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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지혜(Jnana)에 대한 설명

무한진인 2023. 12. 16. 21:08

'순수지(知)'에 대한 설명

 

이제, 진정한 지식의 의미에 대하여 들어보십시오.

여기서 지식이라는 것은 진아가 스스로 만을 보는 진아지(眞我知,깨달음지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주로 신(神)을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원함과 덧없음을 깊히 반조하고,

자신의 진실한 '자성(自性)(Swaroopa)'을 아는 것을 깨달음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계가 끝나는 곳, 오원소가 해체되고,

이원성의 근원이 일어나지 않는 곳을 깨달음 지식이라고 부릅니다.

 

마음과 지성으로 인식할 수 없는 그것,

논리적 사고로 파악할 수 없는 그것,

그리고 말의 근원을 초월해 있는 그것을 깨달음의 지혜 냐나(Jnana)라고 부릅니다.

눈이 보이는 현상계에 대한 지각이 없는 곳,

지성(知性)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 무지(無知)한 곳,

이것이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실재지(實在知)'라고 부릅니다.

 

네번째 상태(뚜리아, 사뜨치뜨아난다-존재,의식,지복)라고 불리는 것은 모든 것의 주시자이며,

진정한 앎(지혜)이라고들 하지만, 실은 이것도 대상에 대한 앎(지식)을 나타내기 때문에 진정한 앎(깨달음)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모든 것에 대한 '앎'이란 주체와 대상의 이원성이 둘 다 포함되어야 합니다.)

보이는 대상에 대한 앎은 대상적인 앎이라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순수하게 오염되지 않은 '자성(自性)' 그 자체가 '실재앎(實在知)이라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원래부터 '모든 것'이 없는 곳에서, 모든 것의 주시자가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투리아 상태는 '순수앎(純粹知)'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됩니다.

지혜(智慧,Jnana)는 비이원성을 의미합니다.

투리아 상태는 사실상 이원성입니다.

순수지혜(純粹智慧)는 항상 이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순수 지혜"의 의미에 대하여 잘 들어 보십시오.

순수한 "자성(自性)"이 자기의 진아이며,

그리고 "진아 성품이 순수지혜(Shudda Swaroopa Jnana, 純粹智慧)라고도 부른다는 것을 독자들은 이해해야 합니다.

 

베다의 '네 가지 위대한 말씀'에 대한 가르침은 훌륭하지만,

이 문장들을 단순히 반복해서 읊조리기만 하는 수행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의 목적은 구도자가 그 말씀에 대한 의미를 깊히 성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네 가지 위대한 말씀의 가르침은 베다의 핵심이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 깊게 반조해야 합니다.

단지 이 큰 말씀을 반복해서 읊조린다고 해서 환상의 어둠(무지)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네 가지 큰 말씀의 의미를 생각할 때,

우리 자신이 바로 "그것(That)"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단순히 큰 말씀을 반복해서 외기만 하는 수행은 쓸데 없는 헛노력만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말씀의 의미를 탐구하다 보면,

드러나서 보여지는 순수한 실재(實在,現存)가 자기의 진아(眞我)라는 것이 보여집니다.

 

진아에 의해서 자기가 지닌 진아를 얻는 것이 깨달음(智慧)이며, 아주 희귀합니다.

시작 전에도, 끝이 나고도 그 자체의 '진아형상"으로, 홀로 존재하는 '그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나타나는 곳으로부터 모든 것이 사라지는 곳까지 '그것'이 있습니다.

깨달음의 지혜가 얻어지면, 속박이라는 착각을 벗어버리게 됩니다.

 

세밀한 관찰과 예리하고 미묘한 성찰을 이용해서 '하나'를 알면,

많은 다양한 견해들이 전부 무의미해집니다.

이 온갖 생명체,무생물체들이 있는 현상세계의 기원인 '그것'이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진아 형상(Shudda Swaroopa) 입니다.

 

베단타에 따르면 '지식'이라고 불리는 것은 오직 이것 하나 뿐입니다.

우리들의 기원을 발견하자 마자, 무지는 자동적으로 사라집니다.

이것이 해방을 제공하는 부라만의 지식(깨달음)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을 알게 되면, 내면에서 완전한 지식을 얻습니다.

그와 함께, 자신의 존재가 제한되어 있다는 개념도 완전히 사라집니다.

 

어떤 사람이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낼 의도가 있을 때, 자기 육체 넘어를 봅니다.

이것을 자주 깊히 탐구하다 보면 진아의 본성(自性)을 확신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진아지(眞我知)를 얻은 위대한 도인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진정으로 속세의 삶을 초월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들 중의 몇 명의 이름을 말해 볼 테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비야사와 바시슈타, 그리고 슈카, 나라다와 함께 많은 위대한 고행자들은 모두 진아 깨달음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자나카 왕 등은 이 '진아 깨달음'을 가진 위대한 진인(眞人,Jnani)이었습니다. .

