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자아탐구 실제수행방법 및 이론 정리(86)

무한진인 2023. 12. 22. 22:24

: 제가 마음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습니까?

 

: 진아를 깨달으면 제어할 마음이 없습니다. 마음이 사라지면 진아가 빛을 발합니다. 깨달은 사람에게는 마음이 작용할 수도 있고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진아만이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마음, 몸, 세계는 진아와 별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진아와 별개로 남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것들이 진아 아닌 것일 수가 있습니까? 진아를 자각하고 있다면, 그런 것들에 대해 왜 걱정해야 합니까?

그것들이 어떻게 진아에 영향을 미칩니까?

 

: 만약 마음이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진아를 알 수 있습니까?

 

: 진아는 심장이며, 스스로 빛납니다. 비춤은 심장에서 일어나 두뇌에 도달하는데, 그곳이 마음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가지고 세계를 봅니다. 즉, 그대는 진아의 반사된 빛에 의해 세계를 봅니다. 세계는 마음의 작용에 의해 지각됩니다. 마음이 (진아의) 빛을 받으면 그것이 세계를 지각합니다. 그렇게 빛을 받지 않으면 그것이 세계를 모릅니다.

만약 마음이 비춤의 근원을 향해 안으로 돌려지면, 대상적인 앎이 그치고, 진아만이 심장으로서 빛을 발합니다. 달은 햇빛을 반사하여 빛납니다. 해가 지고 나면 사물들을 드러내는데 달이 유용합니다. 그러나 해가 뜨고 나면 아무도 달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둥근 달이 하늘에 떠 있는 것이 보인다 해도 말입니다. 마음과 심장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은 심장의 반사된 빛에 의해 쓸모 있게 됩니다. 그것은 사물을 보는데 사용됩니다. 마음이 내면으로 행해지면 비춤의 근원 속으로 합일되는데, 이 근원은 스스로 빛나며, 이때 마음은 한낮의 달과 같습니다.

어두울 때는 빛을 주는 등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해가 뜨면 등불은 필요없고, 사물들이 그냥 보입니다. 또 해를 보기 위해서는 등불이 필요 없습니다. 스스로 빛나는 해를 향해 눈을 돌리기만 하면 됩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물을 보기 위해서는 마음이 심장 쪽을 향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마음은 중요하지 않게 되고, 심장이 밝게 빛납니다.

 

: 10월에 이 아쉬람을 떠난 뒤, 저는 스리 바가반의 친존에 편재해 있는 그 평안이 근 열흘간 저를 감싸고 있는 것을 자각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바쁜 가운데서도 내내 그 단일성의 평안이라는 저변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루한 강의를 들으면서 반쯤 자고 있을 때 경험하는 이중 의식과 거의 비슷했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고, 대신 예전의 어리석은 면들이 들어왔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따로 명상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을 하는 중에 부단히 자신에게 "내가 있다(I AM)"를 상기시키는 것으로 충분합니까?

 

: (잠시 있다가) 마음의 힘을 키우면 그 평안이 내내 지속될 것입니다. 그것의 지속시간은 거듭된 수행으로 얻어진 마음의 힘에 비례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그 흐름을 꽉 붙들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일을 하고 있든 하지 않든 그 흐름은 영향을 받지도 않고 중단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방해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 그대라는 관념입니다.

 

: 마음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정규적 명상이 필요합니까?

 

: 그것(그대가 하는 일)이 그대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늘 목전에서 유지할 수 있다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스스로 그것을 상기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됩니다. 그 일은 저절로 진행될 것이고, 그대의 평안은 방해받지 않고 유지될 것입니다. 명상은 그대의 참된 성품입니다. 그대가 지금 그것을 명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생각들이 그대를 한눈팔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들을 몰아내면 그대가 홀로 - 즉, 생각에서 밧어난 명상의 상태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것이 그대가 지금 다른 생각들을 멀리하여 얻으려고 하는 그대의 참된 성품입니다. 이처럼 다른 생각들을 멀리하는 것을 지금 명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수행이 확고해지면 참된 성품이 참된 명상으로서 스스로 드러납니다.

 

: 명상을 하려고 하면 다른 생각들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 예, 명상 중에는 온갖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그대의 안에 숨어 있던 것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것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소멸될 수 있겠습니까? 생각들은 말하자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지만 때가 되면 소멸하게 되어 있고, 그리하여 마음의 힘을 강화해 줍니다.

 

: 사람과 사물들이 마치 꿈 속에서 처럼 희미하게, 거의 투명한 형태로 보일 때가 더러 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그들을 바깥에서 바라보지는 않지만 그들의 존재를 수동적으로 의식하는데, 이때 어떤 종류의 자아성도 능동적으로 의식하지는 않습니다. 마음 속으로 깊은 고요함이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진아 속으로 뛰어들 준비가 된 것입니까? 아니면 이런 상태는 불건강한, 자기최면의 결과입니까? 일시적 평안을 얻는 수단으로서 그것이 권장되어야 합니까?

 

: 마음의 고요함과 함께 의식이 있습니다. 이것이 정확히 그대가 목표해야 할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아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 점에 대해 질문을 한다는 자체가, 그 상태는 안정되어 있지 않고 우발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뛰어들기'란 말은, 밖으로 향하는 마음의 습(習)이 있을 때. 따라서 마음을 내면으로 향하게 해야 할 때 적합한 표현입니다. 이때는 외부적 현상의 표면 아래로 잠기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의식을 방해함이 없이 고요함이 지배한다면, 뛰어들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만약 그 상태가 진아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그렇게 하려는 노력을 '뛰어들기'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그 상태를 깨달음이나 '뛰어들기'에 적합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대가 한 마지막 두 질문은 일어날 일이 없습니다.

 

                                                                                                                - 마하리쉬의 복된 가르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