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조법사의 조론 공부7] 물불천론(物不遷論)- 2
제 1장 물불천론(物不遷論)(2)
- 현상을 어떻게 관찰할 것인가?
[본문]
이와 같다면 움직임과 고요함이 처음부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미혹한 범부들은 동과 정이 동일하지 않다고들 한다.
이 때문에 진리의 말씀은 시비로 다투어 변론하는 데서 막히고,
종지를 통하는 길이 부질없이 동과 정이 다름을 좋아하는 데서 굴복을 당하게 하였다. 그 때문에 동과 정이 둘이 아닌 극치의 경지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주해]
여기서는 자체의 의미에 의지하여 중생의 미혹함을 분별하였다.
실제로는 동과 정이 하나의 근원이다.
이 둘은 본래 둘이 아니기 때문에 차음부터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미혹한 범부는 허망한 견해로 동과 정이 동일하지 않다 하면서
각자 동과 정의 어느 한 쪽에만 집착을 한다.
'진리의 말씀'이란 위에서 인용했던 '과거로 가지도 않고 현재로 흘러오지도 않으며,
움직이면서 전변함이 없다'라는 등등의 진리의 의미를 끝까지 한 요의(了義)의 담론이다.
동과 정을 다르다고 보는 견해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진실한 말씀이 시비를 다투며 변론하는 데서 막혀, 진리를 통하지 않게 하였다.
그리하여 일승(一乘)의 진실한 종지가 화창하게 드러나지 못하고 부질없이 동과 정이 다름을 좋아하는 논변에 반대로 굴복을 당하게 된 것이다.
즉, 이 논서에서 부정하고 타파한 심무론(心無論), 본무론(本無論)에서 일체가 확연하게 텅 비었다 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들 모두는 제법의 실제 모습인 실상을 끝까지 알지 못하고 동, 정이 다르다는 논리를 허망하게 내세웠던 것이다.
논을 지은 승조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동, 정이 아닌 극치의 경지는 그들 속인들과 함께 말하기 어렵다고 하였던 것이다.
[본문]
왜냐하면 (윗 문장에서 쉽게 말하기 어렵다 한 까닭을 질문하고 해석하였다)
진리의 말씀을 담론하면 세속의 속된 견해를 거슬리고,
세속적인 견해를 따르자니 진리의 말씀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진리의 말씀에 위배되기 때문에 본성을 미혹해 근원으로 되돌아 올 수가 없고,
세속적인 견해를 거슬리기 때문에 말이 답답하여 맛이 없다.
[주해]
동, 정의 극치에 대한 말을 쉽게 하기 어려운 까닭은 진리의 법이 중생이 처한 상황에 감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이른바 '고상한 말은 속된 사람의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한 말과 같다.
진리의 말씀을 담론하면 속인들의 귀에 거슬리고, 세속을 따르자니 진상(眞常)의 도에 위배된다.
진상의 도가 밝혀지지 않으면 미혹한 범부를 진리로 되돌아오게 하지 못하고,
진리의 말씀을 따르자니 속인의 귀를 거슬려 꺼낸 말은 담담하여 맛이 없다.
[본문]
이 때문에 보통 정도의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도가 있는지 없는지를 분간하지 못해 반신반의하고, 최하정도의 사람들은 손뼉을 치고 비웃으면서 되돌아보지도 않게 되었다.
[주해]
진리를 말하기 어려운 까닭은 중생들의 근기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속을 거역하지먄 진리를 따르는 말은 영리한 지혜를 지닌 상근기인(上根機人)이라면
듣자마자 바로 믿는 마음을 낸다.
그 때문에 사람을 잃지 않고, 나의 말도 잘못되지 않는다.
가령 보통 정도의 근기를 지닌 사람의 경우라면 이를 의심하면서 결정을 짓지 못한다.
그 때문에 도가 있는지 없는지를 분간하지 못한다.
최하의 근기는 진리의 말씀을 듣기만 하면 손뼉을 치고 크게 비웃으면서 되돌아 보지도 않는다.
'있는지 없는지 분간을 하지 못한다.' 와 '손뼉을 치며 비웃는디'라고 한 말은 모두 노자(老子)에서 인용하였다.
노자 <도덕경>에 말하기를,
'보통정도의 사람이 도에 대한 말을 들으면 도가 있는지 없는지 의심하고,
최하의 사람이 도를 들으면 미친 말을 한다고 크게 비웃는다.
최하의 사람이 비웃지 않으면 도가 될만한 가치가 없다'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제법실상의 오묘한 담론을 듣고
믿는 사람은 정말로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동, 정의 극치는 쉽게 말하지 못한다 한 것이다.
[본문]
가까우면서도 알지 못할 것은 사물의 본성이리라.
[주해]
여기에서는 도를 믿는 상근기인만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진상의 법도 정말 믿기도, 알기도 어려움을 탄식하였다.
왜냐하면 우리들 눈에 부딪치는 대로가 모두 진상의 도리인데
이를 눈으로 마주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니,
그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본문]
그러나 이 문제를 그만두지 못하고 부족한 대로나마 마음을 동과 정의 즈음에 의탁하여 보긴 하겠지만, 어찌 나의 말이 꼭 그렇다고 긍정하겠는가 ?
시험삼아 이를 의논해 보겠다.
[주해]
여기서는 논문을 지은 의도가 미혹한 중생을 민망히 여기고 마음 속에서 자비심이 일어남을 그치지 못함을 말하였다. 그리하여 부족하나마 동과 정의 사이에 마음을 의탁하여
동과 정이 둘이 아님을 밝히는 말을 함으로써 미혹한 범부를 깨우치겠다 하였다.
그러나 감히 나의 논리가 필연적으로 그렇다고 말하지 못하고 시험삼아 이 문제를 논변해 볼 뿐이라 하였다.
- 승조법사 지음, 감산덕청 주해, 송찬우 옮김 <조론(肇論)> -
2023.9.1. 한강 두물머리 전경(검단산 정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