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것은 무엇이든간에 결코 사라지지 않고, 없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 싯따르 메쉬와르 마하리지의 <다스보드 제 15講> -
[제15강 주제 : 전혀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왜 묻는가?
그러나 의심할 여지가 없도록 한 마디 말해 주겠다.]
- 다스보드 제8장 3절 1문장-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대하여 왜 묻습니까?
그대가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는대로 그렇게 보게 됩니다.
진리(眞知)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우주는 전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이 세상의 나타남은 자아의 활동입니다.
이것은 모두가 상상이며, 의식의 한 양상일 뿐입니다.
그 의식의 움직임이 유별나긴 합니다. .
이 진아가 왕입니다.
그가 몸 안에 자리잡고 있을 때는 (개아로써) 다양한 개념들을 붙듭니다.
진아(개아)의 생각은 계속적으로 변합니다.
진아 안에서 존재하는 것들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나'가 상상하는 것은 무엇이든간에 나타납니다.
신이 우주가 존재한다고 상상하기 때문에 우리는 무한량의 우주를 경험합니다.
그는 모든 것의 행위자입니다. 그는 신입니다.
신인 바가반타는 진아를 의미 합니다.
이 우주는 진아,즉 의식으로부터 일어났습니다.
진아가 행위자입니다.
이 전체 우주 파노라마는 신에 의해서 펼쳐진 것입니다.
진아가 자신 스스로를 자각할 때 그는 신 또는 이스와라라고 불립니다.
그가 자신의 본성을 잊어버릴 때는 무지 또는 루드라라고 불립니다.
그가 자신의 진아를 자각하지 못할 때는 공(空)의 상태라고 불립니다.
진아가 자기 주위를 둘러보면 텅 빈 허공만이 나타납니다.
그것을 내면 자아 또는 에고라고 부릅니다.
그가 자기 성품을 무시하면 그를 찌바(개인)라고 부릅니다.
그가 자기 성품을 잊어버리면 무지 또는 루드라라고 불립니다.
이것은 시바의 자리입니다.
지혜의 화신인 진아는 이 세상을 창조한 이슈와라 신입니다.
신에게서, 즉 의식으로부터 이 정교한 세상의 파노라마가 생겨나왔습니다.
꿈 속에서 우리는 세상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는 프라크리티, 푸르샤라고 부릅니다.
그에게는 많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활동력, 의지력, 은폐력,확산력 등 네 가지 힘이 나타나는데,
이 모든 것은 순수의식으로부터 나옵니다.
이 의식은 경전에서 소위 원시 프라크리티 또는 물라마야라고 불립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이 이슈와라를 전통적으로 (신으로) 숭배하는 이유입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또한 이것에 대해 '신들'로써 숭배하기도 합니다.
프라바사(Prabhasa)라고 불리는 성스러운 장소는 모든 것이 빛인 것을 의미합니다.
그곳에서 모든 야바다족이 멸망했습니다.
주 크리슈나(순수의식)의 친척인 야바다족들은 그들이 이기적이 되었기 때문에 주 크리슈나(순수의식)에 의해 파괴되어야 했습니다.
모든 활동력은 이 순수의식으로 인해 생겨났습니다.
이 진리는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헌신자들)은 신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말해야 기분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적어도 먼저 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무지로 인해서 신자들은 의식이 '행위자'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공덕이나 죄를 범하고, 태어남과 죽음, 행복과 불행, 환생 등이 있다고 말하는 자를 지바(무지한 자)라고 합니다. 그는 이내 "나는 마음, 지성,감각 등이 아니다"라는 참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이해합니다. 그러면 그는 시바가 됩니다.
이 모든 우주의 근원은 물라 마야(원초적 환상)입니다.
찌바(무지한 자)에게는 속박이 있고, 시바(신, 깨친 자)에게는 해방이 있습니다.
속박과 해방은 상호 의존에 의해서 존재합니다.
속박만 된 자는 해방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知)와 무지를 초월한 사람은 속박도 해탈도 없습니다.
파라브라만의 본성은 속박과 해방을 모두 초월합니다.
성 투카람은 "이 몸 자체와 바로 이 눈으로 해방의 즐거움을 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속박은 무지에 지나지 않으며 해방은 더 높은 수준의 무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바(에고)와 시바(신)의 조건화를 모두 무시하고 진아 지혜를 얻은 사람은 큰 이득을 성취합니다. 브라민은 일식이 일어나는 동안 악귀를 막기 위해 태양에게 성수를 바칩니다.
그러나 태양에게 바친 물은 땅 위로 그대로 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경험한 사람은 속박과 해방이 모두 망상이라고 여깁니다.
진지(眞知)의 성품 속에 있는 자아를 물라 마야라고 불리며,
무지상태에서 나오는 무지를 마야라고 불립니다.
세상의 주(主)인 자가데샤(Jagadeesha)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현존 하는 한,
그때까지만 이 마야가 지속됩니다.
일단 마음이 사라지면 마야는 없습니다.
원초적 존재인 물라 푸르샤(Mula Purusha)는 마야(幻)이자 무지(Avidya)이며,
무지도 마야 또는 환상입니다.
이 환상이 무형상 위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잘 알려졌습니다.
예를 들어, 마술사가 자신의 의지나 재주로 많은 묘기를 부리듯이,
이 세상이라는 드라마는 자아의 의지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이 드라마의 기원을 생각해 보면 거기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대가 생각하는 그대로 결과도 그렇게 나옵니다.
스승의 은총으로 이 모든 것이 무(無)라는 지식을 얻습니다.
마음, 지성 등은 눈에 보이고 사라지기 쉽습니다.
당신은 몸도, 감각도, 생기도, 마음도, 또한 지성도 아닙니다.
속박과 해방은 마야, 환상의 성질이며, 환상의 놀이입니다.
물라 마야는 파라브라만의 자각 양상이 됩니다.
구나(속성)가 드러나면, 동시에 구나 코소비니(Guna-kshobhini),
즉 구나에 의해 자극(흥분)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바람이 허공을 흐를 때 어떤 형태로든 허공을 왜곡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파라브라만에서 구나 마야(성품의 환)가 일어나도 파라브라만에는 변화나 왜곡이 없었습니다. 부타(오원소)는 일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움직임과 언어는 허공의 속성입니다.
이 창조물은 5원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신이 이 세상 속에서 보는 것은 모두 거짓이고 상상물 입니다. 기타에서 언급했듯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없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몸은 5 원소로 출생됩니다.
산, 바다, 바위 등은 모두 땅(地)의 성품입니다.
- Amrut Laya (The Stateless sta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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