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슈타 요가] 거대한 숲의 이야기(1)
바시슈타가 계속했다.
오, 라마여 ! 마음의 기원이 무엇이든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 될 수 있든,
자기 노력을 통하여 마음을 끊임없이 해방으로 향하도록 해야 합니다.
순수한 마음은 잠재적 경향성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참나지식(진아지)을 얻습니다.
전 우주가 마음 속에 있기 때문에, 굴레와 해방이라는 개념 또한 마음 속에 있습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내가 창조자 브라마에게서 직접 들은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귀기울여 들어 보십시오.
거대한 숲이 있었습니다. 그 숲은 너무나 커서 수백만 평방 마일의 공간도 그 속에서는 작은 먼지 속에 있는 공간일 뿐입니다. 그 속에는 수천 개의 팔과 다리를 가진 오직 한 사람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영원히 쉴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는 손에 철퇴를 쥐고 스스로를 내리쳣습니다. 철퇴를 맞는 두려움으로 그는 공포에 질려 이리 저리 달아났습니다. 그는 출구가 없는 우물에 빠졌습니다. 거기서 나온 그는 다시 자신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시 공포에 질려 달아났습니다. 거기서 나온 그는 다시 자신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시 공포에 질려 달아았습니다.
이번에는 바나나 숲으로 달아 났습니다.
거기에는 두려워할 다른 존재도 없었지만 그는 울면서 두려움에 소리 질렀습니다.
그는 이전과 같이 계속 뛰기 시작했고 이전과 같이 자신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직관적으로 목격하고 내 의지의 힘으로 나는 그를 잠깐 멈추게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누구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혼자 괴로워하면서 나를 그의 적으로 몰아붙이면서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또 그는 크게 웃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의 몸인 수족을 하나하나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곧바로, 첫 번째 사람처럼 계속해서 달리면서 자신을 때리고 울고 소리지르는 또 다른 사람을 나는 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를 멈추게 하자, 그는 나에게 욕설을 퍼붓다가 자신의 삶의 방식을 좇기 위하여 달아났습니다. 그 후로 나는 이와 같은 사람들을 여러 명 만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말을 듣고 그들의 이전의 삶을 버리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나를 무시하거나 아니면 심지어 나를 경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출구가 없는 우물 혹은 어리석은 숲에서 나오는 것을 거부하기 까지 했습니다.
오, 라마여 ! 거대한 숲은 이와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어떤 삶과 방식을 가지든지 그 속에서는 아무도 진정으로 슇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합니다. 오늘날에도 그대는 이 세상에서 그러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 자신도 그러한 무지와 미혹의 삶을 보아 욌습니다.
젊고 무지하기 때문에 그대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바시슈타가 계속했다.
오, 라마여! 이 큰 숲은 그대지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이 바로 그 숲입니다. 이것은 커다란 공(空)입니다.
그러나 이공은 탐구의 불빛 속에서만 보입니다. 이 탐구의 불빛은 우화 속의 '나'입니다.
이 지혜를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거부하는 이는 계속해서 고통에 시달립니다.
지혜를 받아들이는 이들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수천개의 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수많은 나타남을 가진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자신의 잠재적 경향성들에 의해서, 이 세상에서 쉼없이 방랑함으로써 스스로를 벌합니다. 이 이야기 속의 출구없는 우물은 지옥을, 바나나 숲은 천국을 말합니다.
마음은 이제 지옥을 방황하고, 이제 천당을 방황하고, 그리고 이제 인간의 세상을 방황합니다.
지혜의 빛이 미혹된 마음의 상을 비출 때도, 어리석게도 마음은 그 지혜를 적으로 생각하고 거부합니다. 그리고는 흐느끼고 바탄에 빠져 절규합니다.
때대로 마음은 불완전한 깨우침을 경험하고는 적절한 이해도 없이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합니다. 그러한 포기는 커다란 슬픔의 근원임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러한 포기의 완전한 이해로부터, 그리고 마음의 본성에 대한 탐구에서 나온 지혜로부터 생기는 경우, 그것은 궁극의 지복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러한 마음은 자신이 과거에 가졌던 기쁨에 대한 생각까지도 놀라워하면서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팔다리가 잘리면 그것들이 떨어져 없어지듯이,
현명하게 세상을 포기한 자의 잠재적 경향성 역시 마음에서 사라집니다.
무지가 하는 놀이를 보십시오!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의미없는 공포로 여기저기를 달리는 저 놀이를 보십시오. 참나 지식의 빛이 모든 이의 가슴 속에서 빛나지만, 자신의 잠재적 욕망 때문에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방황합니다.
마음은 이 슬픔을 심화시키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찮은 일에 초조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변덕과 망상, 생각과 희망들로 자신을 속박합니다.
슬픔이 방문하면 그것은 절망하며 불안해 합니다.
지혜를 얻고 그것을 오랫동안 보존하고 탐구를 계속하는 사람은 슬픔을 겪지 않습니다.
통제되지 않은 마음은 슬픔의 근원입니다.
태양이 뜨면 안개가 걷히듯, 그것을 철저히 이해했을 때 슬픔은 사라집니다.
-스와미 벤까떼사난다 영역, 김병채 옮김 <바시슈타 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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