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슈타 요가] 창조에 관하여(5)
라마가 말했다.
성스러운 분이시여!
어떻게 그것이 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으며, 빛이 비춰지지 않고, 어둡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 반대되는 표현 때문에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바시슈타가 말했다.
라마여! 그대의 질문들은 미숙하지만, 그것의 정확한 의미를 설명하겠습니다.
나무토막 속에는 만들어 두지 않았지만 이미지가 늘 있습니다.
이처럼 그대가 세상을 실재로 여기든, 이 세상은 절대적인 것 안에 내재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것은 공하지 않습니다.
고요한 바다 안에 파도들이 없다고 말할 수 없듯이,
절대적인 것에 세상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예들은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한도를 넘어서는 적용을 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사실 이 세상은 절대적인 것으로부터 일어난 것도 아니고, 절대적인 것 속에 용해된 것도 아닙니다. 절대적인 것만이 지금 존재하고 있으며 영원합니다.
절대적인 것을 공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이 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감정 때문입니다.
그것을 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공하다는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것은 물질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태양과 같은 물질적 빛의 근원들은 그것을 빛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빛을 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활기를 잃지 않으며 어둡지도 않습니다.
이 절대적인 것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깨달아지거나 경험될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것만이 그것 스스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무한한 의식(의식의 공간) 은 무한한 공(空)보다 훨씬 더 순수합니다.
그리고 무한한 것이 존재하는 것만큼 세상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고추를 맛보지 못한 사람은 고추의 맛을 알지 못합니다,
그처럼 대상이 없을 때는 무한한 것 속에 있는 의식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의식이 생명이 없거나 지각력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도 그렇게 경험됩니다.
만져서 알 수 있는 바다 안에 만져서 알 수 있는 파도들이 보이듯이,
형태없는 브라만 안에 세상 역시 형태가 없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무한한 것으로부터 무한한 것이 나타나며 그리고 무한한 것으로서 그것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실제로 결코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자신이 나타난 것인 무한한 것과 동일합니다.
마음에 생각들의 연료를 주지 않음으로 자기라는 개념이 없어질 때,
존재하는 것 그것이 무한한 것입니다.
잠자지도 않고, 활기 없지도 않은 것, 그것이 무한한 것입니다.
그 무한한 것 때문에 자성이 없음에도 앎, 아는 자, 알려진 것이 하나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 김병채 옮김 <바시슈터 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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