바마데바, 바알미키, 아트리, 샤우나카 등은 베단타에 따른 진아 깨달음을 성취했습니다.

사나카 와 다른 사람들, 주로 아디나스,메이나,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따랐던 고락샤와 같은 고행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모두 말하기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항상 만족감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시바신을 기쁘게 하는,

'위대한 체험'을 해서 내면의 행복을 얻은 고행자들과 성취한 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베다와 사스트라의 핵심이며, 자기 성찰과 깊은 사유로부터 직접 체험하고 확립한 결실인 '그것'은,

진실한 헌신자들에 의해서, 자신의 행운에 따라서 획득하게 됩니다.

현인들과 성인들과 선덕들의 지혜인 '그것',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의 비밀스러운 지식인 '그것'을 나는 지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러한 지식은 순례길에 나서거나, 종교적 서약을 하거나,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여러가지 많은 금욕생활 등을 행함으로서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정신적 수행의 결실인 '그것'은,

홀로 의심의 뿌리를 완전하게 짤라내는 지혜의 최고 정점입니다.

 

너무나 많은 언어와 영적인 교과서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우파니샤드(비이원성에 대한 베다의 가르침이 있으며, 베단타라고 부름) 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모든 서적들 중에서 가장 핵심은, 오직 진실한 단 하나의 의미만이 있습니다.

신화서적(푸루나)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그것, 그리고 베다의 가르침이 고갈된 곳,

나는 바로 지금 이 순간 구루의 축복을 받으며 이것을 설명하겠습니다.

 

나는 산스크리트어 원문을 본 적도 없고 마라티어 원문에 대한 지식도 소개받은 적이 없습니다.

내 마음속에 주재하고 있는사드구루라는 나의 스승이 주신 이해만 있습니다.

이제는 산스크리트어 성전이나 마라티어 책도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나의 스승에 대한 이해만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베다 경전을 공부하거나 힘든 수행을 노력하지 않고도 사두구루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아무런 노력없이도 훌륭한 이해가 오게 됩니다.

 

산스크리트어 책은 마라티어 책보다 우월한 것으로 간주되며,

산스크리트어 책중에서도 우파니샤드(베다의 마지막 부분)의 책들이 분명히 더 위대합니다.

우파니샤드보다 더 우월한 책은 없는 것 같습니다.

거기서 베다 경전의 진수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베단타(Ved 와 Anta는 Vedas의 끝이라는 뜻임)는 이와 같이 이해가 됩니다.

즉 그 베단타 중에서 내면의 의미는 매우 깊습니다.

이제 그 궁극의 진리를 들어 보십시오,

 

친애하는 제자들이여,

사드구루의 말씀 중에서 가장 깊은 한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사드구루의 그 말씀 속에는 명확한 만족함이 있습니다.

사드구루의 그 말씀은 그 자체가 베단타입니다.

사드구루의 그 말씀은 그 자체가 최후의 교리입니다.

사드구루의 그 말씀은 그 자체가 진리이며, 지금 여기서 나의 진정한 체험입니다.

 

내 스승님의 말씀은 심오하며, 그래서 큰 만족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지금 그대에게 들려줄 내 삶의 비밀이다.

그대가 지금 이 순간에 나에게 완전히 주의를 준다면 말이다. "

사드구루의 얼굴을 간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제자는 스승의 발을 굳게 붙잡고(스승의 모든 말을 붙잡고) 가르침을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사드구루가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 <나는 브라만이다>라는 말은 베다의 <위대한 말씀> 중의 하나인데,

즉 마하바키아로 라고 하며, 그 의미는 논리적 이해를 초월한다.

스승과 제자가 일체가 된 동질감의 상태인 곳에서 이것을 말할 것이다..

사랑하는 제자여, 여기서 비밀은 '그대 자신이 브라만'이라는 것을 듣고, 즉시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의심이나 환상을 품지 말아야 한다.

 

9 가지 헌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포기이다.

나는 지금 그것에 대한 충분히 설명해 주겠다.

우주가 해체될 때,순서대로 생성된 오원소(五元素)는 원래의 순서대로 다시 하나로 융해되어 본래 상태로 돌아간다.그리고 원초적 여성원리(Prakriti-현상적 창조성)와 원초적 남성원리(Purusha-비현상적 무형의 존재)도 둘로 나눠지지 않고, 오직 브라만 만이 홀로 존재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대상이 사라지면, 진리 속에서, 보는 자인 주체도 남아있지 않는다.

오직 하나의 절대 실재(實在)만이 처음부터 홀로 존재하게 된다.

온갖 창조물이란 것은 실제로는 없는 것(無)이다.

항상 오직 하나(一)만이 있다.

이 하나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물리적 육체와 이 우주라는 것이 어디에서 보이겠는가?

