달은 자의 눈에는 속박과 자유라는 이 모든 환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와미 벤까떼사난다 영역, 김병채 옮김 <바시슈타 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