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바시슈타 요가

[바시슈타 요가] 릴라의 이야기(2)

무한진인 2024. 4. 17. 20:51

 

라마가 물었다.

브라만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오, 성스러운 현자이시여! 그러나 신에 의해 미리 정해진 것처럼, 현자들과 지혜로운 이들은 이 세상 안에 왜 존재합니까? 그리고 신은 무엇입니까?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오, 라마여! 무한한 의식의 힘이나 에너지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모든 시대에 스며들기 때문에, 그것만이 모든 필연적 미래 사건들의 실재입니다.

우주 안에 있는 모든 대상의 본성이 정해진 것은 바로 이 힘에 의해서입니다.

그 힘(찌뜨 샥띠)은 또한 위대한 존재인 마하샷따, 위대한 지성인 마하찌띠, 위대한 힘인 마하샥띠, 위대한 통찰인 마하드르슈띠, 위대한 행위자 또는 행위인 마하끄리야, 위대한 생성인 마호드바바, 위대한 진동인 마하스빤다라고도 합니다.

모든 것에 그것의 독특한 성질을 부여하는 것은 이 힘입니다. 그러나 이 힘은 절대적 브라만과 다르거나 그것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림의 떡만큼 실재합니다.

현자들은 브라만과 그 힘을 구분하여 창조물을 그 힘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전체로서의 몸과 그것의 부분들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구분은 언어적인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몸에 있는 팔과 다리를 자각하게 되듯이, 무한한 의식은 자신의 내재적 힘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자각을 일컽어 본성을 결정하는 절대자의 힘인 니야띠라 합니다.

그것은 또한 다이바, 즉 성스러운 섭리라고도 합니다.

그대가 나에게 이런 질문들을 해야 하는 것도 역시 니야띠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가 나의 가르침에 따라 행해야 하는 것도 또한 니야띠에 의해 정해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신이 나를 먹여 살릴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빈둥거리고 있다면, 그것 또한 니야띠의 작용입니다. 루드라 같은 신들조차 이 니야띠를 물러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이들은 이것 때문에 자기 노력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니야띠는 자기 노력으로서 그리고 자기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니야띠는 인간적인 면과 초인간적인 면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집니다.

전자는 자기 노력이 결실을 맺는 곳에서 보이며, 후자는 그렇지 않은 곳에서 보입니다.

니야띠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해 줄 것이라 믿으면서 나태하게 지낸다면, 그는 곧 그의 삶이 마감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은 곧 행위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최고로 높은 초의식상태에 들어감으로써, 그는 숨을 멈추고 해방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가장 큰 노력입니다.

무한한 의식만이 한 곳에서는 하나의 사물로, 다른 곳에서는 또다른 사물로 나타납니다.

파도들과 물, 수족들과 몸에 분리가 없듯이, 의식과 그 힘 사이에는 아무런 분리가 없습니다.

그러한 분리는 무지한 자들에 의해서만 경험됩니다.

 

라마가 물었다.

유일한 실재가 무한한 의식이며 그것의 내재하는 동적인 힘이라면, 어떻게 지바(개인성)가 두 번째라는 것이 없는 단일성 안에서 어떤 모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스와미 벤까떼사난다 영역, 김병채 옮김 <바시슈타 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