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깨달음이라 할 것도 없다

무한진인 2023. 6. 30. 21:52

 

마하리지를 찾아 오는 사람들 중 영적인 문제에 대한 문외한은 거의 없다.

그들의 대다수가 어떠한 의문을 풀기 위해 많은 곳을 다녔고 숱한 구루들을 만났으며,

진리란 대략 이러 저러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구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뚜렷한 안목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으며,

자신들의 노력이 헛된 것이었음을 알고 나서는 곧잘 실망해 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러한 실먕이나 의욕상실에도 불구하고 삶에는 분명히 어떤 궁극의 의미가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마하리지는 그런 방문자들에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이지만, 단순한 호기심에서 왔거나

마치 주말 파티에서 대화하는 식의 거만한 자세로 찾아오는 이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그리 대할 뿐이다.

 

자신들의 축적된 지식을 검증받으러 오는 아직 익지 않은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찾아오는 경우는 이렇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적 바탕을 알아보려는 마하리지의 질문을 받게 되면 그동안 읽었던 많은 책들과 만났던 성자들의 기억에 의거한 자부심을 가지고 말을 한다.

그럴 때면 마하리지는 귀여운 악마와 같은 웃음으로 받아들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이 에고를 부추겨 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 그래요, 우리는 드믈게 좋은 대화를 나누었군요."라든지,

"아, 오늘 당신과 함께 하여 정말 좋았읍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았었습니다. "

또는, " 저는 겨우 국민학교 4학년 생이고 당신은 철학박사군요. 우파니샤드를 그렇게도 잘 이해하시다니요. 정말로 큰 축복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토론이 진행되다 보면, 이러한 거창한 담론자들로부터 많은 유형의 반응들이 나온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마하리지와 거의 같은 경지라는 관점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잠시후면 커다란 차이가 나타난다.

즉, 그들은 겸허한 자세가 되어 말하기 보다는 듣기에 열중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특별하게 생각해온 이론들과 개념들에 구멍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날 아침, 한 유럽 여인이 마하리지를 찾아 왔다.

그녀는 아이 엠 뎃( I am That)이라는 책을 극구 칭송하며 직접 친견하여 마하리지에게 존경을 보일 수 있는 것이 커다란 복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은 영적 스승을 만났으나 자신이 찾고자하는 것을 찾았다고 느끼지 못하다가 마침내 마하리지의 발 밑에서 자신의 긴 여행이 끝났음을 획신하게 되었다고 말헀다.

그녀는 다른 구루들이 그녀의 영적 진보의 증거로서 인정했던 몊가지 명백한 체험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 체험들을 마하리지에게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하리지는 얼마동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가 질문을 하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누가 그런 체험을 했는지 말해 보세요. 그 체험들로 하여 누가 즐거워 했습니까?

무엇이 없어야 그런 체험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당신'은 그 체험들 속에서 정확히 어디에 있었지요?

그 긴 영적 훈련 기간에서 '당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실체는 무엇이었죠?

내가 당신을 모욕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그러나 지금 내가 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당신은 마치 좋은 옷과 장신구를 한 다섯살 짜리 아이와 같습니다.

세 살 전만 하더라도 그 같은 옷이나 장신구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마 오히려 귀찮은 물건이었을 것이고 극성스런 부모들에 의해 강제되었을 테지요.

그러나 지금의 다섯 살 난 아이는 어서 밖으로 뛰어나가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고 싶어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사이이 일어난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당신의 본성을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인 것입니다.

세 살 전만 하더라도 아직은 순수한 주체적 인격이나 자기 인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아직 '나'라는 장애물을 취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즉 스스로를 이름으로 언급하기 전까지는 인식하는 주체라는 '나'가 아닌 단순한 객관체로서 여깁니다. "

 

마하리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지금까지 나의 말을 다 듣고도 계속해서 나를 방문하고자 한다면 한 가지 경고를 하겠습니다.

당신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당신이 지난 오랜기간 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 얻었던 다른 모든 것마저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하세요. 나를 계속 방문하게 되면 깨달음을 구할 '나'나 '너'가 없다는,

실로 깨달음이라 할 것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그 자체가 깨달음입니다. "

 

그 여인은 멍하게 앉아 있었다.

오랫동안 성심으로 지어왔던 신앙의 구조물이 기초부터 흔들리고 말았다.

그녀는 존경의 표시로 합장을 하며 자기가 봄베이에 머무는 동안에는 날마다 방문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다.

 

마하리지도 그러한 그녀를 보고 미소지으며 말했다.

"환영합니다. "

 

-라메쉬 발세카 지음, 이명규 역 <담배 가계의 성자>-