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불교 교리 일반

[승조법사의 조론 공부15] 물불천론(物不遷論)- 10

무한진인 2024. 8. 21. 21:52

 

[본문]

그렇다면, 여러 서적에서 표현한 문자가 다르고 모든 사상가들이 다르게 말한다 해도 귀납하여 회합하는 점만 체득한다면, 어찌 표현한 문자가 다르다 해서 거기에 현혹을 당하겠는가?

[주해]

여기에서도 언어 문자를 잊고 근본종지에 회합함을 나타냈다.

모든 경전과 논서에서 표현한 문자와 설명한 언어가 다르다 해도 진여법계의 종지를 얻어 이를 관통한다면 한결같고 진실한 세계로 회귀한다. 무엇 때문에 언어 문자에 현혹을 당하는가?

 

[본문]

그러므로 사람들이 상주불변하라고 말하는 것을 나는 그것은 무상하게 흘러간다고 말하고,

사람들이 무상하게 흘러간다고 말하는 것을 나는 그것은 상주불변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무상하게 흘러간다, 상주불변한다 한 말은 다르지만 그것이 이르러 가는 곳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도덕경>에 말하기를, '올바른 말은 반대되는 듯 하다. 이를 뉘라서 믿으려 할까?' 하였는데, 이 말을 하게 된 까닭이 있었다 하리라.

[주해]

여기서는 범부의 미혹과 성인의 깨달음이 하나의 근원임을 나타냈다.

사람들은 상주한다 말하는데, 이는 허망한 집착으로 상대적으로 무상(無常)에 떨어진다.

그 때문에 나는 생멸변화로 흘러간다고 말하여 그들의 집착을 타파한 의도는 상주함이 없다는데 있었지 생멸로 흘러감을 말한 것이 아니다. 지금 흘러간다 말한 것은 그들이 무상한 생사를 상주한다고 집착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은 상주한다고 말하여 그들의 집착을 타파한 의도는 본래 생사가 없다는데 있었지,

상주하여 머물 만하다 함을 말한 것은 아니다.

이는 흘러간다, 상주한다 한 두말이 그들 집착을 타파하여 이로써 일진상주(一眞常住)의 도리를 나타내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말은 달라도 이치의 귀결함은 하나이다.

이는 바로 노자가 말한 '올바른 말은 반대되는 듯도 한다. 뉘라서 이를 믿으려 할까' 한 경우와 같다. '이 말을 하게 된 까닭이 있었다 하리라.'하였는데, 이는 미혹과 깨달음이 일진의 상주에서 벗어나지 않고, 따라서 시비가 본래 두 이치가 없음을 말하였다. 주관적인 인식의 사량분별이 끊겨 있는 현상 그대로의 현량(現量)이 드러나면 상대적인 말을 따라서 의미를 취하지 않는다.

 

[본문]

왜냐하면 (이는 고금이 천류하지 않는다는 것을 묻고 문제를 나타냈다. 요컨대 이는 범부의 미혹에 나아가서 성인의 깨달음을 나타냈다)

일반 사람들은 옛날을 현재에서 구해 보고 옛날을 안주하지 않는다 말들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현재 가운데서 옛날을 찾아 보다가 찾지 못하면 옛날은 천류했다고 헤아린다. 이는 범부의 미혹이다].

나는 현재를 옛날에서 찾아보고 현재는 옛날로 흘러가지 않았음을 안다 (나는 옛날 속에서 현재를 찾아 보있더니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현재가 옛날로 흘러가지 않았음을 안다.이는 성인의 깨달음이다.)

일반인의 견해대로 현재가 옛날로 이르러 갔다면 옛날도 현재로 흘러 와 있어야만 하며, 옛날이 현재로 이르러 왔다면 현재도 응당 옛날로 흘러가 있어야만 하리라[현재와 옛날이 서로 왕래함이 있다면 서로에게 그 자취가 있어야만 된다.]

현재에는 옛날이 없기 때문에 이로써 옛날은 현재로 흘러오지 않았음을 알 수 있고, 옛날에는 현재가 없기 때문에 이로써 현재는 옛날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여기서는 고금이 천류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면으로 제시하였다.현재 속에 옛날이 없다면 옛날이 현재로 흘러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옛날 속에 현재가 없다면 현재가 엣날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흘러오고 흘러간 자취가 없다면 고금의 시간적인 전후가 서로 맞닿는 즈음이 끊겼는데 무슨 천류함이 있으랴 !

옛날이 현재로 이르러 오지 않았다면 현재도 옛날로 흘러간 것은 아니다. [옛날과 현재가 서로 도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물마다 각자의 성품이 한 세대에 안주한다.

무슨 사물이 있어서 흘러가고 흘러 오겠는가[고금이 하나의 즈음으로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현상의 법마다가 진상임을 분명히 알리라. <법화경>에서 말하기를, '이 법이 자기의 위치에 안주하여 생멸하는 세간의 모습이 상주불멸한다'라고 하였다. 이는 사물마다의 성품이 한 세대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무슨 사물이 있어 시간을 따라 거래를 하겠는가?]

이와 같다면 사상(四象)이 바람처럼 달리고, 선기(璇璣)가 번개처럼 걷흰다 해도 은미한 데서 털끝만큼의 그 의도를 체득하면 신속하다 해도 실제론 구르는 것이 아니다.

[주해]

여기서는 고금(古今)이 천류하지 않는 오묘한 깨달음으로 결론 짓고 귀결시켰다.

사상(四象)은 일월성진(日月星辰)이다. <조론 신소(新疎)>에서는 이를 춘하추동(春夏秋冬)사시절이라 하였다.

'선기(璇璣)'는 <구소(舊疎)>에서 북두칠성 가운데 두 별자리의 이름이라고 하였으나, 나의 의도론 북극성인 듯 하다. 이들 모두가 정지하지 않고 돌고 구르면서 마치 신속함이 헤아릴 수 없는 번개가 걷히듯 하다.

그러나 털끝만큼의 은미한 데서 천류하지 않는 이치를 깨닫기만 한다면 시방세계가 담연하여 고요히 번뇌가 사라지리라.

여기까지는 한결같이 사물은 천류한다고 보는 미혹한 견해만을 논증했다. 때문에 범부라 하였고,

다음부터는 깨달으면 천류하지 않는다는 것을 논증하였는데, 이는 성인의 경지라 하겠다.

 

                                                                            - 승조 지음, 감산덕청 주해, 송찬우 옮김 <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