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기타 베단타 스승들 가르침

현시되지 않은 세계로 들어가기(3)

무한진인 2024. 8. 19. 21:58

 

꿈없는 잠

 

당신은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에 들 때마다 현시되지 않은 세계 속으로 여행을 합니다.

근원과 합해지는 것입니다.

그 근원으로부터 잠시 동안 당신을 지탱해주는 생명에너지를 얻고 현시된 세상으로 돌아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수 없다'는 말처럼, 이 에너지는 음식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꿈꾸지 않는 잠 속에 의식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꿈꾸지 않는 잠 속에서도 몸은 여전히 기능을 하지만, 당신은 더 이상 몸 안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완전한 의식을 갖고 꿈꾸지 않는 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꿈없는 잠의 상태는 아무런 내용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시되지 않은 세계는 당신이 의식적으로 거기 들어가지 전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는 '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해 줄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너희가 진리를 알게 되면,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해주리라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개념에 대한 진리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상을 초월한 영원한 생명의 진리로서 직접 체험을 통해 알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꿈 없는 잠 속에서 의식적으로 머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성공하기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꿈을 꾸는 동안 의식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안됩니다.

꿈을 꾸면서 꿈을 의식하는 자각몽의 상태는 재미있고 흥미로울 수 있지만,

그것이 진정 자유로운 상태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면의 문'을 현시되지 않은 세계로 들어가는 문으로 사용하십시오.

언제라도 근원과 연결될 수 있도록 그 문을 열어두십시오.

내면의 몸은 육체의 몸이 늙었든 젊었든, 허약라든 강하든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내면의 몸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아직 내면의 몸을 느낄 수 없다면 다른 문을 사용해도 됩니다.

모든 문은 궁극적으로 한 가지입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여기서 잠깐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또 다른 문(1)

 

'지금'은 정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내면의 몸을 포함해 다른 모든 문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당신은 '지금' 속에 확고하게 현존하지 않고 몸 안에 있을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과 시간이 서로 뒤엉켜 있듯이,

시간 없는 '지금'과 '현시되지 않은 세계'도 긴밀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강렬한 현존으로써 심리적인 시간을 용해할 때,

당신은 직간접으로 '현시되지 않은 세계'를 인식하게 됩니다.

직접적으로는 현존하는 의식의 힘과 빛으로서 그것을 느끼게 됩니다.

단지 현존할 뿐, 거기에는 아무런 내용물도 없습니다.

간접적으로는 감각의 영역을 통해, 감각의 영역 안에서 현시되지 않은 세계를 인식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꽃 한 송이나 돌맹이 하나에서도 신의 본질을 느끼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성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도마 복음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작을 쪼개 보아라. 내가 거기 있다. 동맹이를 들어 보아라. 거기서 나를 찾을 것이다. "

예수는 그렇게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자신의 본질과 그 정체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노혜숙 유영일 옮김 <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