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리지 그 자신에 대하여
정기적인 방문객 몇 명이 함께 자리한 어느 날 저녁,
마하리지는 늘 앉던 자리에 조금의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 조그만 다락방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고 방 안의 모든 사람들도
마하리지의 마음과 함께 하는 듯 눈을 감고 아주 편안히 앉아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친 듯 했다.
그때 마하리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여기 찾아 오는 분들이 나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여러분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나의 상태를
여러분들도 깨닫고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지요.
지금도 존재하고 과거에도 존재했으며 마래에도 존재할 모든 나가 태어나기 전의 나입니다.
본래의 나는 이 육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태어 났겠습니까?
그 자체가 본시 각성인데 어떻게 다시 각성을 알겠습니까?
나는 어떤 "것"이 아니며 의식되어야 할 어느 것도 알지 못합니다.
실체이기에 나는 자각을 다시 자각하지는 못합니다.
현상이기에 나는 생동하는 순수한 "작용"일 따름입니다.
아무런 의지적 작용없이 저절로 작동하는 비개인적 실체의 작용으로서,
나의 잠재적 측면에서 움직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인지되는 것, 알려지는 것, 행해지는 것,
그 모두를 봄이요, 들음이요, 앎이요,. 행입니다.
즉, 이것- 지금- 여기의 객관적 현상의 통각(統覺)인 "나"입니다.
절대적으로 알 수 없는 실체로서,
상대적인 현상으로서 나는 앎의 대상이 됩니다.
모든 현상이 완벽하게 부정된 뒤에도 남은 것은 실체 자체인 나입니다.
"나"는 이것 -지금- 여기 이자, 완벽한 현상의 부재입니다.
그러니 실체인 내가 어떻게 알려지고, 경험되고, 인지될 수 있겠습니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때, 그것은 지속기간으로 측정되어지는 공간 상에서의 개념상의
확장에 의한 "지각력"으로서 입니다.
어떠한 경험이라도, 슬픔과 기쁨처럼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짝으로써 구별하고 판단하는
객관과 주관의 관계에서 이중적으로 경험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정말로 고요해자고 텅 비어 시공간 개념이 정지될 때,
당신의 모든 것은 내가 됩니다.
합일, 전체, 신성, 겸손, 사랑,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쓰레기입니다.
너무나도 간단한 것인데,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는지 궁금합니다.
개념화를 멈추면 당신이 곧 나입니다.
그 외의 다른 것은 아무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 라메쉬 발세카 지음, 이명규 역 <담배가계의 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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