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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聽聞 : 법문 듣기)의 중요성

무한진인 2024. 2. 6. 21:39

 

청문(聽聞 : 법문 듣기)의 중요성

 

궁극의 가치'(파라마트마)를 실현하기 위하여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수단은 청문(聽聞: 듣기)입니다.

가장 좋은 수행방법은 명확하게 듣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법문에 귀를 기울여 경청(傾聽)함으로써 헌신이 이해되고,

참과 거짓의 분별이 일어나며,

관능적인 쾌락에 대한 애착이 부숴지게 됩니다.

 

법문에 귀를 기울여 들으면,

생각이 명확해지고,지성(知性)이 예리해지며,

자만심의 얽매임에서 풀려납니다.

 

법문에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써,

마음에 확신을 얻게 되고,

'나'와 '내것'이라는 느낌이 부서지며,

내면 속에서 만족감을 얻게 됩니다.

 

법문에 귀를 기울여 들음으로써,

의문이 풀리게 되고,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성격과 습성들에 변화가 오게 됩니다.

 

귀를 기울여 들음으로써,

마음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게 되고,

스스로 만족감을 얻게 됩니다.

 

주의 깊게 경청함으로서,

육체 의식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나게 됩니다.

 

주의 깊게 경청함으로서

개별적인 에고의 느낌이 사라지게 되면,

여러 가지 위험들이 피해가며,

많은 재난들은 잿더미처럼 됩니다.

 

주의 깊게 경청함에 의해서 수행공덕이 성취되는데,

삼매의 체험을 얻게 되고,

영적수행이 이루어져서 성취감을 얻게 됩니다.

 

깨달은 성자들과 현자들의 친견모임(사트상)에 참여하여

그들이 설명하는 것을 주의 깊게 들으면 영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주의 깊게 경청하는 것만으로 브라흐만과 하나가 됩니다.

 

주의 깊게 경청하므로서 이해력이 증대되고,

지성이 날카로워지며,

관능적인 쾌락의 얽매임으로부터 풀어지게 됩니다.

 

주의 깊게 경청함으로써,

반조의 의미, 즉 탐구(vichara)를 이해하게 되고,

지혜(Jnana)가 강해지며,

실재(實在)가 수행자에게 명확하게 다가옵니다.

 

주의깊게 경청하게 되면,

선한 지성이 계발되어, 분별력이 깨어나게 되고,

그리고 마음은 신(神)을 갈망하기 시작합니다.

 

주의 깊게 경청함으로써, 악한 친구와의 관계는 끊어지고,

욕정은 사라지며, 외향적인 생활의 위험성이 한꺼번에 말라버립니다.

 

주의깊게 경청함으로서 대상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고,

영감(靈感)이 빛나며, 실재(實在)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주의 깊게 경청함으로써,

삶의 최고 가치를 얻게되어,

마음의 평화를 발견하고,

세속적인 삶의 불안한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서 안정감을 얻게 됩니다.

 

주의깊게 법문을 경청하는 것 만큼 기본적인 것은 없으며,

그것에 의해 어떤 미지의 일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귀를 기울여서 법문을 듣는 것으로써,

속세적 고통의 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주의 깊게 듣는 것은 헌신의 시작입니다.

주의 깊게 듣는 것은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듣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저절로 완성됩니다.

 

세속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세속적인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것도,

주의깊게 경청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실제 경험입니다.

 

듣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영적인 수행에 있어서 첫번째로 기본적인 노력은

법문에 주의를 기울여서 듣는 것(傾聽)입니다.

 

삶 속에서 지금까지 들어 보지 못한 것이 있을 때, 사람은 그것에 대하여 의심을 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깊게 듣는 것의 중요성에 비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정신 수행법을 보면 듣는 것과 동동한 것은 없습니다.

자신의 일상 업무도 듣지 않고는 실제로 적절하게 처리할 수가 없습니다.

 

태양이 없으면 사방에 어둠만이 있을 것입니다.

사전에 법문을 듣지 않고, 정신수행을 한다는 것은 이와 비슷합니다.

 

법문을 듣지 않고는 9가지 형태의 헌신, 4가지 유형의 해탈,

그리고 무위적인 자연 삼매(sahaja)상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법문을 듣지 않고는,

우리가 사제들의 여섯가지 의무나 만트라를 반복하는 방법,

또는 예배의식을 집행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 수가 없습니다.

 

법문을 듣지 않고는

많은 종교적 서원, 자선,봉사, 금욕수행, 영적실천,요가수행,순례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지식의 흐름, 육체에 대한 지식, 다양한 원리와 다양한 기술의 응용에 대한 중요성,

브라흐만의 지혜를 얻는 것에 대한 중요성은 법문을 듣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식물과 허브가 존재합니다.

