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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조법사의 조론 공부9] 물불천론(物不遷論)- 4

무한진인 2023. 12. 1. 21:44

제 1장 물불천론(物不遷論)(4)

- 현상을 어떻게 관찰할 것인가?

 

[본문]

슬프도다. 사람들의 허망한 마음의 미혹함이 오래 되었음이여,

눈으로 진상의 도를 마주하면서도 깨달을 수 없나니 ---

[주해]

위에서 '거역한다', '순종한다'고 한 단 두마디의 말은 실상의 세계는 다르지 않은데도 사람들의 미혹과 깨달음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보는 견해가 동일하지 않은 것을 총체적으로 서술하였다.

여기서 "슬프도다 ~"라고 한 것은 중생의 미혹한 마음을 정면으로 드러낸 것이다.

눈에 닿는 대로 모두 진실한 것인데, 다만 사람들이 어리석어 깨닫지 못해서 진실로 슬픈 것이다.

 

[본문]

과거의 사물이 현재로 흘러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재의 사물이 과거로 흘러간다고들 말한다. 과거의 사물이 현재로 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사물인들 어디로 흘러가겠는가?

[주해]

여기서는 미혹은 사람들의 전도된 견해를 총론적으로 책망하였다.

과거의 사물이 현재로 오지 않았음을 알았다면,

과거에 안주했던 사물은 과거에 그대로 있고 현재로 흘러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라.

그렇다면 그 예로써 지금의 사물도 과거로 이르러 가지 않는다는 것을 견주어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물이 천류하지 않는다고 한 의미인데

오히려 지금의 사물이 천류하여 과거로 흘러간다고 말한다.

이는 어찌 미혹이 아니겠는가?

 

[본문]

왜냐하면 과거의 사물을 과거에서 구해보면 과거에 일찍이 없지 않았고,

과거의 사물을 현재에서 따져보면 현재에선 있은 적이 없다.

과거의 사물이 현재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이로써 과거의 사물이 현재에 오지 않았음이 분명하고,

현재의 사물이 일찍이 과거에 없었기 때문에 현재의 사물이 과거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를 뒤집어서 현재에서 찾아 보았더니 현재도 과거로 가지 않았다.

이는 과거의 사물은 스스로 과거에 있고 현재로부터 과거로 이르러 간 것이 아니며,

현재의 사물은 절로 현재에 있고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러 오지 않았음을 말한다.

[주해]

여기서는 현재와 과거가 서로 왕래하지 않는 측면에서 사물이 천류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정면으로 밝혔다. 과거의 사물은 스스로 과거에 안주해 있고 현재에 오지 않았다면 현재를 과거에서 구해 보아도 얻지 못한다. 이를 뒤집어서 관찰해 본다면 현재는 스스로 현재에 안주해 있지 과거로 이르러 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물이 천류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분명해진다.

과거는 스스로 과거에 안주해 있고, 현재는 스스로 현재에 안주하여 시간을 따라 왕래하는 모습이 절대로 없다.

이로서 관찰해 본다면 '사물은 천류하지 않는다'고 한 것으로써 종지와 종지의 자체를 판정하고 수립하였다. 그 때문에 반복해서 이 문제를 논변하였다.

 

[본문]

그 때문에 중니(공자)는 그의 수제자인 안희에게 말하기를,

'안희야,너와 내가 새롭게 스치는 팔은 옛날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보았느냐'

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다면 사물이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주해]

여기에서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사물이 천류하지 않는 증거를 제시하였다.

<장자>에 '중니가 안희에게 말하기를, 나는 어와 함께 한번 팔을 스치는 사이에 잃어버렸으니 슬프지 않으랴' 하고 말하였는데, 승조는 그 의미만을 인용하였다.

승조가 의도하고 말한 것은 '팔을 스치는 사이에 이미 새롭게 변화하여 옛날의 모습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대체로 신속하게 천류함을 붙잡아 두기가 이처럼 어렵다는 것을 말했으리라 여겨진다.

승조가 인용한 의도는 신속의 극치에서 사물이 천류하지 않는 실제를 보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능가경>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일체법이 나오지 않은 것을 나는 찰나의 의미라고 설명한다.

일체법은 처음 나왔다 하면 바로 그 순간에 사라지는데,

이 점은 어리석은 사람을 위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현수대사(賢首大師)는 이를 해석하여 말하였다.

"일체법은 찰나찰나에 유전하기 때문에 반드시 자성이란 없다.

자성이 앖기 때문에 찰나찰나에 유전천류하는 일체법이 생겨남이 없는(無生)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여성공이다. 만일 진여성공의 무생이 아니라면 찰나찰나에 유전하는 일체법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무생법인(無生法忍)에 계합한 사람만이 진여성공인 찰나의 의미를 볼 수 있다."

<유마경>에서 말하였다.

'제법의 불생불멸이 진여성공인 무상의 의미이다.'

승조는 제법실상의 의미를 심오하게 깨닫고 생멸천류하는 제법 가운데 나아가 있으면서 천류하지 않는 제법의 실상성공을 홀연히 보았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인용한 문장이 천류한다는 의미의 문장인데도 이로써 불천(不遷)의 종지를 밝혔던 것이다.

무생무멸이라 한 의도를 통달하지 못한 자라면 생사의 사지(死地)에서 몸을 빙그르 돌이켜 살아 있는 기상을 토해 내기가 가지 어려우리라.

 

                                                                        -승조법사 지음, 감산덕청 주해, 송찬우 옮김 <조론> 경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