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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시슈타 요가] 창조에 관하여(6)

무한진인 2023. 10. 16. 22:15

라마가 말했다.

신이시여! 우주가 소멸되는 동안에 지금 확연히 보이는 이 세상은 어디로 갑니까?

 

바시슈타가 말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의 아이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 여인의 아이들은 결코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 역시 결코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왔기 때문에, 이런 설명은 그대를 당황시킬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금팔찌 안에 팔찌라는 것이 있습니까? 그것은 단지 금이 아닙니까?

텅 빔이 없이 하늘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겠습니까?

그처럼, 절대적인 것인 브라만과 관계가 없는 세상이라 불리는 '그러한 것'은 없습니다.

차가움이 어름과 분리될 수 없듯이, 세상이라 불리우는 것은 브라만과 불리될 수 없습니다.

신기루 속의 물은 존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으며, 그래서 존재 바깥으로 나가지도 않습니다.

그처럼 이 세상도 절대적인 것에서 온 것이 아니며, 그래서 어느 곳으로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라는 창조물에는 아무런 원인(근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시작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지금에조차도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파괴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은 브라만으로부터 창조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브라만이라는 실재에 근거한 모습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때도 정말이지 세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브라만만이 홀로 존재합니다.

세상은 꿈과 같습니다.

무지의 상태에서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지성이 수많은 꿈의 대상들로 나타납니다.

그 모든 것은 전부 지성일 뿐입니다.

그처럼 창조의 시작이라고 알려진 것 안에서도 그와 같은 나타남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은 브라만과 독립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브람만과 떨어져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라마가 말했다.

성스러운 분이시여!

그렇다면 이 세상은 어떤 이유로 그런 실재감을 얻었습니까?

지각하는 자가 있는 한 지각되는 것도 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둘 모두가 끝날 때만 해방이 있습니다.

깨끗한 거울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들이나 다른 것을 늘 비출 것입니다.

그처럼 보는 자 내부에서 이 창조물은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그렇지만 창조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보는 자는 없어집니다.

그러나 그런 깨달음은 얻기는 힘듭니다 !

 

바시슈타가 말했다.

라마여 ! 나는 우화를 통해서 그대의 의심을 없앨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는 창조물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세상에서 깨달음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바시슈타가 말했다.

오, 라마여! 꿈들이 잠자는 자의 의식에 나타나듯이, 이 창조물이 순수하고 나누어지지 읺는 우주적 존재에서 생겨난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말하겠습니다.

이 우주는 사실 영원하고 빛나는 무한한 의식입니다.

그것은 그것의 형태(공간)에 관련된 생각과 그것 자신에 관한 탐구로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식 가능한 것들을 만듭니다. 이렇게 해서 공간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무한한 존재 안에서 창조의 의식이 강해질 때,

미래의 지바(살아 있는 우주적 영혼, 히란야가르바라고도 함) 가 그 안에서 일어납니다.

말하지면, 무한한 존재는 자신의 지고한 상태를 버리고 자신을 지바로서 한계 짓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 브라만은 무한한 것으로 남아 있으며,

이런 것들로의 아무런 변형이 없습니다.

공간에서는 소리의 기능이 그 스스로를 나타냅니다.

다음 우주창조를 촉진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자아가 존재하게 됩니다.

동시에 시간이라는 요소도 존재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우주적 존재 안에 내재하고 있는 창조적 사고에 의해 일어나며,

무한한 존재가 실재로 변형된 것은 아닙니다.

창조적 사고와 유사한 활동으로 인하여 공기가 창조됩니다.

베다들도 역시 존재하게 됩니다.

이 모든 곳에 둘러싸인 의식을 지바라 합니다.

이 지바는 이 세상 안에 있는 다른 모든 원소를 일어나게 합니다.

존재에는 14가지 측면이 있으며, 각각 그 유형에 맞는 거주자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의식의 창조적 사고의 나타남입니다.

그와 같이, 이 의식이 '나는 빛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태양과 같은 빛의 근원들이 즉시 창조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물과 흙이 창조되었습니다.

이 모든 근원적 원소들은 계속 서로에게 경험하는 자와 경험으로 작용하기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래서 온 창조물이 바다 표면의 물결들처럼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은 서로 너무 잘 엮이고 섞여 있어서, 우주가 소멸될 때까지는 서로에게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물질적 모습들은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재는 변화되지 않은 채로 있습니다.

비록 이 모든 것이 전혀 변화를 겪지 않는 무한한 의식임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이 의식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들은 즉시 거친 물질적 실체가 됩니다.

바시슈타가 계속 말했다.

지고의 존재 안에는 즉시 균형을 이루거나 혼동이 일어나는 진동이 존재합니다.

이것 때문에 그것들이 실제로 창조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공간, 빛, 둔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모든 것이 의식 안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이것들은 알 수 있는 자질을 가집니다.

그와 동시에 아는 자가 일어납니다. 아는 자가 우주적 아는 자이기 때문에,

그것은 모든 것을 빛나게 하는 의식의 내재적 힘입니다.

그 의식 자체가 그것 자신의 알 수 있는 대상과 아는 자가 됩니다.

그러한 관계가 일어날 때, '나는 살아있는 영혼인 지바다'라는 개념이 의식 안에서 일어납니다.

알 수 있는 것과 더 깊이 동일시함으로써, 순수의식 안에서 자아에 대한 개념이 생깁니다.

그러고 나서 구별하는 기능, 즉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지성이 생깁니다.

그 다음에 마음과 근원적 원소들이 생성됩니다.

이 근원적 원소들은 거듭 결합하여 세상을 만듭니다.

꿈 속에서 도시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듯이,

자발적이며 또한 질서를 지닌 변화들에 의하여 이 수많은 형태들이 나타나고 사라집니다.

이것들 중에 어떤 것도 흙,물,불 같은 수단적이거나 물질적인 원인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의식의 본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가 꿈 속에서 도시를 짓듯이,

이 모든 것을 표면적으로 만드는 것도 바로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순수한 의식입니다.

다섯 원소들은 씨앗이며, 그 씨앗의 나무는 세상입니다.

영원한 의식은 원소들의 씨앗입니다.

씨앗이 존재하듯이 그 열매(나무)도 또한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다름 아닌 절대적 존재인 브라만입니다.

이런 식으로 무한한 능력을 가진 우주적 의식은 우주 공간 안에서 우주를 마법으로 만들었습니다,

우주는 사실이 아니며, 정말로 만들어진 것도 아닙니다.

모든 원소들이 서로 결합하여 이 세상의 외형적 물질들을 만들었지만,

진실로 이 모든 것은 공간 안에 보이는 형상처럼 겉모습에 불과합니다.

그것들의 실재성은 유일한 실재인 우주적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섯 원소들로 된 세상이 다섯 원소들의 창조물이라는 생각을 갖지 마십시오.

다섯 원소들을 절대적 의식 안에 내재하고 있는 힘의 나타남이라고 생각하십시오.

흙 등의 원소들은 꿈 속의 대상들처럼 의식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혹은 그것들은 우주적 의식 위에 무지하게 얹어진 단지 겉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이 신성한 이들의 통찰 혹은 깨달음입니다.

 

-스와미 벤까떼사난다 지음, 김병채 옮김 <요가 바시슈타> -

 

 

                                                 <청계산애서 바라본 관악산 전경, 2023.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