진아 깨달음의 불빛이 그 자신을 스스로 드러나 보여주면서,

이 보이는 현상세계의 지저분한 쓰레기들이 다 타버려서 사라질 것이다.

'하나' 속에서는, 개별성의 환상이 시작도 되기 전에 파멸되어 버린다.

 

비실재적인 것이 어떤 것인가를 이해함으로써, 사람의 체험이 바뀐다.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현상세계가 사라지고,

에고의 소멸이 힘들지 않게 일어난다.

이와 같이 이해하라.

스승과 일체가 된다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믿음이 없는 개인으로 남아있지 말라.

이제, 이러한 일체성을 매우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드구루(참스승)를 공경해야 한다.

사드구루를 진심으로 공경하면 분명히 만족감을 얻는다.

 

친애하는 제자들이여,

진아 깨달음은 그 자체로 만족감의 성취이다.

진아 깨달음을 가지면, 세상 삶의 공포로부터 오는 속박은 그 뿌리가 거짓이라는 것이 환히 보인다.

'나는 몸이다' 라고 여기면, 그 사람은 자살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육체의 자존감(육체와의 동일시)으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슬픔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그대들은 네 가지 몸(거친 물질적 육체, 미묘체, 원인체, 초원인체 또는 뚜리아)과는 다르며,

육체의 탄생, 육체의 외모, 육체의 행동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그대는 이해해야 한다.

그대라는 것은 이 나타난 현상세계에서 보이는 모든 모습들과는 전혀 다르다.

 

속박된 사람은 원래부터 아무도 없지만,

육체와의 동일시라는 잘못된 착각때문에 사람들은 환상을 믿고 있다.

구도자는 홀로 앉아서 '진아본성(自性)'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수행함으로서, '궁극의 진리'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게 된다.

지속적으로 듣고(聽聞), 스스로를 돌이켜 비쳐 볼 때에야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브라만에 대한 온전한 지혜를 얻으면, 무욕(無欲, vairagva)이 완전히 그의 내면을 채우게 된다.

 

친애하는 제자들이여,

통제되지 않은 자유와 관능적인 쾌락에 탐닉하는 것이 갈망과 욕망을 사그라지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세상의 모든 대상물에 대하여 초연하게 멀찍히 떨어져서 냉정하게 주시하는 사람만이 보석으로 된 모든 것을 취하게 된다 오직 홀로 있어야만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보석을 위해 자신의 왕국을 내주었다는 왕의 이야기에서 잘 나타내고 있으며, 그래서 보석을 버렸을 때에만 자신의 왕국을 되찾은 것이다.

 

친애하는 제자들이여, 정신 바짝 차려서 지금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보라.

명상하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의 진아를 얻는 것이다.

따라서 무지와 잘못된 지식을 버리고, 현명한 지식을 채택하라.

그것을 통해서 신을 깨닫게 되고,바야흐로 세상에서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이다.

고열로 고생하는 사람은 눈 앞에서 나타나는 환각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절한 약을 복용함으로서 그는 편안해 하고 즐거워진다.

 

이와 비슷하게, 무지의 열(熱)과 함께, 거짓이 눈에 보일 때, 지혜(Jnana)의 약을 복용한다.

그 약을 복용함으로써 근본적으로 환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꿈 속에서 겁에 질린 사람은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기도 하지만,

깨어났을 때에는 그 공포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 간다.

거짓이 사실이라고 생각되면, 그 때문에 슬픔을 느끼지만,

거짓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거짓의 해체같은 것은 아예 없다.

 

꿈 속의 사건은 깨어있는 사람에게는 사실이 아니지만,

잠들어 있는 사람에게는 완전히 영향을 받는다고 느낀다.

깨어있을 때에만 비로소 공포가 사라진다.

무지의 잠은 사람을 암흑으로 채운다.

완전한 각성을 위해서는 (지식을) 듣고나서 스스로를 성찰(省察)해 보아야 한다.

 

완전히 깨어난 사람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징표를 알아차려라.

그런 사람은 관능적인 쾌락에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이 (욕망에 대한) 초탈함이 없는 사람은 아직도 열망자(熱望者)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는 자기가 깨달았다는 자부심을 버리고, 영적인 수행을 계속 진행해야 한다.

어떤 영적인 수행의 실천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은 성취된 상태에 있다는 자신의 자부심에 속박되어 있다.

그에 비교해서, 해탈을 갈망하는 진지한 탐구자는 그보다 더 수준 높게, 진아 깨달음을 얻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러자 제자가 물었습니다.

"속박당한 자, 탐구자, 열망자, 성취한 자의 징표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고 식별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에 대한 답변은 다음 절(節)에서 설명해 줄 것입니다.

독자들은 이어지는 설명에 온전한 주의를 기울여서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스승과 제자 간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