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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조법사의 조론 공부9] 물불천론(物不遷論)- 5

무한진인 2024. 1. 12. 21:33

[본문]

이미 흘러가거나 되돌아오는 희미한 조짐도 없는데. 무슨 사물이 있어서 움직이겠는가?

[주해]

여기에서는 제법의 실상을 오묘하게 깨달으면 일상적인 범부의 허망한 마음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결론지어 나타냈다.

본론의 끝 부분으로 결론지은 문장에서 말하기를, '털끝만큼의 은미한 데서 이 의도를 체득하면 신속하게 움직인다 해도 구르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는 제법은 고요하고 담연하여 흘러 오거나 흘러가는 모습이 가느다란 털끝만큼의 희미한 조짐도 없는데, 무슨 사물이 있어 움직이며 구르겠는가 함을 말한 것이다.

논문의 의도를 자세히 살펴보자.

비록 현재와 과거의 사물이 본래 흘러가고 흘러 옴이 없다고 말은 했으나, 이 말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은 시간엔 고금의 차이가 없이 평등한 하나의 경계임을 보게 하려한 것이다.

고금이 평등하게 하나의 경계라는 이치를 통달하기만 한다면 사물은 저절로 고금의 시간을 따라 왕래함이 없게 된다. 이는 이른바, '꿈 속에서 한 해가 지났더니 깨어 보니 잠깐 사이였어라'했던 시의 내용과 같다.

시간의 흐름은 한량이 없지만 한 찰나 사이에 포섭된다.

이는 옛시에서 말한, '베개에서 잠시 본 꿈(春夢)을 꾸는 사이에 강남 수 천리 길을 다 갔었네'라고 한 것과 같다.

꿈에서 일어난 일로써 모든 법을 관찰해 본다면 시간에는 고금이 없으며, 제법은 시간을 따라 가고 옴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훤히 밝혀진다.

그러나 사량분별이 의식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생멸유전하는 천류에 떨어지리라.

이러한 경지는 일상적인 범부의 허망한 마음으로 도달할 바가 아니다.

 

[본문]

이와 같다면 선람(旋嵐:괴겁에 부는 바람)의 바람이 수미산을 무너뜨린다 할지라도 항상 고요하며,강하(江河)가 다투기나 하듯이 바다로 들어간다 해도 흐르는 것이 아니며, 봄날의 아지랑이가 나부끼며 올리간다 해도 움직이는 것이 아니며, 해와 달이 하늘을 지나간다 해도 우주를 한 바퀴 돈 것은 아니다. 다시 무엇을 괴이하게 여기겠는가?

[주해]

여기에서는 현상의 변화 가운데 가장 신속한 네 가지 일을 인용하고, 그 사물의 자체에 나아가서 사물은 천류하지 않음을 증명함으로써 윗 문장에서 말한 '흘러가거나 되돌아오는 희미한 조짐도 없다' 했던 의도를 성립시켰다.

선람(旋嵐)은 비람(毗嵐)이라고도 하는데 우주가 무너지는 괴겁(壞劫)에 부는 바람이다. 수미산이 이 바람에 의해서 무너지기 때문에 '수미산을 무너뜨린다'고 말하였다.

야마(野馬, 아지랑이)는 <장자>에서 나온 말인데 늪지대의 습한 수증기가 증발하면서 햇빛에 반짝이는 것으로, 즉 아지랑이가 나부끼며 정지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 네 가지 일은 일상적인 범부의 허망한 마음으로 보면 천류의 극치라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이를 천류하지 않는다고 말해 주면 괴상하게 생각한다. 이를 진리에 밝은 눈으로 관찰한다면 본래 천류하는 모습이 없는데 다시 무엇을 괴이하게 여기겠는가?

논의 처음에 경전에서 말한 '모든 법은 흘러감도 흘러 옴도 없으며, 시간의 거래를 따라 움직이면서 구름이 없다' 고 한 문장을 인용하였다.

그러므로 <무불천론> 이라고 한 이 논문의 제목은 사물마다의 당체가 천류하지 않음을 말한 것은 아니다. 이는 천류하지 않는다는 종지로써 모든 법의 실제 모습을 정면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경지로 제법의 실상을 오묘하게 깨달은 인재가 아니라면 실로 쉽게 보지 못하리라.

이상으로 사물이 천류하지 않는다는 종지를 빠짐없이 논증하였다.

다음부터는 교(敎)에서 인용하고 논리를 회통하여 앞에서 말했던 '진리의 말씀이 시비를 변론하여 다투는 데서 막히고, 종지로 통하는 길이 부질없이 기이함을 좋아하는 데서 굴복당하게 하였다.

동, 정의 극치의 경지는 말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한 등등의 문장을 풀이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표현한 말을 떠나서 말에 내재한 의도를 알게 하려한 것이다.

말에 집착하여 근본 종지를 잃어서는 안되리라.

 

                                                                      - 승조법사 지음, 감산덕청 주해, 송찬우 옮김 <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