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성공,부(富),영광,무욕,자비,그리고 지혜

무한진인 2023. 9. 6. 21:58

성공, 부(富),영광, 무욕, 자비와 지혜는 여섯 가지 덕 혹은 좋은 자질입니다.

'야시(yash)'라는 말은 성공 혹은 승리를 뜻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성공한 사람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환(幻)에 대해 승리를 거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마야, 곧 환은 정복하기 어렵습니다.

그녀를 幻이라고 부르면서도 그녀를 고용하여 (우리에게) 봉사하게 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녀를 정복한 사람이 승리자입니다.

그럴 때만 우리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무욕이 있는데, 이것은 그냥 어떤 것에 대한 욕망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자비가 더 중요합니다.

무욕으로 되는 것은 가능하지만 자비를 베풀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을 희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

그러나 여러분은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장악을 기꺼이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한편으로는 가진 것을 기꺼히 포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40루피를 베풀어야 할 때에 20루피를 베풉니다.

 

자기 밭을 지키지 않던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당신 밭의 곡식을 지키지 않소?"

그가 대답했습니다. "남들이 갖다 쓸 수 있도록 밭을 열어두었지요.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고요" 그러나 실제로 겪어 보니 그 반대였습니다.

도둑들은 말했습니다. " 그 사람 밭에서는 훔치지 말자. 자기 것을 열심히 지키는 사람들의 밭에서 훔치자" 지고아 빠라마뜨만의 표지는 자비입니다.

빠라마트만은 만물 안에서 하나입니다.

적이 빠라마트만이고, 자식들이 빠라마트만이며, 아내가 빠라마트만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질투하거나 시기하면 안됩니다.

남들을 결코 헐뜯어서도 안 됩니다.

이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이 빠라마트만입니다.

그는 사랑받는 주(主,바가반)입니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주 크리슈나는 말합니다.

"나는 그것이고,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빠라마뜨만인데도 사람들은 나를 한 개인으로 생각하고 나를 모욕한다.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많은 곤경을 안겨준다. 그들은 이른바 행복을 즐기고 있지만, 나는 그들을 아주 고통스러운 상황에 빠뜨린다. 왜냐? 그들이 나를 한 개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관용한다. 왜냐하면 용서하는 것이 나의 성품이니까, 그렇기는 하나, 그들은 나를 왕의 옥좌에서 들어 올려 나를 불 속에 집어 던진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온몸에 불을 붙이거나 거꾸로 매달려 연기를 마시는 것과 같은 아주 고통스러운 실험 속에 던졌다. (영적인 체험을 얻기 위해 고행을 했다).

나는 아주 단순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나이고 홀로이며 나 자신 안에서 전체이지만,

그들은 이상한 것들을 상상하면서 나에게 온갖 방식으로 고통을 주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아주 혹독한 수행을 한 사람들에게도 해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완고한 마음 때문에 그들을 여러번 환생하게 만든다.

따라서 나에 대한 헌신은 감각적 즐김에 대한 어떠한 욕망에서도 벗어나 있어야 하고, 모든 바람이나 요구가 없어야 하며, 상상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이상한 태도를 한 번 보십시오.

자신이 지고아 빠라마트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하나의 개아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그가 범하는 큰죄이며, 그렇게 해서 그는 자기 인생을 허비합니다.

한 무리의 어부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그들이 늦게 집으로 돌아 오던 중 날이 금방 어두워져서 더 이상 길을 갈 수 없었습니다.

인근에 어느 부자의 집이 있었는데, 그는 순수한 채식가 였습니다.

어부들은 그의 집으로 가서 하룻밤 쉬어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들을 환영하며 공경스럽게 맞아들였고, 그들이 바깥 회랑에서 잠을 잘 수 있도록 적절히 조치해 주었습니다. 이 부자는 좋은 화원을 하나 가지고 있었고, 그 회랑에는 바구니 몇개에 담아 둔 향기로운 꽃들로 인해 향내가 도처에 퍼져 있었습니다. 밤공기도 기분좋게 서늘했습니다.

그러나 어부들은 강한 꽃향기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꽃 향기를 견디지 못한 그들은 고기를 쌀 때 쓰는 천들을 꺼내서 머리에 둘러 자신들의 코가 생선 비린내만 맡게 했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요컨대, 개인의 마음은 이와 마찬가지로 감각대상들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늘 똑같이 무지한 방식으로 살기를 좋아합니다.

 

마음의 습을 끊어서 그것이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게 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의 육신이 됩니까? 거짓된 에고적 습 때문입니다

육신이 된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형상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마치 하나의 옹기처럼 그것에 의해 한정되고 형태지워진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한정된 지성, 한정된 즐김, 한정된 의식과 동일시되게 됩니다.

개아는 형상이 없고 감각이 없거나, 지극히 광대하게 도처에 퍼져 존재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죽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특정한 형상을 좋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육체의식'이고, 그것 때문에 대상들에 대한 욕망이 증가합니다.

 

무욕이란, 결국 사라지고야 마는 것들을 놓아 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자비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니다. 나는 몸이 아닌데, 어떻게 무엇이 내 것일 수 있나? 나는 몸을 넘어서 있는 지고아 빠라마트만이다"

 

- <그대가 그것이다>-

 

                             누군가가 인적이 드문 산꼭대기에 가을 화초 두 송이를  다소곳이 심어 놓았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