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선사] 행장(行壯)- 가신 이의 모습(2)
그 달에 매화 한 송이가 피었다.
지공스님은 매화꽅을 보고 이런 시를 지었다.
꽃앞도 푸르스름,
피었구나
매화야
그렇듯 한 송이만
피었구나
매화야
하늘과 땅 사이라
짝할 이 그 누굴까?
알아 무엇하리
가버린 날들이야.
앞날이여,
길이길이
고운 빛만 몰고 오리니,
그 내음 깨지는 곳마다
기뻐하리
우리 님.
스님이 이 게송에 이렇게 답했다.
해마다
눈 올 때면
매화야
너는 피었겠지.
나비는 훨훨 돌아오고
별은 바삐 날아가도,
목을 빼어 기다릴 뿐
세봄인 줄 몰랐구나.
이 아침, 매화꽃
다시 피고
그 꽃 한 송이
살포시 문,
가지 끝을 따라
온 하늘 온 땅 가득
왔구나
봄아,
하루는 지공스님이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참선이란
안이 없는 안,
진리란
밖이 없는 밖이어서,
뜰 앞의 잣나무라,
아는 이는 사랑하리.
번뇌없는 언덕
맑게 개인 날
모래를 세는 아이가
그 모래를 알 듯.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안은 들어가도 없고,
밖은 나와도 없으니,
땅마다 티끌마다
부처되기 좋은 곳,
뜰 앞의 잣나무여,
더없이 뚜렷하니
오늘은 초여름 사월 초닷새.
하루는 지공스님이 (나옹)스님에게 물었다.
" 이 승당 안에 달마가 있는가 없는가?"
"없습니다."
"그대는 저 밖에 있는 재당(스님들 식당)을 보는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리고는 바로 승당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공스님은 시자를 보내 물었다.
"선재동자가 선지식 쉰세 분을 두루 찾아 뵙고 미지막으로 미륵보살을 뵈었지.
그때 미륵보살이 손가락을 한 번 튕기니 문이 열렸고, 그래서 선재는 들어갔네.
그런데 자네는 어찌하여 안팎이 없다고 하는가?"
(나옹) 스님이 말했다.
"그때 선재는 그 속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
시자가 그대로 전하니 지공스님이 말했다.
"이 중이야말로 고려의 종놈이다."
하루는 지공스님이 말했다.
"자네, 보경사에 간 본적 있나?"
"가 봤습니다."
"문수와 보현이 거기 계시던가?"
"잘 계십디다."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
"그런 말씀을 하십디다."
"차나 마시고 가게나."
그 뒤 어느 날 스님은 게송을 지어 지공스님에게 올렸다.
이 마음 어두우면
산은 산, 물은 물인데,
이 맘 밝아지면
티끌 티끌이 한 몸이네.
어둠이랑 밝음이랑 함께
거두어 버리니,
닭은 꼬끼오, 새벽마다
꼬끼오.
지공스님은 말했다.
"나도 아침마다 징소리를 듣는다네."
스님의 그릇을 알아본 지공스님은 열 해 동안 판수(板首, 절에서 참선하는 스님 가운데 가장 윗스님)로 있게 했다.
- 무비 역주 <나옹선사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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