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지켜보는 자가 되어 현존하라
우리는 그러한 현존의 순간을 경험하면서도 자신이 잠깐 무심의 삼매 속에 있었다는 것을 쉽게 깨닫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 상태와 생각의 유입 사이에 간극이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삼매는 마음이 들어 오기 전에 단 몇 초 동안 지속되었을 뿐이지만, 여하튼 거기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음은 아름다움을 인지할 수도 창조할 수도 없습니다.
잠시에 불과했지만 당신이 완전히 현존하고 있는 동안,
그 아름다움과 신성함은 거기 있었습니다.
그 틈새가 너무 짧고 당신이 충분히 각성하고 경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무심과 그것을 생각으로 분별하고 해석하는 마음과의 기본적인 차이점을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 시간의 틈새가 너무 짧아서 하나의 과정으로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생각이 들어와서 당신에게는 기억으로 밖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지각과 생각 사이의 틈새가 넓어질수록 깨어 있는 상태를 더욱 깊히 지속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 속에 갇혀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꽃이 정말 예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단지 자동적인 정의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고요하지도 않고 현존하지도 않으므로 꽃을 보고도 그 본질과 신성함을 진정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을 모르고 있으며, 그들 자신의 본질과 신성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는 마음이 지배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대의 미술, 건축, 음악, 문학 등에서 아름다움과 내면의 본질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창조하는 사람들이 마음으로부터 잠시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정한 창조성과 아름다움이 생겨나는 내면의 장소와 만나지 못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제멋대로 괴물을 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질문 : 깨어 있다는 것은 현존하는 것과 같습니끼?
톨레 : 우리가 존재를 의식할 때는 사실, 존재가 스스로를 의식하는 것입니다.
존재가 자신을 의식하게 되면 그것이 현존입니다.
존재, 의식, 그리고 삶은 동의어이기 때문에 현존이란
자신을 의식하는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혹은 생명이 자의식을 확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어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현존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 : 방금 당신이 이야기한 현존, 즉 궁극적인 초월적 실재는 아직 완전하지 않으며,
지금도 발전과정을 겪고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듯 합니다.
신은 개인적 성숙을 위한 시간을 필요로 할까요?
톨레 : 그렇습니다. 물질화된 세상의 제한된 시각으로 보자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선언합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나는 살아있는 유일자이다.'
시간을 초월한 신이 거주하는 왕국이자 우리의 집이기도 한 그것에서는
시작과 끝, 알파와 오메가가 하나입니다.
만물의 본질은 일찍이 인간의 마음으로는 결코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온전하고 완벽한 상태로 물질화하지 않은 채 존재해 왔으며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가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는 우리에게 시간을 초월한 완전함이란 불가해한 개념입니다. 영원한 근원으로부터 발산되는 의식이 하나의 반전과정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모두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이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진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만물은 '존재를', 신의 본질을, 어느 정도의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으며, 원자와 분자로 흩어질 것입니다.
모든 것은살아 있습니다.
태양, 지구, 행성, 동물, 인간 등 만물은 다양한 의식의 표현이요,
모습을 갖고 물질화된 의식의 표현입니다.
세상은 의식의 사고형태와 물질적 형태를 취하면서 생겨납니다.
이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체를 보십시오.
바다 속에서, 땅 위에서, 대기 중에서, 생명체가 오랜 세월 동안 되풀이 해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도데체 그 목적이 뭘까요?
누군가가, 혹은 무엇인가가 형태를 가지고 게임을 하는 것 아닐까요?
고대 인도의 선지자들은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들은, 세살살이란 신이 벌리는 신성한 게임같은 것(lila,릴라,신의 춤놀이)이라고 보았습니다.
그 게임에서 개별적인 생명체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게 분명합니다.
이것이 비극적이거나 잔인한 것일까요?
우리는 스스로 분리된 개체라고 느끼는 한 그것은 진실입니다.
저마다의 의식이란 신의 본질이 형상 속에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는 것임을 잊고 지내는 한,
인생은 분명 비극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당신 자신 안에 있는 순수의식으로서의 신의 본질을 깨닫기 전에는 진정으로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은 이제, 마음을 지켜보는 자가 되어 현존하라는 말의 더 깊고 넓은 의미를 알아차렸을지도 모릅니다. 마음을 지켜 볼 때마다 당신의 의식은 마음이 지어내는 형상으로부터 후퇴합니다.
그때 당신은 감시자나 목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켜보는 자로서의 의식이 점점 강해지면서 형상 뒤에 있는 순수의식이 되어 가고, 마음의 구조는허물어집니다.
마음을 지켜보는 자가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우주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의식은 당신을 통해 눈에 보이는 모습을 자신과 동일시하던 환상에서 깨어나 형상으로부터 후퇴합니다. 이 과정은 언젠가 먼 미래에 연대기적인 시간이 정지할 것임을 예시하는 것이며,
이미 그 사건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건은 바로 '세상의 종말'입니다.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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