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욕에 비견되는 어떤 행복도 없다
무욕이라는 말은 욕망 없음 혹은 '포기'를 뜻합니다.
이 마음의 자질은 세계가 환(幻)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에게 다가옵니다.
사람의 주의가 부(富)에서 벗어나 신에게로 향할 때, 그것은 무욕이 됩니다.
여러분의 본질적 존재인 그 지복을 욕망하십시오.
자기 자신의 안에 자연적으로 거주하는 그 행복을 느끼는 것, 그 행복이 증가함을 느끼는 것, 갈수록 그것을 알고자 하는 관심과 충동을 갖는 것, 그리고 그 내적인 행복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좋아하지 않는 것 - 이런 것들이 무욕의 표지입니다.
이 무욕과 함께 자비의 자질이 옵니다.
자비와 함께 지혜가 있습니다.
힌두신화에 아가스띠 라는 큰 진인이 있었습니다.
'아가스띠'는 방랑하지 않는 자라는 뜻입니다.
'가스띠'는 방랑하는 자인데, 이것은 곧 개아입니다.
탄생과 죽음을 넘어서는 것이 아가스띠가 되는 것입니다.
한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 큰 진인의 사원에는 은제 식기들과 신을 숭배하는 데 쓰이는 많은 금은제 기물이 있었습니다. 진인이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가져올 사람은 가져와도 좋다. 가져갈 사람은 가져가도 좋다. 아무도 막지말라"
하루는 도둑들이 들어와 사원의 기물을 몇 점 훔쳐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활과 화살을 든 채 문 앞에 지키고 있는 사람이 두명 있었습니다.
결국 도둑들은 물건들을 다 버려두고 진인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진인은 그 도둑들이 물건을 하나도 가져가지 못한 것을 보고 그들에게 연민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자비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귀중한 물건이 있다 해도 그것을 지키려는 욕망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이 은행에 자기 명의로 거액을 돈을 넣어두고서 자신은 그것을 포기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포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회에서 그저 조심해서 올바르게만 행동하려고 한다면 그 또한 자비가 아닙니다.
앞서 말한 표지들이 브라만의 상태를 말해 줍니다.
개인은 참으로 브라만에 다름 아닙니다.
'나는 몸이다'하는 확신이 사라지지 않으면 지혜가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돈을 더 많이 축적하려는 욕망이 구도자의 심증에서 느껴지는 한 육체 동일시, 곧 '내가 몸이다'하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분별과 무욕이 없으면 진아지도 없습니다.
이런 자질들이 있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요구하겠습니까?
신이 들어설 자리도 없습니다. 신은 그런 사람을 두고 무적이라고 합니다.
신은 말합니다. "그가 아무 것도 원치 않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나?
그는 두려움이 없다. 그는 포기자다. 그는 누구도, 어떤 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뭔가 원하는 사람은 신들이나 죽은 조상들을 숭배해야 합니다.
사람이 아직 욕망을 가지고 있을 때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원치 않는 사람이 진정한 포기자입니다.
누구도 그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속박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원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두려워 합니다.
그런 사람은 거지이며,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유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구에게서 어떤 것도 받지 마십시오.
한 브라민은 아무도 그에게 딸을 시집보낼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자, 아예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결혼하지 않기로 마음 먹자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그에게 딸을 주겠다고 제의하기 시작했고, 결국 한 사람이 많은 혼수품을 주며 딸을 이 브라만에게 시집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분이 욕심이 많으면 가여운 신세가 될 것이고, 욕심이 없는 사람은 평안과 행복을 얻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죽음조차도 욕망이 없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 사람이 참으로 신입니다. 천신들도 그 사람만큼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진인들은 제자를 많이 받으면 그것이 큰 짐이라는 것을 압니다.
성자 람다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욕이 몸에 밴 요기는 복이 있다."
아무 욕망이 없는 사람은 큰 복이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가끔 어떤 사람은 " 그것을 얻을 수 없다면 놓아 버리겠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마음 속의 걱정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이런 식의 무욕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의 태도는 욕망에서 벗어난 그런 것이어야 합니다.
포기는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슬픔이 종식된 사람이 행복합니다.
그는 체험에 기초한 지(知)를 얻습니다.
그렇지 않고 만일 어떤 사람이 언어적 지식만 가지고 있다면, 그는 참된 지(知)가 가져다 주는 행복을 얻지 못합니다.
탐욕에서 벗어난 성품의 소유자는 다이아몬드,루비, 돈다발을 보기만 해도 지겨워 합니다.
그런 사람은 돈에, 집에, 혹은 재산에 끌릴 수가 없습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다른 방도가 없을 때만 할 수 없이 자기 재산을 포기할 것입니다.
진인은 처음부터 모든 행위를 포기함으로써 그 행위들을 무효화합니다.
그는 포기가 마지막 날을 위해 아껴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집착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기어들어 환생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무집착이 된 사람은 막판에 조금도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진인들은 늘 자유 속에서 삽니다.
성자 묵따바이는 다섯가지 생기 전부를 아라띠 불빛 속에 바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자기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각별히 조심하십시오. 왜냐하면 분명히 체포영장이 떨어질 테니 말입니다.
세간의 사물들은 모두 남(5대 원소)의 재산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자기 집에서 살아도 무욕인 사람이 진정한 산림은거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참된 승려입니다. 그는 신의 지혜를 성취합니다.
영적인 삶의 주된 열쇠는 완전한 무욕의 상태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무욕에 비견되는 어떤 행복도 없다"
-그대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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