실제로 모든 생물은 하나의 물과 관련된 근원(水生原)에서 태어납니다.

 

모든 존재는 하나의 땅(地)에 의해서 지지(支持)됩니다.

모든 존재는 오직 하나의 태양만 있고,

모든 존재는 하나의 바람(風)에 의하여 그들의 행동이 일어납니다.

 

모든 존재를 위해서 하나의 공간이 있는데, 이를 하늘이라고 하며,

모든 존재는 하나의 절대적 실재(實在)인 파라브라만 안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에게는

듣기(聽聞)라는 기초적인 영적 실천수행이 하나 있습니다.

 

이 지구라는 행성에는 많은 국가, 많은 언어, 수많은 견해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서 듣는 것(聽聞)보다도 위대한 영적인 수행방편은 없습니다.

 

법문을 경청함으로써,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삶에서 권태를 느끼게 됩니다.

세속 삶의 굴레 속에 있던 사람들이 영적인 지망생이 되어,

수행자로써 규칙적인 영성수행에 열정적으로 헌신하게 됩니다.

 

법문을 주의깊게 들음에 의해서,

영성 지망생들이 높은 이해력을 얻게되어 진아지를 성취하게 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법문을 경청하는 것에 대한 즉각적인 효과는

잔인하고 마음에 상처입은 사람들조차도 도덕적으로 순화된다는 것입니다.

 

법문을 경청하는 위대함은 말로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잘못된 지성을 가지고 있고, 부당한 행위를 하는 사람조차도,

법문의 경청을 통해서 도덕적으로 고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장래에 순례 수행과 영적인 서원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법문을 주의깊게 경청히므로써 곧바로 직접적인 결과를 얻게 됩니다.

 

듣는 힘의 한 가지 예로는

특정 약에 의해서 즉시 얼마나 많은 수의 병과 고통이 치유되는가와 비숫합니다.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들은 것을 생각하고 이해하면 행운이 강하게 지배합니다.

절대 진아, 파라마트만은 주로 사람들의 진아 직접 체험으로서 알려지고 있습니다.

 

들은 것의 의미에 항상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성찰(省察: manana)"이라고 합니다.

성찰과 함께, 끊임없이 진아 내면 속에 안주하면서

일여내관(一如內觀 :nididhyasana)의 검증과 만족감이 오게 됩니다.

[譯註: 베단타 가르침에서 Shavana (듣기), Manana,(숙고,반조), Nicidhyasana(검증),은 진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사용되는 청문(聽聞), 성찰(省察), 일여내관(一如內觀)의 세 가지 단계의 활동이 있습니다.]

 

들은 말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해야만 만족이 오게 됩니다.

이러한 이해와 함께 모든 의문이 즉각 명백해집니다.

 

의심은 출생의 근본 원인이며,

법문을 들으므로써 그 의심의 근원이 뿌리채 뽑혀서,

자연스럽게 완전히 만족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듣기(청문)와 성찰(반조,탐구)이 없는 곳에 어떻게 만족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들음이 없으면 해방 대신에 속박에 매달리게 됩니다.

 

사람이 구도자이든 열망자이든 성취한 사람이든,

듣지 않고서는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람 마음이 미묘하고 맑아지는 것은

청문(聽聞, 듣기)하고, 끊임없는 성찰(省察,탐구,반조)에 의한 것입니다.

 

이제 정기적으로 법문에 대한 들음이 없으면 영적인 수행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수행자가 잠시라도 법문을 듣기를 멈추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의 영성적인 이익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어떻게 무슨 영적인 열매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성취된 모든 것조차도 계속적으로 듣지 않으면 결실을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법문을 듣고,

여러분이 들은 내용을 마음 속에 간직해야 하며,

여러분이 받은 영적 실천수행(성찰,일여내관)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세속적인 얽매임의 바다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서, 몇 번이고 물도 함께 마셔야 하는 것처럼,

들은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되색임질하며, 자꾸 들어놔야 합니다.

 

게으름으로 인해서 법문 듣는 것을 무시하는 사람은

자기의 가장 위대한 영적 소득을 얻는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런 종류의 게으름을 옹호하는 사람은 사실상 영적인 원력을 잃어버립니다.

이런 이유로 영성에 대한 담론을 끊어짐없이 자주 자주 들어야 합니다.

 

이제 어떻게 법문을 들어야 하는지,

어떤 책들을 읽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다음 절(節)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스승과 제자와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