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사라지는 이곳이 지혜입니다.
방문자 : 선생님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장소에 저 자신이 있음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제가 보는 모든 것을 상상 뿐입니다.
슈리 푼자 : 당신은 '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상의 대상들을 보고 발버둥치는 개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 밖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이미 그런 보는 자입니다. 당신이 바로 지금 그런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런 위치나 그런 조망에 도달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다만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방문자 : 저는 제가 방심하지 않은 채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지켜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만약 그런 노력과 경계를 계속하지 않는다면 마음 속의 내용물들에 꼬드김 당해 그 현존을 잊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슈리 푼자 : 현존은 당신 자신입니다. 현존은 참나입니다. 참나는 당신 자신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당신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하여 경계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그것입니다. 당신이 참나가 아니라고 느낀다면, 생각들이 일어날 때 경계를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생각들이 당신을 참나로부터 멀리 떼어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참나들은 당신을 비참나의 상상적 세상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집으로 되돌아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해야만 합니다.
만약 당신이 이 길을 선택했다면, 이런 비참나의 생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지켜보기 위해 모종의 경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방문자 : 그것이 제가 어제 혼란스러웠던 바로 그 부분입니다. 저는 제가 마음의 내용물들에 의해서
점점 더 속게 되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이용하기를 원치 읺습니다만, 그와 동시에 경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저는 저를 현재로부터 떼어 놓는 생각들이 일어나는 것을 자각해서, 그 생각들과의 교제를 중단하고 현재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제가 노력을 이용하지 않기로 더욱 의도적으로 선택하면 할수록, 저는 더욱더 마음의 내용물들에 속게 되었습니다.
슈리 푼자 : 노력의 개념이 마음 속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한 생각이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맞지 않습니까? 하나의 생각이 일어나고, 그 생각은 "나는 노력을 해야 해" 라고 당신에게 말합니다. 이런 생각들이 일어난 이후에야 당신은 비로소 어떤 노력을 하기로 마음 먹거나 아니면 이 생각을 무시하기로 마음 먹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최초의 생각, 처음의 생각은 아닙니다.
"나는 노력을 해야 해" 라는 생각이 일어나기 위해선 반드시 그 생각을 하는 '나'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 '나'라는 것 자체도 하나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처음으로 일어난 생각은 바로 이 '나'이며,
이것이 나중에 당신이 노력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 '나'라는 생각이 거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잘 살펴봅시다.
지난 몇칠 동안 이 상황이 몇 차례 일어났습니다. 우리 모두는 여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이와 같이 의문을 제기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답으로 질문자에게 '나'가 처음 일어난 곳을 찾아내고 그곳으로 되돌아 갈 것을 추천했습니다. 제가 오늘 처방하고 있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당신들 모두에게 이 문제에 대해 공부하라고 말해 왔습니다.
즉 그 '나'가 온 곳을 찾아내고, 그것을 따라 되돌아가 처음 출발점으로 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들 모두에게 이렇게 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당신들이 자신 속에서 '나'라는 생각이 일어나는 그 지점, 그 장소를 찾을 수 있다면, 그 '나'라는 생각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최초의 '나'라는 생각이 그것의 근원으로 돌아가 사라지면, 그와 더불어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그 순간 당신은 당신이 말하고 있는 '현재'에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당신은 참나입니다.
당신이 그곳에 머물면서 스스로 그것을 안다면, 그것이 참나입니다. 그것이 자유입니다.
거기로부터 당신은 어디에 가야만 합니까? 무엇을 이루어야 합니까?
'나'가 소멸하는 이곳이 지혜입니다.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기술하지 못했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아무런 노력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당신이 어떤 노력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곳은 노력이 일어나지 않는 곳입니다. 생각조차도, 왜 이 모든 생각들이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까? 당신에게 선택과 행동을 강요하고, 또한 당신을 참나와 떼어놓게 될 그런 생각들을 왜 일어나게 해야 합니까? 당신이 그곳을 떠나려고 결심할 때 어떤일이 일어납니까?
바로 '나'라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감각들이 정보를 수집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라는 생각에게 먹을 것을 공급합니다. 그리고 나서 당신은 '나'와 연관된 지각들과 관념들에 관하여 선택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과정들이 당신을 곤란에 빠뜨립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일어나게 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노력'이나 '비노력'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그곳에 머므르십시오.
'나'라는 생각조차도 떠오르지 않는 그 장소에 머므르십시오. 그곳은 아주 고요합니다.
너무 고요해서 말들은 방해물이 됩니다. 우리가 이야기할 때. 말들은 생겨나서 그 참나의 고요한 흐름을 방해합니다. 지혜의 자연스러운 흐름은 이 말들에 의해 방해를 받게 됩니다.
방문자 : 마음은 그것 자체의 힘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선생님을 말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마음이 계속해서 바빠지는 걸 막지 못합니다.
슈리 푼자 : 마음은 과거입니다. 만약 당신이 현재에 있다면, 결코 마음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현재'에서는 전혀 마음을 볼 수 없습니다. 이 '현재'는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과거를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냥 거기에 존재합니다.
- 빠빠지와의 삿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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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고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